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행복에 대하여 # 2
베니스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짐을 풀어놓고 아침에 하지 못한 샤워를 하고 길을 나섰다.
베니스 섬의 유일한 버스정류장인 산타루치아 정류장에서 부터 걷기 시작하여 산마르코광장 까지 걸었다. 리알토 다리, 산마르코 대성당, 두깔레 궁전 등을 눈에 담아두었다. 꼬불꼬불 미로 같은 베니스의 길들을 뚫고 걷다보니 이미 3km도 넘게 걸은듯 했다.
배가 고파와서 저녁을 먹으러 레스토랑을 찾았다. 아주 저렴한 가격의 메뉴판을 보고 들어갔는데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인터넷으로 이 식당을 검색해보니 평점이 1점대였다. 살다살다 1점대 음식점은 처음 봤다. 도대체 어느 지경이기에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악평을 해놓았나 읽어보니, 외부 메뉴판에는 엄청 저렴한 가격표를 전시해놓고는 다 먹고 계산서를 받아보면 테이블 차지에, 서비스 요금까지 더해져 아주 비싼 값이 나온단다. 거기에 더해 음식이 늦게 나온다, 너무 맛이 없다, 동양인을 차별한다, 등의 의견들도 있었다.
다행히 음식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계산서에 찍힌 가격도 우리가 리뷰를 보고 대충 예상했던 금액이 나왔다. 모르고 이 계산서를 받았다면 적잖이 놀랐겠지만 우리는 리뷰를 읽음으로써 매를 먼저 맞아놓았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편치 않았던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얼른 이곳을 뜨고 싶은 생각에 즉시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해는 저물어 어둠이 찾아왔고,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얼른 처마 밑에 숨어 챙겨온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가방에도 레인커버를 씌웠다. 장기여행자에게 우산은 사치라는 것을 안지 오래라 우리에게 우산 따위는 없었다. 바람막이 뒤에 달린 모자를 쓰고 젖은 땅을 바라보며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 안 걸었는데 빗줄기가 거세어졌다. 이렇게 힘센 소나기가 올 때에는 조금만 기다렸다가 가면 금방 빗줄기가 약해지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기에 우리는 건물 밑으로 가서 숨었다. 두세 사람, 네다섯 사람이 와서 이곳에 모였다. 스무 명도 넘는 사람이 오갔는데 비는 좀처럼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식당에서 좀 더 앉아있다 나올 걸. 도망치듯 나와버린 것이 후회되었으나 돌이킬 수는 없었다.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서 우리는 고민하다 결국 이 빗속을 뚫고 가보기로 했다. 내가 먼저 빗속으로 뛰어들었고 그가 뒤따랐다.
십 초가 멀다 하고 천둥 번개가 쳤다. 번개를 꼭 천둥이라고 말하는 그가 '천둥이다!!'하면 그건 분명 번개였고, 뒤이어 진짜 천둥이 우르르쾅쾅 울려퍼졌다. 골목골목은 너무 어두웠고 길은 미로 같기만 했다. 열심히 달렸는데 막다른 길이 나와 돌아나가야 할 때도 있었다. 이토록 굽이친 길인데 비가 너무 많이 오는 탓에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갈 수도 없었으며, 젖은 손을 젖은 옷에 닦아가며 겨우 지도 앱을 켰을 때에도 GPS는 작동하지 않았다. 옛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베네치아의 매력인데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밤에는 그 매력이 다 무슨 소용이랴, 전부 귀신의 집처럼 황량하게 보일 뿐이었다. 나는 약간 겁을 먹었지만 얼른 집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운 내서 열심히 걷고 또 뛰었다. 그도 나와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았는데, 어딘지 꽤나 신이 나 보였다.
“나 이런 거 좋아!!! 엄청 찌질한 배낭여행자 같고 좋다~” 그의 상기된 말과 어린 아이 같은 표정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게 뭐야~~!”
“다음에도 우리 한 번씩 이렇게 하자! 빗속에서 뛰니까 낭만적이다~!”
“이걸 또 하자고?! 천둥번개 이렇게 많이 치는데!??”
그는 가끔 너무 철이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신 그보다 훨씬 자주, 그 해맑음으로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이다.
호스텔에 도착해서 우리는 비에 쫄딱 젖어버린 옷들을 벗고 뽀송뽀송한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야 완전히 무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의 긴장이 확 풀리며 피곤이 몰려왔다.
자려고 누워 생각해보니 뭐 하나 잘 풀린 게 없는 하루였다. 돌이켜본 우리의 모습이 참 웃기면서도 애틋해서 미소가 새어나왔다. 이층 침대 위에서 벽 쪽으로 몸을 딱 붙여놓고 일층 침대에 누워있는 그에게로 얼굴을 내밀어 소곤한 목소리로 오늘을 곱씹었다.
2018.09.
이탈리아 베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