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소유 May 01. 2018

햇님정육점

[Day 13] 대한민국 천안/ 친구 이오름과 그의 부모님

천안에는 남편의 군대 친구인 오름 씨가 산다. 이른 점심 쯤 오름 씨를 만나 함께 독립기념관과 단대 호수를 다녀 왔다. 오름 씨가 차를 태워주신 덕분에 편안하게 천안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오름 씨 부모님께서 댁으로 초대를 해주셨다. 오름 씨가 4년 전 전국 자전거여행을 했을 때에 부산의 남편 집에서 하룻밤 묵었던 것을 기억하시고는 우리가 온다 하여 저녁을 대접하고 싶으셨다고 하셨다.




햇님정육점


천안에서 18년 째 정육점을 운영하고 계시는 오름 씨 부모님 댁으로 갔다.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오자 너무나 반가운 얼굴로 문 밖으로 나오셔서는 환영해주셨다.


부모님께서는 식탁에 전기 그릴을 올려 놓고 차돌박이를 꺼내주셨다. 스티로폼 접시에 고기가 가득 차있는 것으로 세 덩이나 주셨다. 따끈따끈하게 갓 지어진 밥을 예쁜 사기그릇에 뚜껑까지 덮어서 주시고 김치도 종류별로, 직접 끓이신 청국장과 빈대떡까지 주셨다. 아버님이 제일 좋아하신다는 맥주도 한 병 꺼내주셨다. 


이렇게 진수성찬인데 아침에 마트가 닫아서 장을 못 봐 차린 게 너무 없다시면서 미안해하셨다. 해드릴 수 있는 거라곤 맛있게 먹는 것 밖에는 없는 우리는 어머님의 따뜻한 마음에 더욱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여행 시작 이후 고기는 처음이다! 최고로 맛있는 차돌박이였다.



오름 씨와 우리 부부가 먹고 있는 동안 부모님께서는 방 안에 들어가 계셨다. 편하게 우리끼리 이야기하며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것 같았다. 다 먹고 좀 쉬다가 이제 숙소로 돌아가려고 일어나니 방에서 나오셨다.


"여행 중이시라면서요~"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미소 띤 얼굴이 고우시다. 아들의 친구에게 말 한 마디 한 마디 존댓말을 잊지 않으신다. 몸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응원한다고, 너무 부럽다고 해주셨다. 차를 타러 가는데 차 앞까지 오셔서는 뒷자리 문을 열고 들어가 앉는 내 손을 꼭 붙잡으신다.


"그리구 이건 진짜 별 거 아닌데... 너무 얼마 안 되는데, 후원금... 여행 자금에 보태시라구요.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눈물이 날 뻔했다. 내 손을 여러번 만지작거리시는 어머님 손이 너무 따뜻해서, 봉투를 쥐어주시며 나와 내 손을 번갈아 바라보시는 그 눈빛에 과분한 진심이 담겨있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오로지 내 오감으로만 담아내야 했던 그때 그 순간의 어머님, 그 가슴 시린 따뜻함에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던 그때의 감정,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던 어머님의 목소리, 그때의 분위기...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많은 빚을 졌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분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고 따뜻한 눈빛과 마음을 받을 수 있는 건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뭘 잘해서 받는 건 아니었다.


이건 꼭 갚아야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받은 것이 너무 커서 이대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없는 일이었다. 오름 씨 부모님께, 오름 씨에게, 그리고 우리가 여행 중에 만날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받은 이 따뜻한 기운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까지 데려다주시는 오름 씨에게 '부모님께 정말 너무 감사하네요...' 했더니 '아들 같고 딸 같으셨나봐요~' 한다. 오름 씨 가족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나의 아들처럼, 딸처럼, 또는 부모님처럼, 또는 오랜 친구처럼 대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무 대가 없이 마음을 나누어준 적이 있었던가.

분명, 세상을 바꿔온 것들은 그저 주는 사랑들이었을 것이다.



2018.04.22.

세계여행 Day 13

매거진의 이전글 감사한 만큼 미안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