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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Feb 02. 2022

떡국을 대신한 국적 모를 할아버지의 쌀국수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그게 뭐 중요해?


매년 구정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닌, 대학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의 할아버지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던 나는 그 시절 매일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 세 명 있었다. 한 명은 동네에서 가장 큰 한국 마켓 사장 아들을 미모로 단박에 사로잡은 그 구역 퀸카를 보고도 ‘고릴라’ 같다며 혀를 차던 내 동생이 한눈에 반해 말을 잇지 못했던 미소천사 금발 베이글녀였고, 한 명은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한국 피를 가진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하며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로 열심히 자신의 길을 헤쳐가는, 뭐랄까 내게 ‘미국 학생’의 표본처럼 보인 똑똑하기 이를 데 없으나 술 앞에서 매일 밤 무너지는 올모스트 알코홀릭 눈웃음 당당녀였고, 한 명은 처음 만난 날 내가 ‘트레이너’의 입장으로 식당 서빙 매뉴얼을 가르치는데 1을 얘기하면 13 정도를 알아버려 나름 숙련된 서버였던 나의 입을 턱턱 막아버렸지만 이내 무한대 솔직함과 신동엽급 재치로 나의 배꼽을 털어버렸던 내 맘속 최고의 개콘녀였다. 마지막으로 대학을 졸업하면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불안한 신분의 유학생, 나였다.




그때 우리 네 명은 자석처럼 딱 달라붙어 매일 밤 먹고 마셨다. ‘근본’이 다 다른 네 명은 어찌 된 일인지 그렇게나 다른데도 그렇게나 잘 통했다.


말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기차처럼 빨라서 어쩌다 보니 나의 최고의 영어 선생님이 된 개콘녀는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다며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중국 미국 영국 등의 피가 섞였으나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미국 사람인 것 같고 이상하게도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한국인 같다고 한다며 알고 보면 한국 피도 섞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기 엄마는 자기를 낳고 아빠와 헤어져 할아버지와 살며 본인을 키웠는데 재혼은 하지 않았지만 배다른 동생이 세 명 있다고 했다. 그들의 아빠는 모두 다르다고도 했다. 이런 말을 단숨에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부드럽게 뱉어내는 그녀를 보며 솔직히 속으로 엄청 놀랐다. 이 외에도 난 그녀와 지내며 우주 끝 문화충격을 여러 번 먹었고 겉으론 ‘아 그렇구나’ 했지만 속으론 ‘대박’이라 외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덕에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선을 얻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충격 시리즈는 기회가 되면 다음에)



여느 때처럼 그날도 우리는 전날 퍼먹은 술에 후회를 토하며 마치 그 술이 냉장고에 남아 있었던 게 잘못이라는 식으로 엄한 술을 탓했다. 그리고 다 함께 해장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먹는 중에 그녀가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명절만 되면 밤새 국물을 우려 쌀국수를 해준다. 진짜 맛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와…. 진짜 맛있겠다”라고 했는데 그 한 마디에 바로 그녀는 “그럼 너도 같이 가자” 했다.


그 후로 우리 넷은 매년 새해 전 날이면 그녀의 할아버지 집에 초대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밤새 고기 국물을 우려냈고 이윽고 새해 아침이 되면 밤새 술을 퍼마신 우리에게 해장 쌀국수를 내주었다.


그 쌀국수는 국적을 알 수 없었고 그 할아버지도 국적을 알 수 없었다. 태국인지 베트남인지 캄보디아인지 알 수 없는 ‘근본 없는’ 쌀국수는 내 인생 최고의 쌀국수로 단단히 뿌리내렸다. 떡국 아닌 쌀국수로 보낸 나의 새해는 매년 더 깊고 더 진해졌다. 내 맘 깊이 뿌리내린 할아버지의 진한 쌀국수 국물처럼.


그곳을 떠난 지 십 년이 넘은 지금도 매년 구정이 되면 떠오르는 맛과 기억. 한 해를 거뜬히 살아가게 하는 든든한 기억 중 하나다. 그러고 보면 난 참 복이 터졌다.

happy new year and wish you the best of luck i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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