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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Apr 22. 2018

Serendipity; 예상치 못한 행운

[세계여행 Day 10] 대한민국 변산반도/ 채석강

목포에서 버스를 타고 광주 터미널에 도착해 격포(변산반도)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변산반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격포 터미널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점심은 가방에 넣어두고 다녔던 삶은 계란과 어제 목포에서 산 새우바게트 남은 것으로 대신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 있었다


내내 숙소에서 짐 정리를 했다. 열흘 정도 다녀보니 짐을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것 저것 많이 뺐다. 배낭을 싸던 때에는 정말 꼭 필요한 것만 쌌다고 생각했고 줄일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 또 있었던 것이다. 에코백 두 개 만치의 미련을 또 한 번 떨쳐냈다.


가방이 가벼워지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열흘 동안 입고 다녔던 바지를 빨았다. 속옷과 양말은 매일 빨아서 말리며 입고 다녔는데 바지는 두꺼워 잘 안 마르기도 하고 자주 빨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오늘 처음 빨았다. 바지를 손으로 빠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과 샴푸를 온 몸에 튀겨가며 흠뻑 젖어 무거워진 바지를 빨았다. 다 빨고 물을 짜는 것은 그가 도와주었다. 두 개의 바지를 베란다에 널어두고 네 시가 다 되어 길을 나섰다.



아버지가 될 당신


숙소 바로 앞에는 변산반도국립공원 탐방안내소가 있었다. 안내 책자 같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들어갔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전반적인 역사와 자연 환경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곳에 사는 바다생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아이들이 오면 참 재밌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중에 변산반도 또 와야겠다! 볼만한 곳이 너무 많은데 차가 없으니 다 가볼 수 없는 게 아쉽네. 너무 예쁠 것 같아!!! 나중에 우리 애들 데리고 꼭 또 오자."

"그래! 그러자!! 너무 좋다."

"ㅎㅎㅎ 근데 오빠, 우린 맨날 있지도 않은 애들하고 같이 오고 싶어한다, 그치? ㅋㅋ"


우린 서로의 모습을 그 자체로도 너무 좋아하지만, 부모가 되었을 때의 상대방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또한 너무 좋아한다. 우리 남편이 아버지가 된다면 얼마나 친구 같고 장난기 많고 정 많은 아버지가 될 지 눈에 선하다. 나는 이 사람이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참 좋다. 그 또한 그렇다고 했다. 내가 어머니가 된다면 참 따뜻한 어머니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과 내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내가 참 아이를 잘 키울 것 같아서 자식을 낳으면 교육은 전적으로 나에게 맡기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식구가 늘어난 우리 가정의 모습을 종종 상상해보며 웃음 짓곤 한다.



갑작스러운 치킨


탐방안내소에서 나오니 바로 격포해변이었다. 바닷가를 좀 걷다보니 배가 고파왔다. 점심을 빵으로 대충 떼웠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는 돌연 치킨이 땡긴다고 했다. 횟집이 즐비한 이곳 바닷가에서 치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두 개 정도, 아주 오래 된 간판이 보이기는 했으나 전부 영업을 하지 않는 곳들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슬슬 걸었는데 코너를 돌자마자 거짓말처럼 영업 중인 치킨 집이 눈 앞에 나타났다. 허름하고, 매장은 아주 작고, 주인은 배달 중이라며 연락처를 남겨놓고 외출한 상태였지만 그는 신이 났다. 5분 정도 기다리니 주인이 오셨다.


치즈스노우치킨, 양념치킨, 마늘치킨을 시켰다. 치킨은 완전히 대박이었다. 양도 서울에서 먹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많았고 살도 최고로 부드러웠고 튀김 옷은 딱 좋게 바삭했다. 변산반도의 작은 치킨집에서 이렇게 맛있는 치킨을 먹게 될 줄이야!

그토록 먹고 싶었던 치킨을 입에 넣은 자의 행복에 겨운 모습


채석강에서 본 일몰


치킨을 다 먹고는 숙소에 가서 잠깐 쉬었다. 여섯 시쯤 다시 나와서 일몰을 보기로 했다.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다 카페에 들어가서 나머지 해를 보려고 했다. 음료를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그가 갑자기 어디론가 없어졌다. 잠시 뒤에 오더니 저쪽에 동굴이 있는 곳까지 걸어갈 수 있는 것 같은데, 그곳에서 일몰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힐 것 같다는 거다. 카페에 앉아 할 일을 하려고 음료를 이제 막 시켜놓은 터라 고민을 잠깐 하다가, 그래도 이곳에 와서 일몰은 기가 막히게 봐야하지 않겠냐며 채석강으로 향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켜켜이 쌓인 바위를 밟으며 서쪽으로 모습을 감추는 해를 바라보았다. 해는 어쩜 뜨는 순간부터 지는 순간까지, 모든 순간이 이렇게 이로운 걸까. 단 하루라도 해가 뜨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면 매일 어김 없이 해가 뜬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느껴진다.




오늘 하루도 지구를 비추어줘서 고맙다.

수고했어, 해야.



2018.04.19.

세계여행 Day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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