2014년의 모닝페이지

별과 별 사이, 어딘가

by 루빈

2014년 11월 10일, 나는 모닝페이지에 인터스텔라를 보고 느낀 감상을 적어놓았다. 잔뜩 흥분해서 휘갈겨 놓았다는 쪽에 가깝겠다. 이를테면 ‘매튜가 블랙홀에 갇힌 장면’을 보고 심장 터질 뻔했다고 적었다(검색을 하다가 블랙홀이 아니라 테세렉트라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새삼 영화의 힘을 느꼈음. 입추의 여지 없이 꽉 찬 관객들과 모두가....... 심장을 죄어드는 듯한 긴장감, 그런 느낌이었음.


2014년에 내게 영화의 힘을 느끼게 해 준 작품 <인터스텔라>를 다시 보았다. 영화는 여전히 좋았고, 테세렉트 장면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장면을 좀 더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주에서 미지의 공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주인공 쿠퍼의 눈에 과거 속 한 화면이 보인다. 그 화면 속에서 쿠퍼는 우주로 떠나기로 한 날의 자신을 본다. 쿠퍼 옆에는 가지 말라고 간절하게 애원하는 딸 머피가 있다. 쿠퍼는 그의 지난날을 보며, 지난날 속의 딸에게 제발 자기를 떠나보내지 말라고, 붙잡으라고 간청한다.

나는 친구 H에게 인터스텔라가 너무 좋았다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며 내게 가장 강렬했던 이 장면을 언급했다. 그러다 자못 진지하게 이런 질문에 대해 논하게 되었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어긋난 순간을 마주한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순간을 바로잡으려 하겠는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미래의 내가 어려움에 처한다. 그런데 어려움에 처한 내가 그 시작 부분이 되는 과거의 한순간을 보게 된다. 나는 과거의 나에게 ‘지금 네가 하려는 그 행동을 하지 마. 그 행동을 하면 넌 힘들어질 거야’라고 미리 알려줄까?(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친구와 나의 결론은 같았다.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 역시 비슷했다. (불행한) 결과를 알고 있는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충고를 해서 훗날 후회하게 될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나이기 때문이다.


어떤 한 선택을 고친다고 해서 내가 앞으로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보장, 어떤 어려움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억지로 어떤 순간을 고치려 들기보다 그냥 나로서 나답게 살아가는 편이 낫다는 것.


어차피 나는 나일 뿐이니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내게 얼마 전 후회할 일이 생겼다. H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H는 백혈병에 걸렸고 백혈병은 사망할 가능성도 있는 병인데 나는 왜 진작 H를 찾아가 보지 않았을까? 왜 진작 H와 이런저런 것들을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애써 닫아두었던 후회의 문이 열리자 시도 때도 없이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후회에 질질 끌려다니다 문득 이런 상상에 이르렀다. H와 나는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는 게 아니다. 그냥 우리는 다른 차원에 있는 것뿐이다. 어쩌면 H가 한 번쯤 내게도 다녀갔을지도 모른다. 마치 우주의 낯선 차원에서 과거의 딸 머피를 바라보고 있는 쿠퍼처럼 H도 지구에 남겨둔 사람들을 지켜보았을 것만 같았다.

과거 속에 머피와 나란히 앉아 있는 자신을 보고 쿠퍼는 안타까워했지만, H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H 답게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자신만의 재미나 의미를 찾고 그 속에 몰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닝페이지를 비롯한 과거의 기록 속에서 H의 이름을 접하면 한동안 이런저런 후회가 들 것 같다. H를 위해 준비해온 선물도 주지 못했고 함께 세운 계획도 이루지 못했으니 말이다.


오래 먼 길을 함께 갈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불쑥 떠나버렸다. 아직 30, 40년은 더 볼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먼저 훌쩍 가버린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난 추억을 들춰보고 우리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이렇게 글이라도 한 편 써 보는 것.

아직은 서툰 글솜씨라고 해도 어떻게든 갈고 닦으면서 그 애가 내게 전한 것을 세상에 좀 더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이 소망만큼은 이룰 수 있기를.

2014 1.jpg 테세렉트에 갇힌 쿠퍼


2014 2.jpg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후회하는 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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