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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ul 17. 2024

독일 집, 자동차…살림 다 팔고 세계여행 중!

우리 집 두 번째 손님 독일에서 온 부부 이야기




우리 집 첫 번째 손님, 두 러시안 여인은 깔았던 요를 단정히 정리하고 덮었던 이불의 커버를 벗겨 한편에 얌전히 두었다. 다소 투박한 여행을 즐기는 '카우치 서핑'의 게스트가 들고 난 자리라 하기엔 더없이 고요하고 깔끔했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난 그들의 이름과 국적, 어떤 여행을 하는지 정도만 알고 있었다. '카우치 서핑'이라는 커뮤니티에 기대어 낯선 여행객을 '신뢰'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들은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 또 한 겹의 단단한 '신뢰'를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품 안에 들어온 기분 좋은 신뢰에 한껏 웃어보며 두 번째 손님을 맞을 빨래를 번쩍 안았다.



손님의 기준은, 내가 만나보고 싶은 사람


Welcome! @unsplash


두둥, 우리 집 두 번째 손님은 무려 집 팔고 차 팔고 모든 살림 다 팔아 세계 여행 중인 독일에서 온 부부였다. 첫 번째 손님을 맞은 이후로 꽤 많은 호스팅 요청이 오는데 그것을 보고 요청을 수락하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이 사람을 만나보고 싶은가'이다.


요청 메일을 보낼 때 사람들은 보통 본인이 어떤 사람이고 지금 어떤 여행을 하고 있고 나와 만나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적는다. 난 그 사람의 프로필에 들어가 그동안의 카우치 서핑 히스토리도 볼 수 있고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볼 수 있다.


이 부부는 아쉽게도 카우치 서핑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남긴 레퍼런스는 없었다. 하지만 독일 집의 모든 것을 팔고 세계 여행을 시작했다는 말에 덜컥 수락을 눌렀다. '이 사람들, 만나보고 싶다!'


'카우치 서핑'의 호스트가 되면 이리저리 떠도는 여행객에게 방을 하나 '공짜로' 내줘야 한다. 굳이 안 써도 되는 방 하나 정리해서 내주고 나면 의외로 내가 얻는 것들도 많다. 기대한 게 없기 때문에 갑자기 하늘에서 콩고물이 떨어지는 셈이다. 여기저기 떨어지는 콩고물 받아먹기 바쁜데 그 와중에 가장 달콤한 맛은 바로 '방구석 세계여행'이란 녀석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만나고 일상을 살아보는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때로는 하릴없이 무작정 쉬는 게 전부인 리조트 여행도 꿀맛이지만 왜인지 금방 지겨워진다.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 나라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에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다면 제일 좋고 아니라면 말 한 마디라도 해보고 싶다.


이 나라도 궁금하고 저 나라도 궁금하고 여긴 무얼 먹고 사는지 저긴 무슨 놀이를 하는지 이 사람들은 쉬는 날에 뭘 하는지 저 사람들은 데이트를 어디서 하는지 궁금한 게 많아 배가 고플 지경이다.


이런 내가 방구석에 있으려니 말 그대로 좀이 쑤셔 아이 방학과 나의 일정이 맞아떨어진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매일 고민하고 있다. 그런 차에 기회가 되어 예전부터 하고 싶어 안달 났던 '여행객 초대'를 시작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일어 시작했는데 이것이 방구석 세계여행 역할을 할 줄이야!


러시아에 당장 가보지 못해도 러시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사람, 교육, 연애에 대해 마음껏 떠들 수 있었고 이번에는 세계 여행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그들이 다녀온 여행지가 내 안에 훅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가성비 넘치는 방구석 세계여행

"필리핀은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었어. 참 특이한 경험이었어. 가게 되면 이 도시를 추천해." "스리랑카 한 번 가봐. 우린 여태까지 갔던 데 중에 다시 돌아가라면 스리랑카를 한 번 더 가고 싶어. 내가 갔던 게스트하우스 알려줄게. 뷰가 천국이야." "너네 집에 오기 전에 코인세탁소에서 세탁을 하는데 거기 주인이 갑자기 이런 떡을 사다 주었어. 너무 친절해서 고마웠어."


우리나라 밖으로부터 시작해서 안으로 들어오는 여행이야기. 첫날밤 우리는 밥상 앞에 마주 앉아 세계를 한 바퀴 돌았다. 나는 또 떨어지는 콩고물을 쉴 새 없이 받아먹었지.


장기간 여행하는 사람들은 선물을 들고 다니기가 어려워 시장에서 이런 걸 사온다. 참외가 뭔지도 모르고 사온 사람들:) 취향저격 진로 두꺼비와 오감자



50리터 배낭에 담긴 세상

"처음 여행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우리는 원래 여행을 굉장히 좋아했어. 우린 둘 다 미국에서 일을 했는데 거기서 만났거든. 미국 내 여행을 시작으로 해서 독일에 살면서도 정말 많이 다녔어. 그러다가 세계 여행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어."


"오기 전에 나한테 호스팅 요청 메일을 보낼 때 모든 걸 다 팔고 여행을 다닌다고 했는데 그럼 정말 저 가방 두 개가 전부야? 독일에 아무것도 없어?"

"응... ㅎㅎ 차를 팔았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해. 너무 홀가분했거든. 사실 우리에겐 차가 필요도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갖게 되었고 짐처럼 느껴졌어. 그리고 나머지 물건도 다 팔아서 아무것도 없어. 더 줄이고 싶지만 그것 또한 욕심인 거 같아서 저 배낭 두 개에 가벼운 배낭 두 개는 들고 다녀."


"세상에... 굉장하다. 그럼 다시 독일에 돌아가면 다른 일을 찾을 거야?"

"음.. 사실 독일에 돌아갈지 아닐지 몰라. 여행을 시작할 때 어디서 살지 찾아보자고 한 거였거든. 독일 살기 좋은데 우리에겐 너무 추워. 좀 따뜻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서 탐색 중이야."


"아! 그렇구나! 이제 좀 명확해졌네. 목적이 분명히 있었구나. 너무 멋지다. 꼭 살고 싶은 나라를 찾기 바라!"

"응, 고마워! 우리가 독일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네가 독일에 온다면 얼마든지 도움을 줄게. 번역이나 통역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그리고 우리 꼭 계속 연락하는 거야!"


"그럼 그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너희가 세계 어디에 있든 내가 놀러 갈게. 나 꼭 재워줘야 해!"

"당연하지! 언제든지 웰컴이야."


온 세상을 품은 배낭 @unsplash


떠나는 날 내 키의 3/5 정도 되는 긴 가방을 짊어지고 한없이 웃으며 한없이 인사하던 두 사람. 며칠 후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 오사카에 잘 도착했어! 여긴 또 새로운 세상이네! 잘 있지?"

"응, 그럼! 사진 보내줘서 고마워. 우린 벌써 너희가 보고 싶다!"


아들에게 필립과 바오가 보내온 사진을 보여줬다. 그들이 떠나고 계속 그들을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이 한 마디를 던졌다.


"엄마, 그래서 필립하고 바오 아줌마는 집이 생겼대?"


하하, 아니 아직이란다, 얘야. 좀 시간이 걸릴 거 같아. 그러나 그들에겐 집보다 더 크고 좋은 세상이 있어! 너도 그 세상을 알게 되길!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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