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단상 1

[Day 100] 다섯 가지 짧은 이야기

by 시소유

# 1 Congratulations!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의 출신지를 말하게 된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독일을 이기고 난 후로는 우리가 South Korea 출신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Congratulations!한다. 정말 명경기였다고, 전 세계가 놀랐다고, 정말 축하한다고 말해준다. 우린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선수들이 잘 한 건데 우리가 축하를 받는다.


100분에 가까운 시간을 온 힘을 다 해 뛰어준 그들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그들의 노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고 기뻐하고 축하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한 번도 본적도 없는 당신들이 열심히 살아준 덕분에 내가 내 나라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환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기 몫을 해내며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내가 이 순간 나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도 기쁨의 씨앗이 되어 누군가에게 피어나겠지.



2018.07.01.



# 2 걷는 것



걸으면서 내가 오직 생각하는 것은 내 팔다리, 내 심장, 내 등허리와 어깨목.


내 존재의 메커니즘.


도대체 어떻게 내 다리가 움직이고 팔이 움직이고, 등허리가 곧추서있고 어깨목이 머리를 지탱하는지, 어떻게 그래서 내가 땅을 밀어내고 공기를 밀어내어 앞으로 나아가는지. 어떻게 내 코가 다 쓴 숨을 뱉어내고 새로 필요한 숨을 들이키고 그 숨이 또 역할하여 몸 안에 에너지를 만들어내는지. 어떻게 또 그 에너지가 다리를 움직이고 팔을 움직이고 등허리를 곧추세우고 어깨목으로 머리를 지탱하는지.


밥을 먹으면 어찌 알고 위장이 알아서 움직이는지. 어떻게 그 음식물이 몸 안에서 에너지가 되는지, 다 쓴 연료는 어떻게 때맞춰 밑으로 나오는지.


저것들 외에도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수천 수억가지 일들 중 단 하나라도 작동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저들이 작동하고 작동하지 않고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두렵다는 것은 갑자기 무슨 이유에선지 작동을 하지 않아도 내가 딱히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다행스럽다는 것은 이 모든 메커니즘을 관장한다는 것은 어차피 내 능력 밖이기 때문에 알아서 작동해주는 것이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떠 밤에 다시 그곳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내 몸이 어느 것 하나 어긋나지 않고 일해주었다면 그것만큼 기적 같은 일이 없는 것인데. 나는 무엇을 더 바랐는가, 내가 오늘 하루 잘 작동했고 상채기 하나 없이 다시 이곳에 누워있는데.


기적은 이토록 매일 일어나고 있는 것인데, 그걸 인지하는 자는 매일이 기적 같고 놀라운 삶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매일을 눈 귀 닫고 기적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시 이렇게 한 발을 떼고, 그 발을 다른 발 앞에 갖다 놓고, 땅을 밀고, 공기를 밀고.



2018.07.10.



# 3 오레오



오레오를 샌드 째로 한입 베어물면 쿠키가 부서진다. 조각난 쿠키만 똑똑 떼어 하나씩 입에 넣으면 하얀 크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떨 때는 슥 이로 갉아 크림만 먹고 어떨 때는 그 크림 부분 만큼의 쿠키까지 베어 물어 쿠키와 함께 먹는다. 그러다가 또 부러진 쿠키 조각을 먹으면 하얀 크림이 나오고 그럼 또 하얀 크림을 먹는다. 그 모든 과정이 어찌나 재밌는지, 나는 오레오를 먹으며 혀와 배의 충족 뿐만 아니라 즐거운 경험을 먹는다. 오레오는 쿠키만 먹어도 맛있고 크림만 먹어도 맛있고 둘을 같이 먹어도 맛있다.


아, 우유에 찍어먹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우유에 오레오 반을 폭 담가 조금만 기다리면 그 까맣고 단단한 오레오가 어찌나 흐물흐물 촉촉해지는지, 마치 고급스러운 초코케잌을 먹는듯하다.



2018.07.11.



# 4 사람 목숨



사람 목숨이라는 게 대체 뭘까.


이곳 보스니아에서는 전쟁으로 너무나 많은 젊은 꽃들이 졌다.

도시 전역을 덮고 있는 묘비들이 심장을 찌른다.


아까는 기사를 읽다가 서수남 씨의 딸이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미국에서 온 딸의 유골을 받아 든 아빠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으로 가늠할 수가 있을까.


사람 목숨이라는 거,

그 귀중함에 비해 너무 쉽게 죽어져 버리는 게 아닌지.

하나의 우주이고 하나의 세계인 하나의 사람이

어쩜 총탄 하나에, 악의 활개에 무력하게 죽어버려야 하는 것인지.



2018.07.13.



# 5 송도의 기숙사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송도의 기숙사가 몸서리치도록 그리웠다.


호스텔의 이층 침대들을 바라보며 송도의 코딱지만한 3인실 기숙사가 어찌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그 작은 공간은 책상 세 개와 침대 세 개, 작은 옷장과 화장실까지,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침대로는 이층 침대가 하나 있었고, 세 명 몫의 작은 서랍들이 침대 아래에 있는 반층 짜리 침대가 있었다. 나는 두 학기 내내 그 반층 짜리 침대를 차지했는데, 그건 내가 학기 초 마다 가장 먼저 기숙사에 도착해 침대를 고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층은 2층에 가려서 어두웠고 2층은 천장에 가까워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없었으나 반층짜리 내 침대는 늘 밝은 데다가 앉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침대를 참 좋아했다.

나는 그 침대 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대로 누워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또다른 하루가 주어지는 그 일이 부담스러웠다. 맞이한 하루에서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이 하루를 보내야 할지 한없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난 왜 살지?'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도 없이 던졌다.


20대 초반, 나는 부서지고 또 부서졌다.

지나고 와서 보니 그때의 내가 참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쉬지 않고 고민해주어서 고맙고, 치열하게 맞서 싸워줘서 고맙다. 강하게 나 자신으로, 내 두 다리로 일어나려고 해주어서 고맙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줘서 고맙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안다.


내가 송도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 모든 공간에 내 20대 초반의 모든 고민들이 묻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험 전날 혼자 앉아 밤을 꼴딱 새워가며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했던 기숙사 책상 위에, 희연이와 함께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숙사 침대 위에, 잇따른 연강으로 점심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석규와 내가 강의실을 도망쳐나와 밥을 먹으러 갔던 도서관 지하식당에, 아마 강의실보다 더 자주 찾았을 해양경찰청 근처 어느 술집에,

모든 것이 고되었던 내 20대 초반을 놔두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너무 힘들지 말아달라는 말을 미처 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8.07.08.





2018.07.18.

세계여행 Day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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