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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Nov 21. 2019

10월 18일, 하면 생각나는 사람

너의 생일을 빼앗아서 미안해

10월 18일,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는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나의 생일 파티를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엄마가 주중에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주말에만 파티를 할 수 있다고 하셔서 내 생일보다 며칠 앞선 10월 18일 토요일에 파티를 하게 되었다.


능숙하게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림도 붙여가며 생일파티 초대장을 만들었다. ‘몇 장을 인쇄해야하지? 25? 30?’ 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히이? 반 애들을 다 초대할 거야, 무슨?’하며 놀랐다. ‘당연히 다 초대해야지…’하는 속마음을 뒤로하고 스무 장만 인쇄했다.


한 명, 두 명, 초대장을 나누어주다보니 초대장이 다 떨어졌고, 초대장을 받지 못한 나머지 우리 반 친구들이 나에게 와서 ‘예인아, 토요일에 생일파티 하는 거야? 나도 가도 돼?’라고 물어왔다. 그당시 우리 반은 다 같이 친했기에, 서른 명인 우리 반에서 딱 열 명만 빼고 초대한다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긴 했다. 나는 당연히 다 와도 된다고 했다.



생일 파티 당일이 되었고, 정말 반 친구들 모두가 파티에 와주었다. 친구들은 정성스레 선물과 편지를 준비해서 와주었고, 나는 많은 선물들 속에 파묻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들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창 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더 올 사람이 있었나?’


문을 열었더니 그곳에는 이정우(가명)라는 친구가 서있었다. 그는 우리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친구였다. 그와 늘상 함께하는 슬픈 눈망울과 근심 가득한 눈꼬리, 그리고 조심스러운 얼굴 표정으로 그가 우리 집 문 앞에 서서 마른 몸에 비해 너무 커 보이는 쇼핑백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생일 축하해, 예인아. 나도 오늘 생일이야. 나도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었는데 너도 오늘 생일 파티를 하니까 친구들이 다 너희 집에 있어서… 나도 너 생일 축하해주고 싶어서 왔어. 이거 생일 선물이야.”


그제서야 내가 초대장을 돌리던 날, 그가 작은 소리로 외치던 것이 떠올랐다. ‘그날 내 생일인데…’

고작 열 살, 어린 마음에 그 친구도 얼마나 생일 파티를 하고 싶었을까? 그는 생일 선물과 함께 짧은 말을 남기고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조차 견딜 수 없다는듯 비상구 문을 열고 계단으로 뛰쳐내려갔다. 그날은 그의 생일날이었고, 정작 나의 생일은 사흘 뒤였는데, 나의 생일 파티 날이었으며, 그의 생일날이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으나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이 없는 것을 느끼고 현관 쪽을 쳐다본 엄마는 ‘친구야~? 들어오라고 하지, 왜.’ 했으나 이미 그가 떠난 후였다.



그때 그 우리집 문 앞에 서서 내 눈을 바라보며 짧은 말을 전하고 가버린 그 친구의 표정이 나에게 오래도록 남았다.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미안해했다. 내가 생일 파티 날짜를 하필 10월 18일로 잡아서 그에게 상처의 기억을 남겨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자신의 생일 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꼬깃꼬깃 주머니 돈을 꺼내 자신의 생일을 앗아가버린 친구에게 줄 생일 선물을 사던 그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헤아릴 수 없다.



십수 년이 지나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10월 18일이 되면 그날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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