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족이라는 무거운 이름 # 4
오후 두 시 이십 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야 했다. 두 시간 전인 열두 시 정도 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공항에 가기 전에 일산에 사시는 친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서 잠깐 인사를 드리고 가기로 했다. 여행 시작 전에 인사를 못 드렸기 때문이다. 그 시간까지 계산해 우리는 여덟 시 오십 분 쯤 집을 나섰다.
“그 시계방이 어디있다고 했지, 아빠?”
여행 갈 때 가져가려고 했던 시계가 죽어서 아빠한테 시계방 위치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집 바로 앞에 있다고 알려주셨는데 찾지를 못해서 출발하기 전에 아빠랑 같이 갔다 가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바로 그 시계방이 눈 앞에 보였고, 아빠는 유턴해서 시계방 바로 앞에 차를 세웠다. 시계를 들고 차에서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엄청 크게 ‘펑!’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앞에 노란 버스 한 대가 있기에 버스가 방귀를 크게 뀌었구나,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사장님과 배터리 종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배터리를 보면 사려고 빼놓았던 터라 내 시계 안에는 배터리가 들어있지 않았다. 내 것과 같은 남편의 시계를 가져다 보여드리려고 문 밖으로 나갔다.
아빠의 차는 인도 위로 걸쳐들어와 있었고 아빠와 남편이 둘 다 차 밖으로 나와있었다. 남편에게 시계를 좀 달라고 했더니 시계를 풀어주며 속삭이듯 그가 말했다.
“아버님 차 바퀴 펑크났어...”
응...? 바퀴가 펑크났다고?
남편의 시계를 가지고 들어가니 사장님은 쉽게 알맞은 배터리를 찾으셨다. 할 일을 마치고 나니 아까 차에서 내리자마자 들었던 ‘펑’소리가 생각났다. 그게 아빠 차 펑크 나는 소리였구나.
다 끝나고 나오니 아빠와 남편은 끙끙대며 차 지지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지지대를 차 밑에 받쳐 차를 들어올려서는 펑크가 난 오른쪽 앞바퀴를 뺐다. 평소에는 들어있는줄도 몰랐던 스페어 타이어가 트렁크에서 나왔다. 두 남자는 오른쪽 앞바퀴를 뺀 자리에 작고 어설퍼보이는 스페어 타이어를 끼워넣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난생 처음으로 타이어가 펑크 나는 걸 봤는데, 그게 오늘이라니! 우리가 이 년 짜리 세계여행을 향해 출국하는 날, 채 오십 미터도 가지 못하고 집 앞에서 타이어가 터지다니! 장도를 떠나기 전 온갖 어려움이 따르는 영웅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스페어 타이어를 달고 다시 차를 타서 3~4미터 쯤 갔을까, 자동차 크리닝, 엔진 오일 교체, 타이어 교체 등을 해주는 카센터가 나왔다. 이 자리에 이 샵이 들어선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 나에게 필요한 적이 없었던 곳이라 매번 이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여기가 뭘 하는 곳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직원 분께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이 타이어가 많이 쓰이는 타이어가 아니라서 다른 곳에서 가지고 와야 하는데 그 시간이 최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아빠 차는 한국에서 판매가 중단 된 일본 수입 차였다.
큰일이었다. 최소 한 시간인 거면 할머니 댁을 갔다가 공항에 가기에는 많이 빠듯했다. 바로 공항에 가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인사를 못 드리고 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주변에 쏘카를 빌려서 다녀올까, 택시를 타고 갔다와야하나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어느 것도 꼭 알맞아보이는 대안이 없었다. 결국 아빠는 할머니께 전화를 해서 못 갈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찾아 뵙진 못하고 통화만 하셔야 할 것 같다고, 애들 바꿔드리겠다고 했으나 성사되지 못한듯 했다. 전화기는 우리에게 넘어오지 않았고 전화는 끊겼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꼭 주고싶은 것이 있으시다며 아주 잠깐이라도 얼굴 보고 가라고 하신 것이었다.
오십 분쯤 기다렸을 때 타이어가 왔고, 십 분 정도 더 기다리니 장착까지 끝이 났다. 다 끝나고 아빠가 말해준 것인데, 이곳 직원 분들이 오늘 근로자의 날이라 쉬려다가 그냥 나와보신 거라고 했다. 이렇게 급하게 그들을 필요로 할 우리가 있을 줄을 미리 아셨던 것일까?
서둘러 일산의 할머니댁으로 출발했다. 도로 위에서도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모처럼 직장인들의 휴일인 근로자의 날인데다가, 고양 꽃 박람회가 열리는 날이었고, 고속도로 일차선에 사고가 있었다. 차가 막힐 수 있는 경우 삼종 세트를 선물 받아 우리 세 명의 심장은 쫄깃쫄깃해졌다.
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나와계셨다. 우리가 시간이 없는 걸 아시고는 할머니도 급한 움직임으로 손에 들고 계시던 것들을 나에게 챙겨주셨다.
“이건 박카스여, 박카스! 그리구 이건 할아버지가 따로 챙겨준 용돈. 이건 막내고모부가 챙겨준 용돈. 이건 할머니가 주는 거!”
할머니는 박카스가 담긴 묵직한 흰색의 불투명한 봉다리를 내 손에 쥐어주시고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용돈 봉투를 하나씩 전해주셨다.
“느그들 얼마나 가는 거지?”
“한 2년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고, 2년 씩이나...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늘나라 가고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오늘 얼굴 보자고 한 거야. 마지막으로 보는 걸 수도 있어. 건강하게 잘 갔다와~”
아유, 무슨 말씀이세요, 오래오래 사실 거에요, 말하며 간절히 바란다. 꼭 2년 뒤에 돌아왔을 때 다시 인사드릴 수 있기를 말이다.
할아버지는 댁에 계시다고 했다. 할아버지도 뵙고 가고 싶어 서둘러 댁으로 올라갔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도 한참 있다가 문을 열어주신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고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내시는 할아버지를 만류하고 얼른 가봐야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마음아팠다. 부엌 옆의 작은 방에는 할머니가 우리 주시려고 꺼내 놓으신 과일들이 예쁘게 놓여있었다.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할머니가 그러셨다.
“너 애기 때 아빠가 안고 있는 사진도 꺼내놨는데... 너도 활짝 웃고 있고 아빠도 활짝 웃었어, 그 사진이~!”
공항으로 가는 길, 언제나처럼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 집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 보던 그 길에도 정이 들었다는 걸 느꼈다. 왼쪽으로 깊게 돌아야하는 고가도로, 우리는 늘 그 위를 지나며 명절 음식을 한 엄마를, 설거지를 한 나를, 운전을 오래 한 아빠를 서로 격려했었다. 차를 타고 나와 어느 정도 머릿 속에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날 때 쯤이면 항상 그 고가도로 위 였던 것 같다.
오늘은 명절 음식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공항에 도착하니 12시 반 쯤이었다. 얼른 수속 위치를 찾고 줄을 섰다. 이십여 분 쯤 기다려서 수속을 마쳤고, 아빠와 함께 식당가에 올라가 다이나믹했던 반나절을 곱씹으며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다 먹으니 딱 탑승장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탑승장 입구에 서서 나와 남편이 번갈아 아빠와 포옹을 했다.
“시간이 그냥 어느새 흘러서 2년 뒤가 되어있을 것 같네요. 저희 다녀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이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남편이 말했다.
내가 공항에서 울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펑크 난 타이어 덕분이었다. 먼 길 가는 사람 같지 않게, 잠깐 어디 외출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떠나왔다.
2018.05.
대한민국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