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모닝페이지

일단은 그냥 한다.

by 루빈

선생님과 사진을 찍었다. 비가 와서 고생스러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 모습을 찍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상을 타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단은 그냥 한다. 즐거워하며.


- 2016년 12월 27일


2016년 말, 가족 말고 내가 가장 자주 만났던 사람은 내게 운동을 가르쳐 준 트레이너 선생님이었다. 나의 두 번째 트레이너 선생님이자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운동한 이 분은 내게 여러모로 각별하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운동하면서 나눈 수많은 이야기 때문일 거다. 나는 운동을 지독히도 못 하기 때문에 내 운동 실력은 과연 나아지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더디게 움직였지만, 우리의 수다만큼은 깊었다. 일 이야기, 이런저런 관계 이야기, 소소한 일상까지.


하루하루 쌓여가는 이야기 속에 트레이너는 내 몸의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도 챙겨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셨고 카리스마 있는 성격이라 고분고분하게 선생님 말에 따르려 노력했던 기억도 난다. 물론 몸이 안 따라줄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선생님이 내게 각별했던 두 번째 이유는 ‘선생님과 사진을 찍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트레이너로서의 삶에도 열심이었지만 한편으로 다른 취미이자 꿈도 키우고 있었다. 그 대상은 바로 사진이었다.


당시 사진작가분께 사진도 배우고, 모임 운영진 활동도 하고, 사진 보정 작업을 위해 포토샵도 공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내게는 선생님의 그런 열정과 노력이 멋져 보였다. 꿈을 향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태도도 본받고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옮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내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2016년의 내가 글쓰기에 선생님처럼 열정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후 수업도 듣고 모임에도 참여하고 브런치 등의 글쓰기도 열심히 했지만, 그때는 그저 애매하게 꿈만 품고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본업과 더불어 꿈이 있다는 점은 우리의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다. 사진이든 글쓰기든 상이나 어떤 결과, 성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은 이런 연결고리에서 나왔을 것이다.

잠깐이지만 내가 선생님의 모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나로서는(사진이 대체로 잘 안 나온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께 사진을 찍힐 때도 무척 어색하고 서투른 모습을 보여서 운동을 할 때 못지않게 선생님을 난감하게 했던 것도 같다.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지만 결국 사진을 찍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이 남았을 뿐 아니라 평소 잘 하지 않던 일과 약간 친해져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의 한 장면으로 남을 만한 기억도 쌓을 수 있었다.


트레이너에게 운동을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트레이너의 모델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신선한 경험이다. 낯선 일을 꺼린다고는 하지만, 내심 신선하고 색다른 경험을 즐기고 기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운동하면서도 한 번씩 내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 안에는 쑥스러워하는 나도 있고, 웃음을 터트리는 나도 있었다. 사진을 볼 때면 2016년에 나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갔구나, 선생님과 이런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2016년에도 분명 고민이며 걱정이 많았을 텐데 사진 속의 나는 제법 활기차고 즐거워 보인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 놓치고 있었던 모습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생님은 얼마 후 정식으로 돈을 받고 일하는 사진작가가 되셨다. 그때 세운 다른 목표도 이루셔서 신문기사에 실린 모습도 접했다.


신문기사 속의 선생님은 빛나 보였다. 새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나의 여정이 더딘 것처럼 느껴졌다. 내게는 나의 속도가 있고, 나의 리듬이 있다는 말을 곱씹어 본다. 나는 오늘도 글을 썼고, 내일도 쓸 것이다. ‘일단은 그냥 한다. 즐거워하며.’ 모닝페이지에 쓴 말을 새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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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찍어주신 사진 중 하나. 어느새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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