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과 출력
생각보다 빠르게 뽑혔던 브런치 작가는, 나를 설레게 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글들을 뽑아내는 동기가 되기도 했고, 맡은 역할 안에서 쌓여있던 여러 감정들을 쏟아낼 수 있는 비상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을 핑곗거리를 만들며, 하루의 일과들을 몇 날 며칠의 감정들을 이곳에 담아두곤 했다.
오랜만에 들어온 브런치엔 지난날들의 나의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글을 읽어 내려가며 '그땐 그랬지', '그러게 꽤 많이 컸다고 생각한 그 무렵의 우리 집 꼬마는 꽤 어렸구나', '맞아, 참 즐거웠지' 다시 또 나로 하여금 설레게 하는, 여전한 브런치다.
난 꼭 바쁠 때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리고 꼭 정서적 파도가 크게 칠 때, 펜을 잡거나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곤 한다. 무언가 덜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내 안에 강하게 자리할 때, 그 덜어내는 일을 글로 하고 싶은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게 난 오늘 아주 오랜만에 하던 일을 멈추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브런치, 안녕?
꽤 바쁜 요즘을 지낸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잘하고 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고,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한편엔 늘 부족한 마음이 있는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러한 마음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잘 못하고 있다는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직 분명한 경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뭐, 나쁜 쪽보단 바쁜 쪽이 맞는 듯하다. 어떤 경계를 발견하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여부를 발견하기엔 그저 너무 바쁜 요즘이다. 사실 우리 집 꼬마 한 명의 요구사항들을 들어주는 일도 꽤 바쁜 일이기에.
입력과 출력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하고, 그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들이 입력된다. 기쁨이라는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웃음이라는 단어로 묶을 수 있는 사람들의 표정변화, 소리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더라. 본래의 관찰이 습관인 나에게 사람들의 기쁨이라는 정서를 담아낼 더 큰 저장매체가 필요한 것 같았다. 입력값이 많아지니 괜히 마음이 분주해지고 분주해진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정돈되지 않은 마음이 글 안에 그대로 담긴다. 이 마음이 결코 쓸모없는 마음이 아니란 걸 알기에. 지금의 나에게 '잘하고 있어'라는 말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 또한 잘 알기에. 그저 키보드 위에 얹어진 손가락이 마음껏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는 th레드도 있지만 난 브런치로 걸음을 옮겼다. 나와 제법 어울리는 곳은 짤막한 글보단 생각보다 긴 글이라고 여겨지기에. 그래.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