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기쁜 일들

[Day 51] 조지아 트빌리시 / 첫 롤 현상한 이야기

by 시소유
편안한 비행


아침 8시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 트빌리시에 도착한 건 오후 1시쯤이었다. 이륙과 착륙을 모두 느끼지 못한 비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륙 전에 잠들어서 착륙 후에 깨어났다.

DSCF0795.JPG 아주 안정적인 비행을 했던 노답이야(?) 항공


저렴한 물가


숙소 방향으로 가는 37번 버스를 탔다. 버스비가 1인에 50테트리(약 220원)였다. 엄청 싸다! 이곳에 오기 전에 가장 버스비가 저렴했던 곳은 이르쿠츠크였는데, 그곳은 1인에 20루블(약 380원) 정도에 지금 당장 폐차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버스였다. 이곳은 값도 훨씬 저렴한데 최신식의 버스였다.


이곳의 사람들은 러시아와는 많이 다르게 생겼다. '중동'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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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동전을 넣고 버스 표를 출력하는 기계 / 우: 버스 내부 모습


인연


약 15~20분 쯤 후에 버스에서 내렸고, 딱 그 정도 더 걸어 숙소 앞에 도착했다. 트빌리시에서는 에어비앤비로 작은 아파트 하나를 예약했었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위치에 가니 숙소로 보이는 곳이 없었다. 하얗고 작은 고양이 한 마리 만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에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 소리를 잘 낸다.)

고양이가 있던 곳 앞에서 문이 열리더니 한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Hello? Can I help you?"


우리는 숙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아주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대답했다.


"여기는 고비 스트리트 12이고, 네가 찾는 곳은 고비 턴즈 12야. 모든 여행객들이 다 이곳으로 오지. 그건 당연해, 너희는 이곳이 처음이니까. 헷갈릴 수 있어. 날 따라와. 나도 마침 나가려던 참이었으니 같이 가줄게."


아주머니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계셨다. 도움을 주겠다고 하셔서 처음에는 호스트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전혀 관계가 없는 분이었다. 아주머니가 댁에 계시지 않을 때 왔으면 어쩔 뻔 했을까 싶었다. 그녀는 숙소가 있는 곳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시고는 쿨하게 돌아서서 가던 길을 가셨다. 이런게 인연이구나 했다. 우리가 헤메고 있는 걸 보고는 누군가가 보내주신 천사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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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아주 작은 집이었다. 세 평은 되려나? 그 작은 공간에 부엌도 있고 화장실, 세탁기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었다. 귀엽고 알찬 공간이었다. 마당에는 이웃들의 빨래가 널려있었다. 우린 이곳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건 사진이야!


짐을 풀어놓고 나와 일단 기차역으로 갔다. 3일 뒤에 바투미에 갈 기차표를 구입했다. 그리고는 30분쯤 걸어 필름 현상소를 찾아갔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아직 되감지도 못한 필름을 카메라 째로 건넸다. 너무나 듬직해보이는 직원분이 직접 필름을 되감아 가져가셨다. 현상과 스캔을 하는 데에는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그 시간을 떼우기 위해 밖을 돌아다녔다. 알고 보니 바로 옆 거리가 대학가였다. 덕분에 카페, 마트들이 많았다. 우리는 일단 마트에서 계란, 버터, 식용유, 파스타 등의 식재료를 구매하고 카페에 들어가 저녁거리를 시켰다. 저녁을 다 먹고 핸드폰을 보니 이메일이 도착해있었고, 제목은 sca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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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다 됐나보다!!!!!


우리는 카페 안에서 조용히 소리 질렀다. 바로 이메일을 클릭했고 우리가 고심해서 찍은 첫 롤의 결과물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와이파이가 느린 덕에 우리의 애타는 마음은 최고조가 되었다.


처음 몇 장만 보고도 우리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건 사진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 사진들이었다. 우리가 모스크바 시장에서 헐값에 샀던 이 카메라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이 첫 롤 현상에 있어 가장 큰 관심사였고, 우리는 드디어 이 카메라를 산 것에 대해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었다.


한 장, 한 장, 베일이 벗겨질수록 우리는 더욱 환호했다. 사진이 찍혔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예뻤다. 디지털 카메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우리의 순간들이 녹아있었던 거다. 이보다 더 기쁠 수 없었다. 사용 미숙으로 빛이 들어가 살짝 탄 사진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예술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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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필름 값이 비싸다.

한국에서도 꽤 비싼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외국이 두 배 이상으로 비싸다.


번거롭고 비싼 일이지만 계속 해보기로 했다.

주변의 빛과 사물과의 거리를 세밀하게 느껴서

한참을 고민해 셔터를 누르고 나면

단 한 장, 나만이 바라보았던 그 시선이 화면에 갇힌다.


이건 정말 멋진 일이다.



2018.05.30.

세계여행 Day 51




* 필름카메라로 담아내는 사진들은 '느리게 세상 담기' 매거진에 기록해두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seesawyou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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