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09~560] 호주 멜번에서의 워홀라이프를 정리하며.
주저리주저리, 여덟 페이지를 꽉 채워 썼다가 새 파일을 열어버렸다.
여덟 장 짜리 수다쟁이의 결론 부터 말하자면 이거다. 우리는 호주에 와서 영주권을 준비했다가, 그러기를 멈추고 다시 여행길에 나서기로 하였다.
“영주권? 원래 호주에 살 마음으로 간 거였어? 남은 여행은 어떡하고?”
그러게 말이다. 원래 이곳에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영주권을 준비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워홀비자를 신청해서 온 것도 아니었고 실제로 2019년 말 부터 다음 여행 계획이 있었던 상태였다. 우리가 계획한 세계여행의 절반 까지 밖에 오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듯 영주권, 그리고 장기 거주를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때때로 사람들은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이 갑자기 마음 속에 강한 소용돌이로 휘몰아쳐 들어올 때 그것을 신의 음성이라 여기곤 한다. 나에게 또한 호주 입국 직전, 신의 음성이 찾아왔었고 그 신의 음성이 아니었다면 호주에서의 시간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왜 시작한지도 모르게 시작한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았던 멜번이라는 도시는 거주하기에 좋은 점들을 정말 많이 갖추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 7년 연속 1등을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높은 임금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생활 물가는 삶의 질을 높여주었다. 이곳에서는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 부터 도로를 정비하는 노동자들 까지,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임금을 손에 쥐었다. 남편은 이곳에서 육개월 간 창고에서 짐을 나르고 물건을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한국에서 잠깐 일했던 대기업의 월급보다도 웃도는 월급을 받았다. 하루 노동 시간은 한국 대기업보다 두 시간이나 적었는데도 말이다. 거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식료품, 의류 등 거의 모든 생필품들의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다. 외식비는 한국과 비슷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남편이 외벌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가능했다.
공기가 좋고 도시에 공원이 넘쳐나는 것 또한 정말 큰 장점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공원에 나와서 운동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는다. 도시 한복판에서도 어렵지 않게 풍요로운 자연을 누릴 수 있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좋은 놀이공간과 학습공간들이 넘쳐났고, 성인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의 균형을 보장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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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장점들을 뒤로하고서 우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정착하기로 결정하게 한 단점들도 있었다.
첫째로, 우리는 현지인들 속에 백 퍼센트 융화될 수 없었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온 우리는 호주에 왔다고 해서 호주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호주에 살고 있는 한국인일 뿐이었다. 이곳에 몇 년을, 혹은 몇 십년을 살고 있는 선배 이민자들을 보아도 그랬다. 그들은 호주 안에서 한국인이 하는 회사를 찾아서 가고, 한국인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한국인을 사귀고, 한국 식당을 가고, 한국 마트에서 장을 보며, 한인 교회에 다닌다. 이민 2세나 3세쯤 되어야 비로소 호주 사람이 되지, 이민 1세대는 평생을 이민자이자 이방인으로 사는 것 같았다. 내 나라, 내 언어, 내 문화권의 사람들이 편한 것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아니고, 바꾸고 싶다고 쉽게 바뀌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 또한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의 감정을 표현해온 모국어로의 소통에 갈증이 있었고, 그걸 해소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사는 한국인들 밖에 없었다.
인종차별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나는 인종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그냥 사람’이었는데, 이곳에서의 나는 ‘아시안’이었다. 다인종국가라고 하는 호주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멜번이지만, 그래도 아시안은 약자였다. 아시안이고, 여자여서, 나는 커다란 SUV를 몰고다녔음에도 운전 중에 이유 없이 욕을 먹은 때가 있었다. 반복적으로 내가 ‘아시안’임을 인식하게 되는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이곳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게 된다면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남들이 정한 아시안에 대한 편견들 속에서 고통 받지는 않을까, 약자라 인식하고 움츠러들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외로움이었다. 나는 한동안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오랜 해외 생활로 인해 가까이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멀어져가고, 공기처럼 함께하는 남편을 제외하고는 내가 인정 받고, 공감 받고, 서로의 고충과 즐거움을 나누며 대화할 상대가 없는 그런 삶을 살다보니 나는 외로웠다. 만약 이런 환경에서 출산과 육아, 즉 몸과 마음이 한없이 약해진 상태에서 내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 하는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하게 된다면 그 외로움의 크기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인간 관계에 압도되어 그 모든 관계들 속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내가 성공적으로 도망쳐본 후 깨달은 것은 그 관계들로 인해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몹시도 싫어하고 미워했던 마음마저 에너지가 되어 내 삶의 원동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좋아할 사람도 없지만 미워할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나의 존재를 잃어갔다.
이곳의 장점들이 크게 보이고 한국의 단점은 아주 크게 보여서 이민에 대한 마음이 불타올랐던 시기를 지나 이곳의 단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고 한국 사회의 장점들이 다시 생각났고, 세상에 완벽한 나라는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창조주가 우리를 한국 땅에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일단 한국에 정착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과, 모든 연고가 있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이들을 낳아 키워보면서, 외국 생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기로 했다.
영주권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돈을 조금 더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달 치의 여행 경비 만큼이 영주권 준비와 관련한 비용만으로 지출되었다. 장기 거주를 생각했기에 집도 렌트했고 차도 조금 무리해서 오래 탈 수 있는 좋은 것으로 골랐었다. 금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공짜로 배운 레슨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가끔 호주 생활을 돌아보며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선물 같은 시간이 찾아왔을까’하며 감사한다. 장기 체류를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보지 못 했을 이 사회의 장단점들을 보아내었고, 삶의 질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 중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세계여행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리가 얻어갈 수 있는 삶의 많은 깨달음 중 정말 오래 남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것을 이곳 호주에서 배웠다.
여기 이 한 도시에서 이렇게 여덟 달을 보낼 시간에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녔으면 훨씬 많은 것들을 보러 다닐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한 번도 든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돈을 충분히 모은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 이룬 것도 없었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변화하고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단연 열 배, 스무 배 값어치있는 시행착오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주 조금, 어른이 되었다.
내일 모레, 스물 다섯이 되는 생일날, 나는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소중한 시간들을 한아름 선물 처럼 안고 멜번을 떠난다. 언제 다시 이 도시에 올 수 있을까? 다시 오는 날엔 이날, 2019년, 어리고 젊고 무모했고 당찼던 우리의 청춘의 한 조각을 이곳에서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19.10.19.
세계여행 Day 309~560
호주 멜번(멜버른)에서의 워홀라이프 8개월을 정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