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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Apr 26. 2018

감사한 만큼 미안해

[Day 12] 대한민국 서산, 당진/ 부모님과의 여행

오늘은 엄마, 아빠와 여행을 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여행 계획을 세우며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기 전 꼭 양가 부모님과 한 번씩 여행을 하자고 했었다. 우리에게 여행의 기쁨을 알려주신 분들, 우리가 긴 여행을 하는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응원해주시지만 그보다 더 걱정도 하고 보고싶어 하실 분들께 여행을 대접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는데, 우리는 또 하루종일 받기만 하고 말았다.



우리 집


원래는 2박 3일이나 1박 2일을 하려고 했으나 고3인 동생을 집에 혼자 두어야 해서 당일치기를 하게 되었다. 그 안에서 최대한으로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군산에서 아침 7시 20분 버스를 타고 서산 터미널로 향했다.


우리가 서산 터미널에 내리고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빠로부터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나갔더니 아빠가 차를 도로변에 임시로 세워두고 급한 모양으로 내리셔서는 트렁크를 열어 얼른 가방을 넣으라고 말했다. 차를 얼른 빼야 되는 상황임을 인지했지만 아빠에 대한 반가움이 더 컸다. 오랜만에 본 아빠는 엄청 멋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검정색 반팔티에 카키색 면바지를 입었다.


"올~ 아빠 오늘 엄청 멋있는데에~??!??"


차에 타니 엄마가 조수석에 앉아 뒤를 돌아보며 반가운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는 여느 때처럼 밝고 엄마다웠다. 보통 그 나이대의 여성이라면 시도하지 않을 것 같은 옷들이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오늘은 핫핑크색 후디에 청소라색 아우터를 걸치고 흰색 바지를 입었다. 그 옷들은 마치 이 세상 사람들 중 딱 한 사람, 우리 엄마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딱 엄마 거 였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우리 아빠 차, 남편.

십수 일 만에 느끼는 '우리 집'이었다.


이상한 길의 끝에서


다들 일찍 일어나서 나왔고, 아침을 먹지 못하고 열 시가 다 되어갔다. 엄마는 토마토와 사과를 갈아 만든 쥬스와 대저토마토 자른 것을 꺼내셨다. 우리는 그것들을 먹으며 식당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아빠가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용유지라는 곳 근처에 식당들이 있다고 했다. 네비게이션에 용유지를 찍고 갔다.

길이 이상했다. 가라는 길로 갔는데 도로는 점점 좁아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상한 길로 들어서는 것 같은 이 상황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주변의 풍경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기 외국 같다~!'며 좋아했다. 드넓은 목초지와 그림 같은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졌다. 핸들을 잡고 있는 아빠는 네비게이션이 이상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에 살짝은 불편해 하면서도 예상치 못하게 펼쳐진 이 풍경이 좋은 듯 했다.


어렵게 용유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우리가 오면서 본 그 아름다운 풍경들의 끝에 있는 그 무엇이었다. 영화 속에서 나올 것만 같은 풍경들을 따라가 그 끝자락에서 닿은 이곳, 점차 고조되어 정점을 찍은 듯 했다. 요정이나 유니콘이 살 것만 같았다.


속 편한 식사


정작 밥을 먹으러 찾아온 곳에 밥은 없었다. 결국 시내 쪽으로 나가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식당에 도착했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온 맛집이라 하여 약간의 기다림이 있었다. 맛을 보니,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집밥 느낌의 옛날 밥집이라 조미료 맛 대신 모든 식재료의 풍미가 풍성했고 함께 나온 수육의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나는 보통 돼지고기를 찐 종류의 음식(보쌈, 족발 등)을 먹지 않는다. 돼지를 쪘을 때 나는 그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인데, 이 집의 수육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쪄서 나온듯 물기를 한껏 머금고 있었다.

때깔 좋은 수육과 파김치
before -> after

사실 오늘 아침에 속이 많이 안 좋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탈 수 있었던 버스도 사실은 속이 아파서 깬 덕에 안전하게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오늘의 점심 밥은 딱 좋았다. 속 편한 식사였다.



몽골 닮은 몽산포


점심을 먹고 바다를 보러 몽산포 해변으로 향했다. 몽산포 해변은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바다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한반도를 돌면서 그동안 바다는 계속 보았는데 서해안의 갯벌 바다는 처음이었다. 썰물 때라 그랬는지 더욱 광활해보였다. '여기 골 같다'는 아빠의 말에 '그래서 산포 해변인가봐요~' 능청스러운 사위가 답한다.

