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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Sep 26. 2018

나 때문이야. 미안해

[Day 152] 이탈리아 피렌체

9월 8일,

피렌체 마지막 날 오후



아이스크림을 먹고싶었다. 아니, 스트라차텔라가 먹고싶어서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었다. 가기로 했던 성당과 멀지 않은 곳에 그제 방문했던 가성비 좋은 아이스크림 집이 있어서 거길 갔다가 가기로 했다.


여기 아이스크림 싸고 양 많고 맛있어요!


스트라차텔라, 쿠키, 레몬을 골랐다. 물론 레몬은 그의 픽이었다. 나는 분명 스트라차텔라를 제일 먼저 말했는데 점원이 컵에 가장 먼저 담은 것은 레몬 맛이었다. 그 다음 스트라차텔라, 그 다음 쿠키를 담았다. 먹기 시작했는데, 나는 스트라차텔라의 맛을 느끼기가 너무 어려웠다. 순수한 밀크 맛에 다크초콜릿 향이 홀로 돋보이는 것이 스트라차텔라의 매력인데 신 맛이 매우 강한 레몬 맛과 단 맛이 매우 강한 쿠키 맛, 딱 그 사이에 껴서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 묻혀 이도저도 아닌 맛이 되어버렸다. 컵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나는 스트라차텔라의 맛을 느끼려 숟가락으로 이렇게도 퍼 보고 저렇게도 퍼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결국 그 맛을 느끼지 못한채 아이스크림은 동이 나버렸다.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었던 게 아니라 스트라차텔라가 먹고싶었던 건데, 스트라차텔라는 못 먹고 다른 맛들만 왕창 먹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다시 스트라차텔라를 사먹기에는 이미 속이 차가워져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게 무척이나 속상했다.


그는 내가 속상해하는 걸 눈치챘다. 나는 내가 속상한 이유를 그에게 말했으나 바로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성당 앞에 도착했으나 그는 내 기분이 나아지고 들어가길 원했다. 우리는 성당 문 앞 계단에 앉아 내 속상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잘 들어주어서 나는 기분이 많이 나아지고 있었다.


조토의 종탑에서 바라본 브루넬레스키 돔



그러던 중 갑자기 성당 문이 닫혔다. 분명 성당은 다섯 시까지 오픈이라고 되어있었고, 아직 다섯 시가 되려면 45분이나 더 남아있었다. 문 앞에 찾아온 다른 관광객들도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문 옆에 안내판이 걸려있기에 가까이 가서 읽어보니 "The ticket booth closes 45 minutes before the closing time. (티켓 부스는 폐장 시간 45분 전에 마감합니다.)"라고 되어있었다.


우리를 안타까워하고있는 단테


세상에. 우리는 늦게 온 게 아니라 이런줄도 모르고 이 앞에 앉아 대화하고 있었던 것인데.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분이 울적해져서, 이 성당 보고싶어 달려온 그가 잠깐 멈춰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 뿐인데. 고작 이것 때문에 힘들게 걸어 찾아온 이곳을 들어가지 못한다는게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내가 아이스크림이 먹고싶다 하여 아이스크림 집에 들러 같이 줄을 서 주었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어주었다. 다 먹고서는 돌연 울적해진 나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 사이에 그가 보고싶어 한 성당은 문이 닫혀버리고 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굳게 닫힌 문을 있는 힘껏 열어보려고도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몇 초 후 안에서 직원이 나오더니 티켓 부스가 닫혔다고 말했다. 그래서 들여보내줄 수 없다고. 내일은 오후 한 시에 문을 연다고 말하며 문을 닫았다. 너무 속상했다. 이곳에 도착해서 바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단에 앉은 그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계단에 앉아야했던 것이 나 때문이라 나는 더 속상했다.


다시 문이 열리고 직원이 나왔다. 나는 빌어보았다. 우리가 내일 아침이면 이 도시를 떠나서 이곳에 다시는 올 수 없다고. 피렌체카드가 있으니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 들여보내주면 안 되겠냐고. 직원은 단호했다. 문은 다시 굳게 닫혔고, 다시 열리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무력해진 나


"나 때문이야. 내가 기분 괜찮았으면 바로 성당 들어가는 거였는데... 나 때문에 못 봐서 미안해. 으아앙..."


그의 눈을 쳐다보고 미안함을 전하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그의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아쉬움에 가득 찼던 그의 얼굴은 내 눈물과 함께 다 녹아내렸다. 굵은 눈물이 뚝뚝 흐르는 내 눈을, 빨개져버린 내 코를, 삐죽거리는 내 입을, 그는 하나하나 소중하게 응시했다. 크고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때로는 자신의 어깨에 내 얼굴을 묻게 해주었다. 그는 오랫동안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거 봤으니 됐다. 너 우는 모습 본 게 훨씬 좋다, 나는. ㅎㅎㅎ"




2018.09.08.

세계여행 Day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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