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2] 먼 길 가는 사람 같지 않게, 그렇게 떠나왔다.
7시쯤 일어나 출근하시는 엄마와 인사를 하고 나니 다시 잠이 들어지지 않았다. 7시반쯤 나가는 예준이와도 인사를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포기하고 8시쯤 일어나 샤워를 했다.
오후 2시 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몽골 울란바토르로 간다. 두시간 전인 12시 정도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공항에 가기 전에 잠깐 일산에 사시는 친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가기로 했다. 여행 시작 전에 인사를 못 드렸기 때문이다. 그 시간까지 계산해 우리는 8시 50분쯤 집을 나섰다.
펑
국민건강보험을 아빠의 피부양자로 등록해놓기로 하여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했다. 주민센터는 우리 집에서 3분 거리이다. 그곳에 우선 내려 가족관계증명서를 출력하고 다시 차에 타서 아빠에게 물었다.
“그 시계방이 어디있다고 했지, 아빠?”
여행 갈 때 가져가려고 했던 시계가 죽어서 아빠한테 시계방 위치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집 바로 앞에 있다고 했는데 찾지 못 했어서 출발하기 전에 갔다 가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바로 그 시계방이 눈 앞에 보였고 아빠는 유턴해서 시계방 바로 앞에 차를 세웠다. 시계를 들고 차에서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엄청 크게 ‘펑!’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앞에 노란 버스가 한 대 있기에 버스가 방귀를 크게 뀌었구나,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사장님과 배터리 종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배터리를 보면 사려고 빼놓았었기에 내 시계 안에는 배터리가 들어있지 않았다. 사장님이 종류를 헷갈려하시기에 내 시계와 같은 남편의 시계를 가져가 배터리를 보여드리려고 문 밖으로 나갔다.
아빠의 차는 인도 위로 걸쳐들어와 있었고 아빠와 남편이 둘 다 차 밖으로 나와있었다. 남편에게 시계를 좀 달라고 했더니 시계를 풀어 주며 속삭이듯 그가 말했다.
“아버님 차 바퀴 펑크났어…”
응…? 바퀴가 펑크났다고?
남편의 시계를 가지고 들어가니 사장님은 쉽게 알맞은 배터리를 찾으셨다. 배터리를 갈아끼우고 계시는 사장님을 보고 있다가 아까 그 ‘펑’소리가 생각났다. 아, 그럼 아까 그 소리가 아빠 차 펑크나는 소리였구나.
다 끝나고 나오니 아빠와 남편은 끙끙거리며 차 지지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지지대를 차 밑에 받쳐 차를 들어올려서는 펑크가 난 오른쪽 앞바퀴를 뺐다. 평소에는 들어있는줄도 몰랐던 스페어 타이어가 아빠 차 트렁크에서 나왔다. 오른쪽 앞바퀴를 뺀 자리에 스페어 타이어를 끼워넣었다.
이 상황이 너무 재밌었다. 여행의 일부 같았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 그 여정을 시작하는 출국 날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게 소설 같았다. 나는 얼른 액션캠을 꺼내 들어 이 모습을 기록했다. 난생 처음으로 타이어가 펑크나는 걸 봤는데, 그게 오늘이라니!
스페어 타이어를 달고 다시 차를 타서 3-4미터쯤 갔을까, 자동차 크리닝, 엔진오일 교체, 타이어 교체 등을 해주는 카센터가 나왔다. 그 자리에 그 샵이 있은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늘 보면서도 여기를 누가 갈까 싶었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었겠구나, 하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사실은 그 자리에 카페가 있었는데 그 카페를 종종 이용했던 나로서는 카페가 없어지고 이 카센터가 들어선 것이 자못 불만스러웠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곳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카센터에 와서 상황을 이야기했다. 직원 분은 이 타이어가 많이 쓰이는 타이어가 아니라서 다른 곳에서 가지고 와야 하는데, 그 시간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큰일이었다. 최소 한 시간인 거면 할머니댁을 갔다가 공항에 가기에는 많이 빠듯했다. 바로 공항에 가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인사를 못 드리고 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주변에 쏘카를 빌려서 다녀올까, 택시를 타고 갔다와야하나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어느 것도 꼭 알맞아 보이는 대안이 없었다. 결국 아빠는 할머니께 전화를 해서 못 갈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통화만 하셔야 할 것 같다고, 애들 바꿔드리겠다고 했으나 성사되지 못 하고 아빠는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꼭 주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며 아주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가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쉬면서 타이어를 기다렸다. 오십 분쯤 기다렸을 때 타이어가 왔고 십 분 정도 더 기다리니 장착까지 끝이 났다. 다 끝나고 아빠가 말해준 것인데, 이곳 직원분들이 오늘 근로자의 날이라 쉬려다가 나오신 거라고 한다. 이렇게 급하게 그들을 필요로 할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아셨던 것일까?
