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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Oct 20. 2018

결혼 1주년을 기념하며

[Day 193] 캐나다 퀘벡/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당신에게 쓰는 편지


오빠! 우리 결혼 1주년이야.



벌써 결혼한지 1년이 되었다니 너무 신기하지 않아? 1년 전 이날, 우리는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장 정신 없고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냈잖아. 믿어져? 종종 결혼한 것 자체가 꿈 같게만 느껴질 때가 있어. 우리가 결혼을 했구나. 부부가 되었구나.


어느새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산지가 일 년이 되었다는 거네. 수고했다, 우리.


부부가 된 이후 우리 관계는, 연애 때와는 좀 다른 것 같아. 연애할 때도 우린 단 한 번의 삐걱거림도 없이 늘 안정적이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두 명의 불완전했던 개인이 비로소 정서적으로 가장 편안한 집을 찾아 안식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토록 편안했던 적이 없어 정말. 당신도 내 옆에서 자꾸 아이가 되고 '부인만능주의'를 외치는 걸 보면 내 품이 편하긴 한가봐.



연애 초반에 내가 당신에게 썼던 글을 보면, 당신은 이미 혼자서도 너무 완전한 사람이라 나의 존재가 당신에게 꼭 필요할까, 당신의 그 완벽한 인생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당신은 내 품 안에서 아기가 되어버렸지. 아주 작은 결정 하나에도 꼭 내 의견을 물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 되어버렸어. 그런 당신을 보면서 나의 인생이 한 사람에게 온전한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음에 감사해.


나에게도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집이야. 당신은 나에게 주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계산하지 않지. 당신이 밥을 다섯 번 정도 차렸을 때 내가 세 번 정도는 차리는지, 당신이 설거지를 세 번 정도 할 때 내가 적어도 두 번은 거드는지 생각하지 않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무슨 행동을 하든지 그저 나이기 때문에 이미 당신에겐 완벽한 존재라는 게 너무 신기해. 어떤 평가와 잣대도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세상 단 하나뿐인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 이런 관계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매일이 벅차게 감사해.


결혼 1주년이 되기 꼭 닷새 전에, 내가 결혼식 닷새 전에 쓴 글을 함께 읽었잖아.

우리가 결혼할 때 먹었던 마음, 우리가 이루고자했던 사랑, 지금까지는 꽤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퀘벡에서 보낼 수 있어서 참 좋았어. 꼭 이십 년 전, 당신이 여덟 살 통통한 꼬마일 때 왔던 그곳을 우리가 부부가 되어 다시 온 거야. 젊었던 당신의 부모님께서 어렸던 당신을 데리고 여행하셨던 곳을, 이제 당신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한다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거닐고 있는 거야.



1998년, 그리고 2018년


동화 속 세상 같은 이 작은 도시를 거닐면서 당신은 어린 시절을 추억했어. 많이 어렸을 때라서 선명하지도 못한 그때의 기억들을 당신은 하나 둘 파편으로나마 돌이켜냈어. 매일 밤 식구들의 잘 곳을 찾아 도시를 헤매고 종이 지도 한 장에 의존해 북미 전역을 누볐던 당신의 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렸지. 뒷 좌석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드넓은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세상을 돌아다녔던 우리가 어느새 앞 좌석에 앉아있네. 우린 이 차에 어떤 생명들을 태우고 어떤 길을 가고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 당신과 함께라면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문득, 육개월 넘도록 대화라는 걸 당신 한 사람하고만 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어. 200일, 24시간을 딱 한 사람하고만 교류하면서 살고 있는데 질리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당신은 어느새 내 가장 친한 친구이고, 내 아들이고, 내 부모님이고, 내 숨이고, 나야.


앞으로도 이렇게 지낼 날들이 1년도 더 남았는데, 이 여정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얼마나 더 깊어져있을까? 내가 세계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좋은 건 바로 당신이야. 우리가 세계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좋은 건 바로 이 관계일 거야.




당신이라서 참 다행이야.


결혼도, 세계여행도, 이후에 있을 정착도, 육아도,

앞으로 내 인생에 있을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함께 나눌 사람이


당신이라서 참 다행이야.




- 2018.10.14.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보내며, 아내가.




2018.10.19.

세계여행 Day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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