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년, 결혼기념일 단상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의 많은 것들이 정해진다는 뜻이다.
하얀 도화지에 태어난 날과 시 만을 쓰고 삶을 시작한 나는 그곳에 나의 상처들을 쓰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쓰고, 내가 사귀었던 남자들을 쓰며 어른이 된다. 애석하게도 이미 쓴 것은 지울 수 없고, 하나도 빠짐 없이 내 안에 남는다. 모든 불확실성이 끝나고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새로운 가능성들이 닫히고 모든 것이 다 '정해져' 버리면 그때 비로소 죽음이 찾아오는게 아닐까.
내 삶에 있어 '결혼기념일'이라는 날은 10월 14일로 정해졌다. 몇 년 전 가지만 해도 나는 일 년 중 어느 때에 남편과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저녁을 보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여름에 해변가에 나가 수영하는 모습으로 결혼기념일을 보내게 될지, 겨울에 눈을 맞으며 스케이트를 타는 결혼기념일을 보내게 될지 알 수 없었으나, 앞으로의 나는 어떤 결혼기념일을 보내게 될지 안다. 그것은 10월의 어느 날, 가을이길 바라지만 조금은 추울 수도 있는 그런 날일 것이다.
2019.10.14.
결혼 2주년 기념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