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유럽이야, 유럽!!!

[Day 34~35] 러시아 이르쿠츠크

by 시소유

Day 34


23시간의 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넘어왔다. 기차 안에서 몽골 출국 심사와 러시아 입국 심사를 진행했다. 열차 칸 안으로 군복 입은 사람들 여러명과 마약 탐지견이 들어와 우리의 짐을 확인할 때에는 괜히 조금 무서웠다. 러시아는 정말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횡단열차의 역무원까지도 영어를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역무원과도 구글 번역으로 대화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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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우리는 세계여행중인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이렇게 말 안통하는 곳에서 말 통하는 사람을 만나니 반가웠다. 그분들은 몽골에서 시작해 열흘 째 세계여행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연락처를 나누며 나중에 세계 어딘가에서 또 마주치면 맥주 한 잔 하자고 했다.


일단 배가 고픈대로 역 바로 앞에서 케밥 같은 것을 파는 곳으로 보이는 부스 상점에서 먹을 것을 주문했다. 메뉴판을 봐도 하나도 알아볼 수 있는 말이 없어 아무거나 끌리는대로 손으로 가리켜 주문했다. 나온 것을 보니 이건 케밥이 아니라 크레페였고, 하나는 크림치즈, 콘 슬로우, 닭고기 등이 들어있는 것, 다른 하나는 누텔라만 들어간 것이었다. 생각했던 음식은 아니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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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가기 위해서는 트램이나 버스를 타야했다. 2번이나 4A번 트램을 타라고 되어있는데 정류장 표시가 되어있는 곳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가 기다리는 트램은 오지 않고 1번 트램만 세 대나 지나갔다. 정류장에 같이 서 계시던 할아버지에게 구글 번역으로 여쭈었는데 그분은 노안이 오셨는지 글자를 읽지 못하셨다. 결국 포기하고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 80번 버스를 탑승했다. 버스비는 1인당 20루블(약 35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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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버스도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보던 버스들 못지 않게 오래되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창밖의 건물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버스 내부 벽에 붙어있던 '한양학원'의 광고였다. 동래점, 서면점, 수영점의 전화번호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이건 부산 버스였던 것이다. 몽골에만 한국 버스들이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 러시아에도 과거 우리나라에서 쓰던 버스들이 많았고 일부는 우리가 바로 한국 버스라고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오래된 버스들이었다.


한국의 1980~90년대 쯤을 비췄을 이 유리창으로 우리는 2018년의 러시아를 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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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나무로 지어진 목조건물들이 많았다. 횡단열차를 타고 오며 바이칼호수 주변에 이렇게 지어진 집들을 봤었는데 호숫가 주변 집들만 그런줄 알았다. 알아보니 이런 목조건물들은 이르쿠츠크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건축물이라고 한다. 영화에만 나올 것 같은 오두막 같은 집들이 도시에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모양은 아주 제각각이었다. 단 하나도 같은 모습인 게 없었다. 집들은 전부 주인의 취향에 맞게 지어진듯 했다. 어떤 집들은 기울어있었다. 이렇게 장난감 집 같이 생긴 곳에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목조건물들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색색깔의 다양한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유럽에 처음 왔을 때 유럽에 반하고 유럽에 심취한 이유가 바로 이런 건물들이었다. 파스텔톤의, 때로는 원색톤의 건물들은 나를 한 순간에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데려가주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백인이었고 코가 크고 높았다. 그렇다, 이곳은 유럽이었다! 한국과 아직 많이 멀어지지는 않아서 이정도 유럽을 벌써 기대하지는 않았었는데, 정말 유럽이었다!



숙소 건물은 겉에서 보았을 때에는 좀 낡은 느낌이었는데 들어가보니 1층에 경비원도 두 명이나 있고 내부도 전부 새로 지어 깔끔한 호스텔이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여 고비에서 얻어온 구린내와 작별했다. 아까 버스 타고 오면서 센트럴 마켓을 보았는데 숙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슬슬 걸어갔다 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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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도착하니 많은 상인들이 과일과 채소들을 팔고 있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일 아침으로 먹을만한 것들을 좀 사가자고 마음 먹고 왔는데 토마토 가격을 보자마자 스파게티를 해먹기로 했다. 토마토가 1kg에 50루블(약 860원)이었다! - 100루블인 곳이 많았는데 좀 많이 익어 무르기 직전의 토마토를 싸게 판매하는 곳이 있어 반값에 구매할 수 있었다. -


목표가 생기니 우린 더욱 즐거워졌다. 스파게티 면과 식용유를 사러 건물 안에도 들어가보았다. 건물 안에도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붙어있었다. 우리는 스파게티 면 1kg 40루블(약 690원), 식용유 0.5L 47루블(약 810원)에 구매했다. 물가가 저렴하니 물건 사는 맛이 쏠쏠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작은 시장에서 치즈(100g 48루블, 약 830원)까지 구매하고 신나는 마음으로 호스텔로 복귀했다.



Day 35


아침 7시 반에 눈이 떠졌다. 씻고 길을 나섰다.


우리는 일단 시장에 가서 내일 바이칼 호수로 갈 수 있는 버스의 시간표를 알아보기로 했다. 열심히 손짓 발짓과 구글 번역을 동원해 물으니 버스는 20-30분 간격으로 계속 있으니 그냥 내일 와서 타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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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지구까지 걸어가는 길에 공원이 있다고 지도에 나와있기에 이 공원을 지나서 가보기로 했다. 공원 입구의 문이 부러져있는 것을 보고 약간 느낌이 싸했는데 들어가보니 역시나, 십수 년 동안 방치되어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물이 흐르기도 했을 인공 연못의 터 같은 것도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심어지고 가꾸어진 나무들이었을 식물들은 이 공간과 함께 황폐해졌고, 아무렇게나 자라난 잡초들이 이곳을 장악했다. 예쁘게 칠을 해 땅에 심어 장식해놓은 타이어들도, 화려한 색감이었을 벤치들도, 전부 칠이 벗겨진지 오래였다.


남편은 말했다.

"지금 보는 이 황폐한 공원이 몇십 년 전에는 사람들이 날씨 화창한 날에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도 오고 서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을 그런 공간이었을 거 아냐... 그런 거 생각하면 진짜 기분이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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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지구는 식당과 카페들이 밀집된 번화가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아주 큰 쇼핑몰이 하나 있다. 우리가 알만한 브랜드들이 많이 입점해있는 백화점 같은 공간이었다. 그런 만큼 가격도 비싸서 우리는 그냥 화장실만 쓰고 나와서 카페로 갔다.


커피 두 잔을 시키고 아점으로 먹을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가 좀 짰지만 전기 코드와 와이파이가 있고 음식 가격이 저렴해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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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를 대표하는 성당들을 구경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바이칼 호수를 보러 갈 것이다.



2018.05.14.

세계여행 Day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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