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속도로 걷는 사람

[Day 67] 터키 이스탄불 / 친구 알라라와 베르케, 갈라타 타워

by 시소유

터키인 친구 알라라 Alara 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고등학교 때 뉴욕에서 열린 국제리더십캠프에 다녀왔었는데, 알라라는 그곳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다. 터키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쯤 연락해 만날 날짜를 잡았고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정말 기뻐했다. 우리의 스케줄을 듣더니 언제언제가 이슬람교 휴일(이드 알피트르)이니 어느 쪽에 사람이 많을 예정이라 며칠에 어디를 가는 게 좋겠고, 그 다음날은 또 어디를 가는 게 좋을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의 자세한 안내 덕에 우리는 어제 술탄아흐메트 지역을 다녀왔고 오늘은 그녀와 그녀의 오빠, 베르케 Berke 와 함께 탁심 광장 쪽과 갈라타 타워를 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했다. 언제나처럼 머리를 빗고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을 발랐다. 어제 미리 꺼내놓았던, 배낭 속 딱 한 장 있는 꼬까옷을 몸에 걸쳤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붉은색 립밤을 꺼내 발랐다.


알라라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2010년 여름이니 그 후로 8년이 흘렀다. SNS로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듣고 사진을 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 것은 수 년이 흐른 일이었다. 그녀는 예전과 똑같을까? 많이 달라졌을까?



집을 나서 탁심 광장 쪽을 향해 걸었다.


"뭔가 떨린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평소와 달랐다. 난 뭘 기대하고 있는 걸까? 또 난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사실 그녀와 놀던 2010년의 여름은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나와 꽤나 친하게 지냈던 그녀가 어떤 말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었고, 어떤 성격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우리가 다른 캠퍼들보다도 더 친하게 지냈었던 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예전과 같다면 다시 만나도 금방 쉽게 친해질 수 있겠지만 그녀가 달라졌다면, 또는 내가 달라졌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살다보면 당연히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지만, 한때 친했던 누군가를 다시 만났을 때 우리가 이제는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사이임을 인정해야하는 그런 만남은 마음이 아픈 일이다. 그녀는 무슬림이었나,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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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점을 먹고 카페에 앉아 쉬면서 그녀를 만나기로 한 1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십 분 전쯤 나가 그녀를 만나기로 한 탁심 광장 동상 앞에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동상 근처를 돌며 그녀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그녀가 있으려나, 오빠와 함께 온다고 했는데, 진짜 그녀가 벌써 나타나버리면 어떡하지, 아직 1시가 되지 않았는데 우리보다 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면 어떡하지, 머릿속이 시끄럽던 중 저쪽에서 하얀 피부에 흰색 옷을 입은 익숙한 얼굴이 활짝 웃으며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알라라였다.



우리는 8년 만에 허그를 나눴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그녀의 미소는 예전과 똑같았다. 이곳 터키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꽤나 상기된 나와 달리 그녀는 침착하게 우리에게 배가 고픈지, 점심으로 뭘 먹고 싶은지 물었다. 그녀는 8일 만에 만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오빠 베르케도 마찬가지였다. 베르케와는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래 알던 사이처럼 편안했다.


그녀와 발 맞추어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모든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했고 그 어떤 긴장도, 부담도, 어려움도 없었다. 그저 그녀로 존재하는 그녀가 편안했기에 나도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예쁜 교회당을 하나 들렀다가 밥을 먹으러 갔다. 그들은 우리에게 터키식 피자(라흐마준, lahmacun)를 맛보게 해준다며 그걸 파는 곳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찾아 들어간 그곳에서 우리는 라흐마준과 피데를 먹었다. 라흐마준은 얇게 저며진 고기가 올라간 또띠아 위에, 접시에 나온 양파, 양상추, 토마토, 피클 등을 그 위에 올려 싸서 먹는 음식이다. 피데는 길다랗고 옴폭 패인 빵에 다양한 토핑을 올려 화덕에 구운 음식이다. 둘 다 정말 맛있었다. 알라라와 베르케는 당연한듯이 우리가 먹은 것까지 결제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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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먹은 우리는 갈라타 타워에 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갈라타 타워 앞에 도착하니 타워에 오르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 네 명은 함께 전망대에 오르는 줄에 섰다. 알라라는 이 주변은 자주 와봤지만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보는 건 처음이라며 좋아라 했다. 그녀는 이 타워에 연인과 함께 올라가면 결혼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네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전망대에 올라 그들은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고 베르케가 알라라와 나의 사진을 찍어주고 내가 알라라와 베르케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이곳에 여행 온 사람들처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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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근처의 가장 유명하다는 디저트 전문점에 우리를 데려가주었다. 그곳은 터키식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잘하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계산대의 줄이 아주 길었고 매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바클라바에 레몬에이드를 마시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대선을 앞두고 터키 시민들을 우롱하고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고 있는 현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번 대선을 통해 정권이 바뀌길 희망하지만 그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것이라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의 힘으로 탄핵을 이루어낸 것과 정권 교체를 해낸 것, 북한과의 관계가 많이 개선된 것 등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부러워하며 터키에서도 꼭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클라바 baklava : 얇은 페이스츄리 과자 안에 잘게 잘린 피스타치오를 가득 넣고 설탕 시럽에 푹 적신 강렬한 단맛의 터키 전통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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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 달에 대학원 진학을 위해 알라라는 아일랜드로, 베르케는 스웨덴으로 간다고 했다. 이들이 이스탄불에 있는 마지막 달에 우리가 온 것이다. 한 달만 늦었어도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이 친구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스탄불은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 도시가 되었다. 우리에게 여행지인 이곳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마음을 건드렸다. 이곳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란 알라라는 이 거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고민을 하고,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며 살아왔을까? 바닥의 타일들과 건물의 벽돌들과 거리의 고양이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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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에는 처음 부터 내 속도로 걷기보다는 상대방의 속도를 먼저 파악하는 편이다.

나와 다른 속도로 걷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살짝 불편하더라도 최대한 상대의 속도에 맞춰 걷는다.


걷다보면 나와 똑같이 나의 속도를 재고 있는 자도 있고, 그저 자신의 발걸음에만 집중해 따가라기 버거워하는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자도 있다.


당연히 나의 속도를 가늠해주는 자가 함께하기에 훨씬 편안하다.

그런데 사실 더 편한 사람은

날 신경 쓰지 않고 걷고 있는데 그 속도가 마침 내 발걸음과 똑같은 사람이다.



그저 걷고 있는 그녀의 속도가 나와 같았을 때,

나도 온전히 내 자신이 되었다.



2018.06.14.

세계여행 Day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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