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윤리기준의 어려움

우리는 얼마나 간사한가

by 씨쓰루 See through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간사하다. 상황에 따라 그 입장을 달리하기도 한다. 특히 남을 볼때와 자기 자신을 볼때는 얼마나 다른 잣대를 들이대곤 하는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단어까지 있을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겐 철두철미한게 바로 사람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던가? 하는 말이 있다. 한국의 특성을 나타내주면서도 가장 치사한 내용이다. 결과나 내용 보다는 인맥에 의해, 좋은 게 좋은거라는 그들 나름의 미명하에 용인되고 묵인되는 사회를 그대로 나타내준다.


외부에서 이를 바라보면 참으로 더럽고 아쉽다. 올바르고 정직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게 우리의 바람이건만, 어느순간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이를 더럽힌다.


실력이 안되고, 능력이 안되면 당연히 자리에 걸맞는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하나, 많은 요인으로 이는 거부된다. 사장의 지인이라서, 오래전부터 함께 해와서, 그리고 내 사이라서. 얼마나 다양한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 하고 자신의 결정을 옹호 하는가.


이에 굴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시작자체는 아직 건전함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다. 자신이 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외부에서의 압박이었고, 힘이 없는 자신은 이를 거부할 수 없었기에. 공정하게 해야지, 순리에 맞게 해야지 하다가도 어느순간 자신이 싫어하는 부류에 자신을 구겨넣고 만다.


특히 사업의 세계가 그렇다고도 한다. 프로젝트의 내용자체만이 아닌 그를 구성한 인원들의 인격, 심사위원들과의 친밀도 등 다양한 것들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혹, 100% 순수 프로젝트의 내용만을 본다고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호감이란 감정자체를 배제하기가 쉽지 않다. 나에게 호감을 전달하는 사람에 대해 조금은 더 따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는 모습을 발견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하나 어느순간 인간의 마음 틈을 파고들어, 자신의 신념에 물감칠을 하고 만다. 이를 바라보는 나는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아쉬웠다.


그런데 나는 또 어떤가. 열심히 꿈을 꾸는 청년들이 면접을 보는 자리에 들어갔다. 평가를 끝나고, 임원진의 호출을 받아서 가보니, 사장님과 아는 사이니 좀 좋게 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강제적인 부탁이 아니라, 웃으면서 부탁을 하는 뉘앙스다. 그래서 내 신념에 맞게, 그리고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방향에 맞게 "그럴 순 없습니다. 면접에서 본 대로만 정하면 될 것 같아요." 라는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사람은 결국 출근을 했다. 다른 사람을 제치고 기회를 받은게 아니라, 추가로 없던 TO를 내서 받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냐는 위안을 한다. 그러나 그는 애초에 필요없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나중에 발전해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다. 허나, 기준과 올바름이라는 선을 가꾸어 가던 누군가는 자신의 기준의 흐릿함을 맛보았다. 부정입학을 허락한 기분이었다.


옳고 그름이 있다면, 그 옳음을 주장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너무 딱딱하게 왜이래", "이런거 한다고 죽냐?",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왜 큰일을 만드냐?" 라고 한다. 그 간사한 마음과 드넓은 허용이 우리를 조금씩 타락하게 만든다. 우리의 모습은 최순실 정유라의 복사판이다. 조금 더 나아진 세상을 향해 달려가지 못할망정 머릿채를 잡아 끌고 뒤로 후퇴한다.


올바름, 정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 무조건적인 기준을 주장하기 쉽지 않다.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기는 선?정도가 그나마 합리적인 영역이 아닐까. 그럼 그 영역을 구성하는 "보편적"이라는 단어의 구성을 봐야하는데 이는 우리 하나하나가 모여 이룬 집합으로부터 나온다.


내가 -1을 더했고, 누군가가 고맙게도 +1을 더해서 유지를 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그럴수도 있지"라는 이름하에 보편적 기준을 유지한다. 우리는 아직 많이 나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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