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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an 24. 2022

발레와 나

다 늙어서 웬 발레



왜냐고 물으시면, 뉴턴 할아버지의 사과처럼 떨어져야 한다면 느릿느릿 우아하게 떨어지고 싶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내가 미들 삼십 대를 바라보며 발레를 시작한 이유다.


이성미같이 키도 작고 선머슴 같은 커트 머리에 하늘하늘 원피스는 어렸을 적 딸 둔 엄마 로망 이후 개나 줬달까. 보그가 노상 얘기하는 그 '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언매칭'이 좋았다. 상상하는 그대로 '언매칭'인 게 에러지만.


따라라~차분하고 소녀 같은 피아노에 맞춰 몸을 앞뒤 옆으로 굳이 찢으며 느끼는 고통은 가만있어도 뛰게 만드는 방방 음악에 맞춰 점프를 할 때 보다 훨씬 더 쾌감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Natalia Osipova-Short haired ballerina



아직도 난 보랏빛 그라데이션으로 곱게 물든 스커트를 휘날리며 사각 무대를 내 집 마루처럼 활용하고 싶은 꿈 따윈 없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이건 꿈꿔도 "안" 이루어진다. 그냥 몸을 찢는 게 좋다. 어깨는 펴고 등을 세우고 목을 살짝 들고 있으라 하니 키도 좀 커 보이는 거 같다.


토요일 새벽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 일요일 골골대며 발레를 다녀오는 내게 엄마는 그러다 신문에 나겠다고 했다. "신체적 결함을 극복한 삼십 대 중반의 발레리나" 이렇게 되면 자기 얘기도 꼭 해달란다. "엄마 없이는 할 수 없었어요". 벚꽃 같은 눈물이라도 떨궈야 하나.


다리를 168도 찢을 때까지 초급반에 머무르겠다는 결의로 무려 4개월째. 이렇게 꾸준히 열과 성을 다한 운동이라니. 어지러운 마음 때문인지, 떨어지는 사과 같은 몸 때문이지 나는 그렇게 이름도 거창한 발레를 붙잡고 있다. 자연스레 초급반의 고참이 되어 이제는 반복되는 같은 동작이 지겨울 때도 있고 수많은 반복에도 완벽하지 않은 몸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며 생각할 여유가 생기니 또 고질병이 도졌다. 하고 싶은 것이 또! 생겼다. '그래 이걸 꾸준히 배워서 그걸 하면 정말 좋겠구나' 이 욕심을 돈 벌 궁리에 쏟았으면 난 벌써 외제차 속에 배 나온 아저씨 흉내라도 냈을 것을. 꼭 하고 싶다.



-  2015.3.19의 기록

애 엄마가 된 지금 사무치게 그리운 나의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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