서둘러 일산의 할머니댁으로 출발했다. ‘근로자의 날 + 고양 꽃 박람회 열리는 날 + 1차선에 사고’… 차가 막힐 수 있는 경우 3종 세트를 선물 받아 우리 세 명의 심장은 쫄깃쫄깃해졌다.
박카스
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나와계셨다. 우리가 시간이 없는 걸 아시고는 할머니도 급한 움직임으로 손에 들고 계시던 것들을 나에게 챙겨주셨다.
“이건 박카스여! 박카스. 그리구 이건 할아버지가 따로 챙겨준 용돈, 이건 막내고모부가 챙겨준 용돈, 이건 할머니가 주는 거!”
할머니는 박카스가 담긴 묵직한 흰색의 불투명한 봉다리를 내 손에 쥐어주시고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용돈 봉투를 하나씩 전해주셨다.
“느그들 얼마나 가는 거지?”
“한 2년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고, 2년 씩이나…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고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오늘 얼굴 보자고 한 거야. 마지막으로 보는 걸 수도 있어. 건강하게 잘 갔다와~”
아유, 무슨 말씀이세요, 오래오래 사실 거에요, 말하며 간절하게 바란다. 꼭 2년 뒤에 돌아와서 인사드릴 수 있기를.
할머니보다 더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는 댁에 계시다고 했다. 할아버지도 뵙고 가고 싶어 서둘러 댁으로 올라갔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도 한참 있다가 문을 열어 주신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고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내시는 할아버지를 만류하고 얼른 가봐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마음 아팠다. 부엌 옆의 작은 방에는 할머니가 우리 주시려고 꺼내놓으신 과일들이 예쁘게 놓여있었다.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할머니가 그러셨다.
"너 애기 때 아빠가 안고 있는 사진도 꺼내놨는데.. 너도 활짝 웃고 있고 아빠도 활짝 웃었어, 그 사진이~!"
공항으로 가는 길, 언제나처럼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 집에서 우리 집 돌아갈 때면 늘 보던 그 길에도 정이 들었다는 걸 느꼈다. 왼쪽으로 깊게 돌아야 하는 고가도로, 우리는 늘 그 위를 지나며 명절 음식을 한 엄마를, 설거지를 한 나를, 운전을 오래 하는 아빠를 서로 격려했었다. 꼭 그 길 위에서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차를 타고 나와 어느 정도 머릿 속에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날 때쯤이면 딱 그 고가도로 위였던 것 같다.
오늘은 명절 음식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호주에서 봐!
공항에 도착하니 12시 반 쯤이었다. 얼른 수속 위치를 찾고 줄을 섰다. 이십여 분 쯤 기다려서 수속을 마쳤고, 아빠와 함께 식당가에 올라가 다이나믹했던 반나절을 곱씹으며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다 먹으니 딱 탑승장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탑승장 입구에 서서 나와 남편이 번갈아 아빠와 포옹을 했다.
"시간이 그냥 어느새 흘러서 2년 뒤가 되어있을 것 같네요. ㅎㅎ 저희 다녀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이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남편이 말했다.
"아니! 우리 호주에서 만나야지! ㅎㅎ 내년 2월에 호주에서 만나!" 아빠가 대답했다.
동생의 입시가 끝나는 내년 2월, 부모님과 동생이 우리가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을 호주로 오겠다고 했다.
내가 공항에서 울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펑크 난 타이어 덕분이었다.
먼 길 가는 사람 같지 않게,
집에 가족들 두고 잠깐 어디 외출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떠나왔다.
2018.05.01.
세계여행 Day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