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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Apr 18. 2018

세월호 참사 4주기, 진도 팽목항

[세계여행 Day 8] 대한민국 진도, 팽목항

국내여행 코스를 짜던 중에 남편이 물었었다.


"예인아 우리 진도 쪽 가서 팽목항 갈래?"


팽목항. 더 이상의 부연설명 없이도 어디인지, 왜 가야 하는지 아는 곳.

나는 당연히 그러자고 했다.



세월호 기억의 벽


우연히도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4월 16일, 바로 그 다음날인 오늘 팽목항을 방문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 어제를 지나 다시 고요해진 팽목항에 닿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터 울컥울컥 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계속 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누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어 빨간 등대가 보이는 곳으로 갔다.


등대까지 가는 길에는 '세월호 기억의 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전국 각지의 어린이와 어른들이 그린 타일 4,656장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타일을 하나하나 속으로 소리내어 읽으며 걸다. 4년 전의 그날이 생각이 났다.





4년 전 그날


벌써 4년이나 흘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걸 못 구하겠어? 생각했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처럼 배라는 것이 갑자기 순식간에 바닥까지 내려가 버리는 것도 아니고 아직 선체 절반 이상이 해수면 위에 있는 거면 금방 다 구하지 않겠어, 생각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 배 안에 있다고 했다. 이미 배는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았고 시간도 너무 많이 지나있었다. 이제 더 이상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신 인양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막 눈물이 나왔다. 억울해서 막 울었다. 왜? 왜 못 구했는데? 왜 이들이 죽어야하는 건데? 뉴스는 항상 가깝고도 먼 이야기이기에 가슴이 아픈 적은 많아도 운 적은 없었다. 나는 이날 태어나 처음으로 뉴스를 보고 펑펑 울었다.


도대체 왜 배 안에 있으라고 했을까. 학생들에게 위험하니 배 안에 꼼짝 않고 있어야한다고 말했던 어른들은 왜 가장 먼저 배 밖으로 탈출한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누가 문제였을까. 분명 다 살 수 있었는데.




12년 전 그날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비행기 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비상상황이라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우리는 안내에 따라 비행기의 창문 덮개를 모두 열고 앞 좌석에 두 손을 얹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기체는 계속 흔들리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비틀거리며 위로 올라가는듯 하다가 또 떨어졌다. 내 옆 좌석의 친구는 기절했었다. 승무원이 오셔서 친구에게 물을 먹이고 사탕을 주며 괜찮을 거라고 말했으나 전혀 괜찮을 것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쉬지 않고 기도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나는 지금 죽어도 다 괜찮은데 나 죽으면 우리 부모님 어떡하냐고, 내 동생 예준이 나 없으면 안 되는데 어떡하냐고, 나 꼭 살려주셔야 한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짧은 생애의 행복했던 모든 순간들이 스쳐갔다.


비행기는 비상착륙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추락과 안정을 반복했다. 내리고 보니 비행기 앞 부분이 날아가있었다. 집에 오니 뉴스에 내가 탔던 비행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더 남일 같지 않았다. 수학여행, 제주도, 나의 경험과 겹치는 점들이 많았다.

들이 다 내 친구들인 것만 같았다.




사랑한다 보고싶다


꾹꾹 눌러가며 걷고 있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다.


'언니. 오빠. 이거 잡아! 세상에서 제일 큰 튜브'


정말, 세상에서 제일 큰 튜브가 있었다면 이들이 살 수 있었을까? 꽃 같은 300여개의 생명들이 살 수 있었을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자리에 서서 펑펑 울어버렸다. 나는 계속 되물었다. 왜 이 아이들이 죽었어야만 했냐고.



세월호 합동분향소

합동분향소에 가서 희생자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보았다.


꽃봉오리 같이 곱고 예쁜 학생들, 최후의 순간까지 자기 자신보다도 학생들을 먼저 생각했을 존경하는 선생님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누군가의 딸이었을 모든 희생자분들.


이 아름다운 모든 영혼들이 부디 평안하기를, 하늘의 천사가 되어 고통 없는 곳에서 빛나고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기억하겠습니다.
되새기고 또 되새겨

잃어진 생명만큼
살리겠습니다.

그 얼굴의 미소는 우리 곁에서 떠나갔지만
그 가슴 속에 있었을 꿈,
연푸른 꽃봉오리같은 그 마음만큼은
깨끗함 그대로, 다치지 않게 구조해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되고 새 생명이 되어
빛을 발하게 하겠습니다.

잃어진 생명만큼
그 심장의 울음만큼...

- 2014년 04월 28일, 시소유

2018.04.17.

세계여행 Day 8

진도 낙음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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