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소동

[Day 104] 스웨덴 스톡홀름

by 시소유



일곱 시간 동안, 기차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서 스톡홀름 센트럴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아침 8시에 코펜하겐에서 출발해 오후 3시에 이곳에 도착했는데, 일어나서부터 스톡홀름에 도착할 때까지 먹은 것이라곤 작은 샌드위치 하나를 나누어먹은 것과 크로와상 하나씩, 그리고 너무 배가 고파 캐리어에서 현지 라면을 꺼내 하나 부숴먹은 것이 전부였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서브웨이 간판을 발견했다. "일단 우리 먹고 시작할까?" 그가 물었고,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심사숙고 끝에 메뉴를 고르고 점원에게 갔는데 웬걸, 현금만 받는다는 것이다. 북유럽은 카드 보급율이 워낙 높아서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걸인들도 카드단말기를 들고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역내에 있는 서브웨이에서 카드가 안 된다니! 저쪽에 ATM이 있다고 알려주며 현금을 뽑아오라고 하는데 뽑기가 귀찮기도 했고 잔돈이 남는 것이 귀찮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그냥 일단 숙소에 가서 만들어먹기로 했다.




지도 앱으로 검색해보니 숙소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우리는 버스 표를 어떻게 구매하는지(버스 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지, 아니면 미리 이곳에서 구매하고 타야하는지) 물어보려고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에 줄을 섰다. 창구는 두 개가 있었다. 한 쪽에는 한 팀이 일을 진행 중이고 한 팀이 대기 중이었고, 다른 한 쪽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일을 진행 중이셨고 대기 중인 팀은 없었다. 나는 당연히 할아버지 뒤에 줄을 섰다.


할아버지는 좀처럼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그는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간간히 웃음을 보였다. 이들이 필요한 이야기만 나누고 있는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끊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고 둘 사이에 계속해서 웃음이 오갔다. 우리가 타야하는 버스 시간이 가까워왔다. 십 분이 넘어가고, 십오 분이 넘어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가 자리를 떴다. 그런데 그 창구에 있던 직원이 돌연 창구 유리 문을 닫는 것이다. 'Excuse me?'하고 불렀더니 그녀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자신은 이곳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옆 창구에서는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 할아버지 뒤에 이십 분이 다 되도록 서있는 동안 나와 눈도 몇 번 마주쳤었는데, 나에게 '이 분이 끝나면 이 창구를 닫을 예정이니 옆 창구에 줄을 서세요'라고 한 마디 해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우리는 다시 줄을 서야했다. 우리보다 늦게 온 두 분의 일 처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오랜 시간 궁금했던 버스 표에 대해 물으니 이곳에서 표를 살 수 있다고 했다. 티켓의 종류는 옆에 붙어있으니 참고하라고 말하며 왼쪽 벽을 가리켰다. 대중교통 1회 이용권이 44sek(약 6,000원)이었고, 3일 이용권이 250sek(약 32,500원)이었다. 그리고 시내 자전거 이용권이 165sek(약 21,500원)이었다. 그나저나 왜 우리는 기다리는 내내 이걸 보지 못했던 것인가! 옆 벽에 계속해서 붙어있었던 것인데 얼른 창구 직원에게 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염없이 창구만 바라보며 서있었나보다. 이걸 미리 보았다면 비용 계산도 미리 할 수 있었을텐데.




스톡홀름까지 기차를 타고 오며 남편은 전자책 단말기로 북유럽 여행책자를 보았다. 그러던 중 스톡홀름 시내에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시 전역에 자전거 보관소가 정말 많이 설치되어 있었고 자전거 이용권이 대중교통 이용권보다 훨씬 저렴했기에 자전거도 타보고, 비용도 아낄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말뫼와 코펜하겐을 다니며 자전거가 이토록 널리 보급되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정말 잘 구축되어있는 자전거 전용 도로를 보며 또 한 번 감탄하던 차, 우리는 자전거를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다. 자전거를 타다가 다친 적이 있으셨던 아빠가 '자전거는 위험한 것'이라는 강력한 인식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내가 타본 것은 세발자전거나 네발자전거, 보조바퀴가 있어 내가 스스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는 자전거가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 되면서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연인들이 한강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나 유럽 여행을 하며 자전거를 타는 모습 내가 보고 경험한 자전거는 낭만의 상징이었다. 자전거를 좋아하고 잘 타는 남편에게 자전거를 배우기로 했다.


2017년 4월, 우리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 보기로 했다. 처음이었지만 나는 꽤 금방 앞으로 나아갔고, 제법 방향 전환도 잘 했다.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 잘 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렇게 자전거도로 쪽으로 조금 나가볼까, 하는 순간 나는 다다. 반대편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자전거에 겁을 먹어 급히 멈추고 싶었던 것인데, 내 짧은 손가락으로 움켜잡기에는 브레이크가 너무 멀었기에 발로 땅을 딛어 멈추려 하다가 자전거 안장의 튀어나온 부분에 세게 부딪혀 꼬리뼈가 부러지고 만 것이다. 결혼 6개월 전이자 웨딩촬영하기 일주일 전에 말이다.




