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족이라는 무거운 이름 # 1
오늘은 엄마, 아빠와 여행을 하는 날이다. 우리는 여행 계획을 세우며,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기 전 꼭 양가 부모님과 한 번씩 여행을 하자고 했었다. 우리에게 여행의 기쁨을 알려주신 분들, 우리가 긴 여행을 하는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응원해주시지만 그보다 더 걱정도 하고 보고싶어 하실 분들께 여행을 대접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는데, 우리는 하루종일 또 받기만 하고 말았다.
원래는 2박 3일이나 1박 2일의 여행을 하려고 했으나 고3인 동생을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당일치기를 하게 되었다. 그 안에서 최대한으로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군산에서 아침 7시 20분 버스를 타고 서산터미널로 향했다.
우리가 서산터미널에 내리고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빠로부터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나갔더니 아빠가 차를 도로변에 임시로 세워두고 급한 모양으로 내리셔서는 트렁크를 열어 얼른 가방 부터 넣으라고 말했다. 차를 얼른 빼야되는 상황임을 인지했지만 아빠에 대한 반가움이 더 컸다. 오랜만에 본 아빠는 엄청 멋있었다. 선그라스를 끼고 검정색 반팔티에 카키색 면바지를 입었다.
“올~ 아빠 오늘 엄청 멋있는데?”
차에 타니 조수석에 앉아있던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반가운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는 여느 때처럼 밝고 엄마다웠다. 보통 그 나이대의 여성이라면 시도하지 않을 것 같은 옷들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오늘은 핫핑크색 후디에 청소라색 아우터를 걸치고 흰색 바지를 입었다. 그 옷들은 마치 이 세상 사람들 중 딱 한 사람, 우리 엄마 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딱 엄마 거 였다.
다들 일찍 일어나서 나왔고, 아침을 먹지 못하고 열 시가 다 되어갔다. 엄마는 토마토와 사과를 갈아 만든 쥬스와 대저토마토 자른 것을 꺼냈다. 우리는 그것들을 먹으며 식당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아빠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용유지라는 곳 근처에 식당들이 있다고 하여 네비게이션에 ‘용유지’를 찍고 갔다.
그런데 길이 이상했다. 가라는 길로 갔는데 도로는 점점 좁아졌다. 신기하게도 이상한 길로 들어서는 것 같은 이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주변의 풍경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기 외국 같다~!’며 좋아했다. 드넓은 목초지와 그림 같은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졌다. 핸들을 잡고 있는 아빠는 네비게이션이 우리를 이상한 길로 인도하는 것에 살짝은 당황하면서도 예상치 못하게 펼쳐진 이 풍경이 좋은 듯 했다.
어렵게 용유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우리가 오면서 본 그 아름다운 풍경들의 끝에 있는 그 무엇이었다. 영화 속에서 나올것만 같은 풍경들을 따라가 그 끝자락에서 닿은 이곳에는 요정이나 유니콘이 살 것만 같았다.
점심을 먹고 바다를 보러 몽산포 해변으로 향했다. 해안선을 따라 한반도를 돌며 동해와 남해 바다는 보았는데, 서해안의 갯벌 바다는 오랜만이었다. 썰물 때라 그랬는지 더욱 광활해보였다. ‘여기 몽골 같다!’는 아빠의 말에 ‘그래서 몽산포 해변인가봐요~’ 능청스러운 사위가 답한다.
바다 앞, 마트와 카페를 겸하고 있는 작은 공간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마이구미와 커피맛 땅콩 한 캔을 사들고 온 엄마는 여기 강냉이도 없고 뻥이요도 없다면서 섭섭해했다. 이에 뻥이요를 매일 복용하는 사위는 가방에 뻥이요 한 봉지를 구비해두었다고 말했고, 엄마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다.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는데도 이 하루는 참 짧았다.
아빠 엄마와 이십여 년을 같이 살며 서로 상처도 많이 줬는데 결혼하고 부모님 집에서 나오고 보니 어딜 가도 이렇게 나와 영혼이 비슷한 사람이 없었다. 같이 살 때는 노심초사 매 순간 조금이라도 내가 잘못될까 걱정어린 예민함으로 바라보시던 그 눈들에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사랑만 남아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 예민함이 그분들인줄 알고 많이 미워했던 나는 사랑만 남은 그 눈에서 내 영혼이 보여 웃고 또 울었다. 이렇게 잘 맞는 우리였는데, 왜 같이 사는 동안에는 날이 서있었는지, 영혼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왜 표면적인 것들에 부딪히고 상처냈는지, 마음이 아팠다. 따로 살게 된 후에야 느끼게 된 이 감정이 안타깝고 아쉽지만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런 순간이 온 거라는 걸 알기에 또 감사하다. 믿음직한 우리 남편이 식구로 들어오고 그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이 편안했기에 부모님도 아무 걱정 없이 나를 바라볼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부모님이 마음 놓으실 수 있을 만큼 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인 우리 남편이 고마웠고, 아직 많이 부족한 우리 부부를 온전히 믿고 그저 예뻐만 해주시는 부모님이 고마웠다. 이 모든 걸 알고 계획하셨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2018.04.
대한민국 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