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대한민국 천안/ 친구 이오름과 그의 부모님
천안에는 남편의 군대 친구인 오름 씨가 산다. 이른 점심 쯤 오름 씨를 만나 함께 독립기념관과 단대 호수를 다녀 왔다. 오름 씨가 차를 태워주신 덕분에 편안하게 천안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오름 씨 부모님께서 댁으로 초대를 해주셨다. 오름 씨가 4년 전 전국 자전거여행을 했을 때에 부산의 남편 집에서 하룻밤 묵었던 것을 기억하시고는 우리가 온다 하여 저녁을 대접하고 싶으셨다고 하셨다.
햇님정육점
천안에서 18년 째 정육점을 운영하고 계시는 오름 씨 부모님 댁으로 갔다.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오자 너무나 반가운 얼굴로 문 밖으로 나오셔서는 환영해주셨다.
부모님께서는 식탁에 전기 그릴을 올려 놓고 차돌박이를 꺼내주셨다. 스티로폼 접시에 고기가 가득 차있는 것으로 세 덩이나 주셨다. 따끈따끈하게 갓 지어진 밥을 예쁜 사기그릇에 뚜껑까지 덮어서 주시고 김치도 종류별로, 직접 끓이신 청국장과 빈대떡까지 주셨다. 아버님이 제일 좋아하신다는 맥주도 한 병 꺼내주셨다.
이렇게 진수성찬인데 아침에 마트가 닫아서 장을 못 봐 차린 게 너무 없다시면서 미안해하셨다. 해드릴 수 있는 거라곤 맛있게 먹는 것 밖에는 없는 우리는 어머님의 따뜻한 마음에 더욱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오름 씨와 우리 부부가 먹고 있는 동안 부모님께서는 방 안에 들어가 계셨다. 편하게 우리끼리 이야기하며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것 같았다. 다 먹고 좀 쉬다가 이제 숙소로 돌아가려고 일어나니 방에서 나오셨다.
"여행 중이시라면서요~"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미소 띤 얼굴이 고우시다. 아들의 친구에게 말 한 마디 한 마디 존댓말을 잊지 않으신다. 몸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응원한다고, 너무 부럽다고 해주셨다. 차를 타러 가는데 차 앞까지 오셔서는 뒷자리 문을 열고 들어가 앉는 내 손을 꼭 붙잡으신다.
"그리구 이건 진짜 별 거 아닌데... 너무 얼마 안 되는데, 후원금... 여행 자금에 보태시라구요.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눈물이 날 뻔했다. 내 손을 여러번 만지작거리시는 어머님 손이 너무 따뜻해서, 봉투를 쥐어주시며 나와 내 손을 번갈아 바라보시는 그 눈빛에 과분한 진심이 담겨있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오로지 내 오감으로만 담아내야 했던 그때 그 순간의 어머님, 그 가슴 시린 따뜻함에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던 그때의 감정,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던 어머님의 목소리, 그때의 분위기...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많은 빚을 졌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분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고 따뜻한 눈빛과 마음을 받을 수 있는 건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뭘 잘해서 받는 건 아니었다.
이건 꼭 갚아야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받은 것이 너무 커서 이대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없는 일이었다. 오름 씨 부모님께, 오름 씨에게, 그리고 우리가 여행 중에 만날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받은 이 따뜻한 기운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까지 데려다주시는 오름 씨에게 '부모님께 정말 너무 감사하네요...' 했더니 '아들 같고 딸 같으셨나봐요~' 한다. 오름 씨 가족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나의 아들처럼, 딸처럼, 또는 부모님처럼, 또는 오랜 친구처럼 대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무 대가 없이 마음을 나누어준 적이 있었던가.
분명, 세상을 바꿔온 것들은 그저 주는 사랑들이었을 것이다.
2018.04.22.
세계여행 Day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