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52] 이탈리아 피렌체
아이스크림을 먹고싶었다. 아니, 스트라차텔라가 먹고싶어서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었다. 가기로 했던 성당과 멀지 않은 곳에 그제 방문했던 가성비 좋은 아이스크림 집이 있어서 거길 갔다가 가기로 했다.
스트라차텔라, 쿠키, 레몬을 골랐다. 물론 레몬은 그의 픽이었다. 나는 분명 스트라차텔라를 제일 먼저 말했는데 점원이 컵에 가장 먼저 담은 것은 레몬 맛이었다. 그 다음 스트라차텔라, 그 다음 쿠키를 담았다. 먹기 시작했는데, 나는 스트라차텔라의 맛을 느끼기가 너무 어려웠다. 순수한 밀크 맛에 다크초콜릿 향이 홀로 돋보이는 것이 스트라차텔라의 매력인데 신 맛이 매우 강한 레몬 맛과 단 맛이 매우 강한 쿠키 맛, 딱 그 사이에 껴서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 묻혀 이도저도 아닌 맛이 되어버렸다. 컵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나는 스트라차텔라의 맛을 느끼려 숟가락으로 이렇게도 퍼 보고 저렇게도 퍼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결국 그 맛을 느끼지 못한채 아이스크림은 동이 나버렸다.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었던 게 아니라 스트라차텔라가 먹고싶었던 건데, 스트라차텔라는 못 먹고 다른 맛들만 왕창 먹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다시 스트라차텔라를 사먹기에는 이미 속이 차가워져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게 무척이나 속상했다.
그는 내가 속상해하는 걸 눈치챘다. 나는 내가 속상한 이유를 그에게 말했으나 바로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성당 앞에 도착했으나 그는 내 기분이 나아지고 들어가길 원했다. 우리는 성당 문 앞 계단에 앉아 내 속상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잘 들어주어서 나는 기분이 많이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성당 문이 닫혔다. 분명 성당은 다섯 시까지 오픈이라고 되어있었고, 아직 다섯 시가 되려면 45분이나 더 남아있었다. 문 앞에 찾아온 다른 관광객들도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문 옆에 안내판이 걸려있기에 가까이 가서 읽어보니 "The ticket booth closes 45 minutes before the closing time. (티켓 부스는 폐장 시간 45분 전에 마감합니다.)"라고 되어있었다.
세상에. 우리는 늦게 온 게 아니라 이런줄도 모르고 이 앞에 앉아 대화하고 있었던 것인데.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분이 울적해져서, 이 성당 보고싶어 달려온 그가 잠깐 멈춰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 뿐인데. 고작 이것 때문에 힘들게 걸어 찾아온 이곳을 들어가지 못한다는게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내가 아이스크림이 먹고싶다 하여 아이스크림 집에 들러 같이 줄을 서 주었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어주었다. 다 먹고서는 돌연 울적해진 나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 사이에 그가 보고싶어 한 성당은 문이 닫혀버리고 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굳게 닫힌 문을 있는 힘껏 열어보려고도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몇 초 후 안에서 직원이 나오더니 티켓 부스가 닫혔다고 말했다. 그래서 들여보내줄 수 없다고. 내일은 오후 한 시에 문을 연다고 말하며 문을 닫았다. 너무 속상했다. 이곳에 도착해서 바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단에 앉은 그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계단에 앉아야했던 것이 나 때문이라 나는 더 속상했다.
다시 문이 열리고 직원이 나왔다. 나는 빌어보았다. 우리가 내일 아침이면 이 도시를 떠나서 이곳에 다시는 올 수 없다고. 피렌체카드가 있으니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 들여보내주면 안 되겠냐고. 직원은 단호했다. 문은 다시 굳게 닫혔고, 다시 열리지 않았다.
"나 때문이야. 내가 기분 괜찮았으면 바로 성당 들어가는 거였는데... 나 때문에 못 봐서 미안해. 으아앙..."
그의 눈을 쳐다보고 미안함을 전하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그의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아쉬움에 가득 찼던 그의 얼굴은 내 눈물과 함께 다 녹아내렸다. 굵은 눈물이 뚝뚝 흐르는 내 눈을, 빨개져버린 내 코를, 삐죽거리는 내 입을, 그는 하나하나 소중하게 응시했다. 크고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때로는 자신의 어깨에 내 얼굴을 묻게 해주었다. 그는 오랫동안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거 봤으니 됐다. 너 우는 모습 본 게 훨씬 좋다, 나는. ㅎㅎㅎ"
2018.09.08.
세계여행 Day 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