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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Sep 17. 2021

엄마는 사람으로 존재할 필요가 있다

D+295/ 약 10개월만의 첫 나만의 시간


이따금씩 눈 옆으로 좌르르 흘러내리는 단발머리를 굳이 머리끈으로 질끈 올려 묶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내가 아이와 함께 있지 않다는 뜻이다. 오늘 나는 엄마가 된 후 약 10개월만에 처음으로 양육의 의무를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이 되었다. 내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아이의 밥을 만들다 울음이 터진 날, 나는 남편에게 사람이 왜 삼시세끼를 먹어야 하는 거냐고 하소연했고 남편은 그것이 밥 때문이 아님을 알았다. 남편은 나에게 일주일에 꼭 한 번은 나가서 혼자 고요하게 식사를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제안해주었다. 나는 힘이 나서 마저 아이의 밥을 만들었다.


집에서 아무렇게나 입을 옷 말고 밖에 입고 나가고 싶은 '예쁜' 옷을 샀다. 이 또한 10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임신했을 때에도 퉁퉁 불은 몸 때문에 예쁜 옷은 사지 못했으니 한 1년 반 정도 만에 처음인듯 하다. 임신 전의 몸무게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이와 함께 다니면 옷을 입어볼 수가 없어 늘 눈으로만 보고 아쉬워했던 터였다. 옷가게에 들어가 궁금한 옷을 입어 보고 거울을 보았을 때 소소한 희열이 있었다.


한 달 쯤 전에는 아기 낳고 처음으로 화장을 했다. 육아 선배인 소연이가 나에게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다고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었을 때, 무슨 용기였는지 입술에 바를 색깔 나는 것을 사달라고 말했다. 소연이는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았고 제일 좋은 립스틱으로다가 내 이름까지 새겨서 선물해줬다. 나는 그것을 바르기 위해 파운데이션을 샀고, 뷰러와 마스카라도 샀다. 그렇게 나에게 화장품이 생겼다.


엄마가 되자마자 나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일들이 너무 많아서 나를 돌보는 일에 오랫동안 소홀했다. 운동을 해도, 밥을 먹어도, 아이를 더 잘 돌보기 위한 체력 충전이었을 뿐 나를 위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사람으로 존재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위한 거름이 되면 아이는 자라나겠지만 엄마와 아이는 상호적으로 관계 맺지 못한다. 우리 가족이 모두 건강하기 위해서 예인이 예인으로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남편이 깨우쳐주었다. 사람은 계속 진화한다. 늘 같지 않은 내 모습이 좋다.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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