남편 너 날아다닐 수 있지... 솔직히 말해봐...

바다를 구경하고 그 앞 마트와 카페를 겸하고 있는 공간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마이구미와 커피맛 땅콩 한 캔을 사 들고 온 엄마는 여기는 강냉이도 없고 뻥이요도 없다면서 섭섭해했다. 이에 뻥이요를 매일 복용하는 사위는 가방에 뻥이요 한 봉지를 구비해두었다고 말했고, 엄마는 기뻐했다.


3대가 함께 놀자


아빠는 다음으로 갈 곳으로 '아미미술관'이라는 곳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폐교를 개조하여 미술관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라고 했다. 폐교와 미술관의 조합에서 벌써 우리가 정말 좋아할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오늘 우리가 모든 일정을 짜 놓았을줄 알아서 아무 준비를 안 해왔다고 하시며 즉석에서 다 찾으셨는데 아빠가 찾는 것마다 다 너무 좋았다. 이전의 거의 모든 여행을 그 도시에 도착하여 관광안내지도를 구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계획성 없는 딸과 사위는 아빠의 탁월한 픽pick들에 감동하며 졸졸 따라다녔다.

영화배우 같은 아빠 엄마

아미미술관은 생각했던 대로 정말 감성적이고 예뻤다. 이전에 누군가가 작은 책상과 의자에 앉아 한글을 배웠을 이 학교는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가득 찼다. 학교 운동장이었을 곳에는 푸른 잔디와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날씨 좋은 주말의 하루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기에 너무 좋은 공간이라며, 너희도 나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엄마가 말한다. 나는 꼭 그러겠다고 하며 3대가 함께 와서 놀자고 말했다. 엄마는 늘 '나 너무 빨리 할머니 만들지 말라'면서도 내가 아이를 낳아 현수와 나를 닮아있으면 귀여워 미칠 것 같다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하신다.

저녁도 먹을 겸, 일몰이 예쁘다는 해어름 카페에 가기로 했다. 이곳도 아빠가 아미미술관 카페에 앉아 인터넷 검색으로 후딱 찾아낸 곳이었다. '해어름'을 검색해보니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일'을 가리키는 방언이라고 한다. 참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같이 지어진 건물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고 해어름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었다.


눈물나게 감사합니다


이 시간이 참 좋았다.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다.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는데도 이 하루는 참 짧았다.


아빠 엄마와 이십여 년을 같이 살며 서로 상처도 많이 줬는데 결혼하고 부모님 집에서 나오고 보니 어딜 가도 이렇게 나와 영혼이 비슷한 사람이 없는 거다. 같이 살 때는 노심초사 매 순간 조금이라도 내가 잘못될까 걱정어린 예민함으로 바라보시던 그 눈들에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사랑만 남아 한없이 부드러운 거다. 그 예민함이 그분들인줄 알고 많이 미워했었던 나는 사랑만 남은 그 눈에서 내 영혼이 보여 웃고 또 운다. 이렇게 잘 맞는 우리였는데 왜 같이 사는 동안은 날이 서 있었는지, 영혼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왜 표면적인 것들에 부딪히고 상처냈는지 마음이 아팠다. 따로 살게 된 후에야 느끼게 된 이 감정이 안타깝고 아쉽지만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런 순간이 온 거라는 걸 알기에 또 감사하다. 믿음직한 우리 남편이 식구로 들어오고 그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이 편안했기에 부모님도 아무 걱정 없이 나를 바라볼 수 있었을테니까.


부모님이 마음 놓으실 수 있을만큼 듬직하고 좋은 사람인 우리 남편이 고마웠고,

아직 많이 부족한 우리 부부 전부 믿고 그저 예뻐만 해주시는 부모님이 고마웠다.

이 모든 걸 알고 계획하셨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나 이렇게 세상에 나와 사람 구실 할 수 있도록 만드느라고 이십여 년 고생하셨을 우리 엄마, 아빠.

좀 더 부드러운 딸이지 못해서 많이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행복하게만 해드릴게요! 같이 좋은 시간 많이 보내자.

사랑합니다!


2018.04.21.

세계여행 Day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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