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속내를 부수는 파도 같은 할아버지의 위로
"엄마! 저기 스테판 할아버지 같아!"
“엄마, 스테판 할아버지 보고 싶다..."
"스테판 할아버지는 그림을 진짜 잘 그렸는데!"
요즘 우리 집에서 종종 들리는 말이다. 왜인지 고유명사처럼 들리는 '스테판 할아버지'는 지난번 집 팔고 차 팔고 살림 다 팔고 세계여행하던 독일 부부가 떠난 후 우리 집에 온 세 번째 게스트다. 아이는 이때까지 왔던 게스트 중 스테판 할아버지를 손에 꼽게 좋아한다.
[이전 글 : 독일 집, 자동차... 살림 다 팔고 세계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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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카우치서핑 앱에 알림이 떴다.
‘안녕? 난 작년 10월부터 혼자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스테판이야.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여행을 하는데 네 프로필을 보니 너도 그렇네! 이제 67세가 되니 일이 많지 않아 여행을 다니고 있어. 여행하면서 제일 즐거운 건 지역 사람들을 만나는 거지. 독일 나의 집에도 한국 게스트가 다섯 명이나 다녀갔었어. 혹시 이번 한국 여행에서 나를 호스트 해 줄 수 있겠니? 답변 기다릴게!’
67세? 눈을 의심했다. 작년 10월부터 혼자 여행? 그것도 카우치서핑으로? 스팸인가. 의문과 호기심으로 순식간에 달아오른 머릿속 회로가 길을 잃고 도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뜨거워진 회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얼른 프로필을 눌렀다.
환히 보이는 가지런한 이, 큰 안경 너머로 보이는 반달 모양 눈. 시원하게 웃고 있는 할아버지는 '나 귀신 아니야, 믿어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레퍼런스를 보니 무려 171개인데 그중 151개가 할아버지 집에서 머물었던 서퍼들이 남긴 것이었다. 모든 정황이 '실제'라고 말해주는데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만나보자!
'Hello Stefan, you are welcome to stay with us!'
(안녕 스테판! 우리와 함께 지내는 걸 환영해!)
세상에, 진짜 사람이 맞았다. 귀신처럼 느껴지던 그 사람이 부엌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종의 리추얼이 된 우리 집 '부엌토크'의 시작은 스테판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날, 내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으니 스테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요리를 하고 그는 부엌 한 편에 기대 서서 얘기를 하는데 그 순간이 묘하게 따뜻하고 자연스러웠다. 마치 함께 사는 친구가 일을 마치고 들어와 저녁을 준비하는 친구 옆에 서서 하루 일과를 종알종알 보고하는 기분이랄까. 대화도 점점 깊어지고 요리도 얼추 마무리되어 우리는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프로필을 보니까 독일 집에서 호스팅을 정말 많이 했던데 어떻게 그렇게 한 거야?"
"사실 난 20년 전쯤부터 아내와 별거하기 시작했어. 아이 둘을 혼자 키우기가 정말 힘들었지. 그때 독일에서는 부부가 따로 살게 되면 99.9% 엄마가 아이를 키웠거든. 그래서 나처럼 아빠가 키우는 집이 흔치 않았어.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말이야.
그래서 Aupair (오페어: 베이비 시터로 일을 하며 유럽에 머무를 수 있는 비자)로 아이 봐줄 사람을 구했지. 이번 여행의 첫 나라가 우즈베키스탄이었는데 우리 애들 1년 정도 봐준 여성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왔었거든.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서 만나러 갔었어.
카우치서핑은 집에 방이 하나 남기도 했고 아이들도 여러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호스팅을 시작했어. 아이들이 집에서 나랑만 교류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을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어."
"아 그랬구나. 그런데 신기하네. 나도 비슷한 마음으로 호스팅을 시작했거든. 시작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아이를 위해서였어. 나도 몇 달 전부터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고 이혼 과정 중에 있어. 그런데 나도 아이가 집에서 나와만 소통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하다 보니 '공동육아' 효과도 있어 나에게도 좋고 아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해."
"그렇구나! 난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아내가 정신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런데 그때는 그걸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점점 더 감당할 수 없게 됐고 둘째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별거를 시작했어. 아이들이 엄마집에 있을 때 무슨 일이 생겨도 바로 나에게 올 수 있도록 아내와 아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어."
"와... 아이들도 힘들었겠네. 이 모든 걸 이겨낸 너와 아이들이 존경스러워."
"아이들도 처음엔 좀 힘들어했지만 크면서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어. 나는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아이들과 가까워.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하나야. 지금 어려운 일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네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중요해. 그때 난 몰랐어. 너무 힘들기만 했거든."
스테판을 만난 지난 4월 난 이혼의 과정 중에 있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 7월 말, 모든 과정을 마치고 법적으로 '싱글맘'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스테판의 저 마지막 말이 어떤 힘이 되었는지는 굳이 풀어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묵직한 속내를 한 순간에 부수던 파도 같은 할아버지의 위로. 다소 잔잔해진 위로는 마음속 해결해야 할 리스트의 일들이 하나씩 지워질 때마다 뜨거운 용암처럼 솟아올라 속 깊은 용기와 강인한 행복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스테판을 만나고 생각난 책이 있다. <침몰가족> 1994년 싱글맘이 된 일본의 가노 호코라는 여성은 길거리에서 공동육아를 하자는 전단을 나눠준다. 그렇게 수많은 어른에 둘러싸여 자란 아이가 그때 자신을 키워준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것을 영화로 만들었고 영화가 책이 되었다. 가노 호코는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1.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2.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쓰치(아들)가 자랐으면 좋겠고, 나도 그런 환경에서 지내고 싶다.
1994년 일본 히가시나카노에서 아이를 함께 키울 사람을 찾기 위해 전단지를 뿌리던 가노 호코, 2000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머물 곳이 필요한 사람을 초대해 함께 살며 아이를 키우던 스테판, 그리고 2024년 카우치서핑으로 새로운 공동육아를 경험하며 이것을 어떻게 확장해 나갈지 고민하는 나. 우리는 아주 다른 시간, 아주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아이를 만났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여정에 대한 고민과 의문은 비슷했다. 무엇보다 '한부모'라는 조건 안에서 아이도 나도 행복할 수 있는 육아방식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실행하는 면에서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가노 호코, 스테판 그리고 나는 살아온 시대는 좀 달라도 말은 참 잘 통하는 친구 같았다.
애초, ‘칠순 다 된 독일 할배’가 보낸 귀신같은 문자를 마주했을 때 난 그와의 짧은 동거가 나의 세계를 얼만큼 확장시킬지 알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스팅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를 벌었다고 해야 할까.
귀신도 거품 물고 놀라자빠질 금액이겠지, 뭐! 땡큐 쏘머치, 스테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