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64] 뉴질랜드 글레노키 (퀸즈타운 옆 작은 마을)
아침에 여덟 시쯤 일어나서 계란을 삶아 먹고 체크아웃을 하고 글레노키로 향했다. 글레노키로 가는 드라이브길에서 설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며 우리는 몬테네그로 코토르와도 비슷하다며 코토르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어제는 산크리스토발과 퀸스타운 중 어디가 더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코토르에서 산을 바라보며 바다에 들어가 수영했던 것, 수영한 후 바다를 보며 피자를 먹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여행을 하며 여행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사십 여분을 달려 글레노키에 도착했다. 남편이 ‘글레노키다!’하고 외쳤는데 사실 ‘엥, 도착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중심부라고 하는 곳에도 별 게 없었고, 듬성듬성 각자의 개성을 담은 집들 만이 성기게 놓여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작은 마을이었다. 소박하고 아담한 이 마을에 신은 세상에 없는 풍경을 선물하셨다. 아무 데나 둘러봐도 작품 같았다.
이 작디 작은 마을은 보면 볼수록 매력있었다. 어린 아이가 예쁜 이유와 꼭 같았다. 작고, 순수하고, 투박하고, 꾸밈 없지만 존재 자체로 가장 아름다웠다. 아이 같이 때묻지 않은 이 마을에서 우리는 둘 다 아이가 되었다.
이곳에는 일주일 중 딱 금요일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한 시간만 오픈하는 글레노키 도서관도 있었고, 사람이 딱 스무 명만 들어가면 꽉 찰 것만 같은 아주 작은 교회도 있었다. 그 교회는 구교와 신교의 예배를 같이 드리는 곳이었다. 매달 둘째 주 일요일에는 천주교 미사를, 넷째 주 일요일에는 개신교 예배를 드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개신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은 남편과 성당에서 결혼하였다. 구교와 신교,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겠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통한다고 믿었다. 오늘 만난 이 작은 성당이자 교회인 이 예배당이 나에게, 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남편이 미리 찾아놓은 카페를 찾아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맥과 광활한 호수가 펼쳐지는 풍경을 등지고 있는 이 카페는 큰 자연 속 작은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 내부에는 예쁜 먹을거리들이 진열되어있었고, 색색깔의 책들과 악세사리들은 누군가의 취향을 짙게 묻혀놓은듯 일관성있고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롱블랙과 플랫화이트를 한 잔씩 시키고 홈메이드 라즈베리 잼과 생크림과 함께 준다는 스콘을 하나 시켰다. 스콘을 조금 뜯어 라즈베리 잼을 얹고 생크림을 얹어 입에 넣었을 때, 나의 온 얼굴이 반응했다. 이것은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퍼석할 것이라고 생각한 스콘은 믿기지 않게 촉촉했고, 라즈베리 잼은 혀에 닿는 순간 별사탕을 먹은 것만 같은 청량감이 있었다. 남편의 꼭 쥔 주먹만 했던 글레노키의 스콘은 마지막 한 입을 먹는 순간까지도 백 퍼센트의 만족감을 선사했다. 다 먹고 나서 다른 디저트도 주문해서 먹어보기 위해 남편이 카운터 앞을 기웃거렸더니 카페 주인은 ‘루이스 케잌’이라는 뉴질랜드 전통 디저트의 유래도 설명해주고, 방금 우리가 먹은 스콘의 부드러운 맛의 비밀도 알려주었다.
“그 스콘의 비밀이 뭔지 아세요? 그건 바로 ‘스프라이트’에요!”
카페 안에 있던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내 마음에 쏙 드는 지갑을 발견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부드러운 가죽 촉감에다가 뉴질랜드의 아름다움을 담은 뉴질랜드 작가의 그림이 프린트되어있는 장지갑이었다. 새와 꽃과 하늘과 나뭇잎, 내가 뉴질랜드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물건으로 만들어낸다면 딱 이 지갑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가방에서 내 여권을 찾아다가 넣어보니 딱 알맞게 들어갔다. 한참을 쓰다듬다가 계산대로 가지고 갔고, 이내 나의 것이 되었다. 나는 그 지갑 안에 이곳의 햇살을 꾹꾹 눌러담았다.
카페에서 나와, 나무가 우거진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단 한 명의 사람도 없는 길을 걷고 있는데 저 반대편에서 말을 탄 사람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그들은 방향을 틀어 왼쪽에 나 있는 물길로 향했다. 말들은 사람들을 태우고 그 물을 건너 갔다. 말의 무릎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얕은 물길은 행렬의 이동에 잔잔하게 일렁였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라기엔 너무 영화 같았다.
그들이 지나간 물길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이 다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길 가까이로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우리는 손을 오목하게 만들어 물을 떠서 마셔보았다. 모래 맛이 조금 났다. 그는 나에게 물수제비를 해 보라고 제안했으나 나는 물이 너무 얕아서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상관 없다고 하며 얇고 편편한 돌멩이를 찾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팔과 손목에 스냅을 걸어 물수제비를 떴는데, 됐다. 그 뒤로 수제비를 한 서른 그릇쯤은 더 떴다.
한참을 놀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어 풍경을 바라보았다. 몇 걸음 뒷걸음질 치고는 아까 우리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 풍경 속에, 저 물가 앞 자리에, 물수제비 뜨고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예뻤다. 이곳에서 놀고 있는 우리 모습을 누가 보았다면 참 예쁘다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9.10.25.
세계여행 Day 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