자전거를 타보자고 자신있게 말해놓고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탈 수 있을까? 그때 잠깐 앞으로 나가본 것 밖에는 없는데 내가 다시 페달을 밟는다고 슝슝 나갈 수 있을까? 또 다치면 어떡하지?


내가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한 것은 바로 그 인포메이션 데스크 창구 앞에서였다.


"오빠, 그냥 우리 대중교통 3일권 살까?"

"왜?"

"아니 그냥, 그게 더 편할 것 같아"

"왜~ 자전거 타보자."


오랜 시간을 기다려 우리 차례가 왔고, 얼른 의사결정을 하고 숙소에 가서 먹을 것도 좀 먹고 쉬기도 하고 싶은 열망이 극에 달한 때였다. 게다가 우리 뒤에는 이미 서너 팀 정도가 줄을 서 있었고 일처리가 느린 앞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난 상태에서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빠른 일처리가 미덕인 한국인의 피가 넘쳐흐르는 우리는 결국 빠른 속도로 대중교통 1회 이용권 두 장과 자전거 3일 이용권 두 명 분을 구매하여 재빠르게 창구를 탈출했다.




버스 시간 까지 3분 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은 급하고, 어디서 타야하는지는 모르고, 배낭을 들쳐메고 이리저리 가보다가 결국 버스를 놓치고는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우리는 더 비싼 선택을 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커다란 배낭과 한 개의 캐리어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3일 뒤 체크아웃 이후에는 다시 대중교통 1회권 두 명 분을 구매해야 했다. 즉, 우리가 교통비로 사용할 총 금액은 아까 지불한 금액에서 대중교통 1회권 두 장 만큼을 더한 506sek였다. 대중교통 3일권 두 장의 가격은 500sek인데 말이다. 자전거가 더 저렴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것이었는데 더 안전하지도 않고 더 저렴하지도 않은 선택을 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구글 지도를 여러번 엄지와 검지로 키워보고 줄여보다가 그가 말한다.


"근데... 좋을 것 같아! 여기 스톡홀름 시내가 그렇게 크지가 않아서 자전거로 다니기에 딱 좋아. 우리가 언제 또 유럽에서 자전거를 타 보겠어~"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밥을 해먹은 뒤 우리는 자전거를 한 번 타러 나가보기로 했다. 역 근처에 있는 시티바이크 스테이션을 찾아내어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를 받아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안장의 높이를 맞추는 것이었다. 나는 안장을 맞추면서부터 불안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안장이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꼬리뼈보다 훨씬 높은 곳에 안장이 위치했다. 안장에 꼬리뼈를 다쳤던 적이 있는 나는 이런 높은 안장이 제일 무서웠다.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아보았다. 몇 번 삐걱대다가 대충 앞으로 나가지기는 하는데 자꾸 옆으로 고꾸라졌다. 조금씩 앞으로 가 보기도 하고 살짝의 방향 전환도 해보고 했지만 약 2m 반경으로 사람이나 다른 자전거가 오면 바로 겁을 먹고 자전거를 멈춰버려야 했다. 약 한 시간 정도 연습해보고는 스톡홀름이 아무리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다고 해도 이대로 도로에 나가는 것은 무리가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우리는 자전거를 반납하자마자 옆에 있던 지하철역에서 대중교통 3일권을 구매했다.




쓰지 않아도 될 지출을 한 것 같아 허탈하고 마음이 쓰렸지만 웃음이 나왔다. 자전거로 다니기에 딱 좋지 않냐며 어색한 웃음을 짓던 남편은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대중교통 3일권을 산 기념으로 버스를 타고 마트에 찾아가 식재료들을 사오기로 했다. 버스에 올라타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앉아 온몸에 긴장을 풀었다. 역시 버스가 최고야, 하며 감탄하고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와 동시에 눈 앞에서 마트를 발견했다. 우리가 가려던 마트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목표는 이룬 것이었다. 마트에 걸어들어가며 남편에게 말했다.


"브런치 제목 나왔다. '자전거 소동'."





내가 자전거를 못 탄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우리가 갑자기 자전거를 선택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거리에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슝슝 달리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또는 일종의 낭만 때문에,

대중교통보다 훨씬 저렴한 것 같아서,

또는 결제를 하던 그 순간의 우리가 너무 배고프고 지쳐 인지능력이 떨어져서.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몸이 다치지 않는 선택, 마음이 편한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저렴한 선택이라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는

그런 시간이 왔던 것 같다.



2018.07.22.

세계여행 Day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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