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모자라, 혼자가 편해

아무튼 난 '엄마'다

by seetoday


어쩌면 힘들 때 가장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가장 힘을 얻는 생애 역할. 엄마. 그렇다. 나는 엄마다. 간혹 새롭게 관계하는 사람들은 내가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하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내가 어려 보여서가 아니라 그냥 연애랑도 거리가 있어보인다고들 한다. 아무튼 난 '엄마'다.


엄마라는 생애 역할과 관련하여 내가 블로그에 적었던 글이 있다. 그 글은 '결핍'이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부족함 안에서 아이를 키워낸다는 건 행여나 그 부족함이 아이에게 머물게 될까 봐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난 한 아이의 '엄마'니까 그 불안함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애쓰는 힘이 커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그 불안감과 여러 잡스레 한 생각들은 사랑하는 존재로 인해 벗어날 수 있게 된다.






03 24시간이 모자라, 혼자가 편해


가요를 즐겨 듣는 편이 아니다. 한참 아이돌 그룹들이 인원수가 많아지던 무렵. 소녀시대 멤버의 이름들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사람들과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 때면 이모티콘이 아닌 #해시태그 검색을 통해 웃긴 이미지를 보내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안에서 내가 유독 검색하며 보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선미가 부른 "24시간이 모자라"라는 곡과, 나플라가 부른 "혼자가 편해"라는 곡이다.



이건 뭐,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육아현장에 있는 전우들은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어도 공감할 것이다.




24시간이 모자라
24시간이 모자라 너와 함께 있으면 너와 눈을 맞추면
24시간이 모자라 내가 너를 만지고 네가 나를 만지면
24시간 우우우 24시간
24시간 우우우 24시간
시간이 너무 빨리 가 너와의 하루가 일분 같아 난 미칠 것 같아
아쉬워 아쉬워
널 보고 있으면 모든 걸 다 잊어버려 네가 나를 가득 채워
#24시간이모자라_선미


막상 텍스트로 옮겨보니 소름 끼치게 더 와닿는다. 으하하하. 아이를 뱃속에 품었을 때부터 나에겐 '엄마'라는 단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커피를 너무 좋아하는 나에게 "엄마가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시면 어떡해!", "엄마가~", "엄마는~" 등의 문장들이 날 따라붙었지. 그땐 그 문장들이 나를 '나'로서가 아닌 누군가의 '엄마'로서만 보는 것 같고 '엄마'의 역할에 맞게, 아이의 필요에 따라서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


근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내 눈앞에서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나를 마주하고 있을 때 알게 되었다. '젠장, 나 이제 정말 엄마구나'라고 말이다. 지금 아이는 30개월이 되었다. 고개를 가누지 못할 때보단 시간이 남는다라고 표현할 수 없다. 결국 내 아이와 보내는 시간들은 보내고 또 보내고 보내도 부족하다. 아, 내 아이와 직접 보내는 시간 외에(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을 때)도 시간은 부족하다.


너와의 하루는 1분 같지만 주말 너와 보내는 5분이 50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알고 보니 우리 아이는 시간 마술사? 으하하하. 평일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난 직장에 다닌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사회생활을 마친 뒤 일과를 보낸다. 평일의 아침은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난 건망증이 심하고 확인하는 강박이 있어서 재차 확인을 한다. 부족한 마스크는 조금 더 챙겨 넣고 소독기에서 빨대컵도 꺼내서 가방에 넣어준다. 그럴 무렵 아이가 깬다면 (이미 깨어있는 날들이 더 많음) 간단한 아침을 준비해주고 이따가 오후에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나간다. (아, 우리 집은 출근시간의 차이로 아빠가 아이 등원을 맡고 있다.)


내가 퇴근을 조금 일찍 할 수 있는 날이면 집에 들러서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원길 먹을 간단한 주전부리도 챙기고 물티슈도 챙기고 이따가 저녁으로 먹을 음식거리도 체크한다. 그리고 하원길에 나선다. 하원과 동시에 동네 탐방을 시작한다. 24시간 우우우 24시간 우우우.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가까이를 걷다가 들어올 때도 있다. 널 보고 있으면 모든 걸 다 잊어버려 네가 나를 가득 채워 오늘 업무가 많아서 힘들었는데 이렇게 걷는 일이 너무 버거운데. 나 오늘 진짜 집에 바로 가고 싶은데. 보고 있으니 다 잊어버리니.. 넌 뭐니.. 떨어진 낙엽 잎 한 장을 들어 건네주며 웃는 얼굴 마주하려는 나를 보니, 내가 마치 사랑꾼이 된 기분이다.







혼자가 편해
혼자가 편해
I need to fly
so I can be alone with my god
집에 가고 싶어
Way up in the sky
하늘은 아직도 젊어
밤에 별들은 아직도 밝아
난 가고 싶어 거기에 앉아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아
#혼자가편해_나플라


너무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는 정말 전부 같고 내 삶의 이유 같고, 피곤함 속에서 마시는 맥심 3개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피로회복제같다. 그런데 한없이 피곤한 뭐 엄마란 그런 자리. "오늘 8시 육퇴 도전?"을 외치며 오늘만큼은 너를 빠르게 재우고 “난 남은 저녁을 날 위해 보낼 거야“라고 외치지만. 막상 잠들고 나면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그날의 아이 사진을 정주행 한다. 가끔 감성에 젖어들면 거슬러 올라가 태어날 무렵까지 가기도 한다. 그러면 결국 아이 사진 보느라 빠르게 찾아온 자유시간도 아이로 채워진다.


아직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들을 만나게 되거나, 임신 중인 부부를 만나게 되면 늘 받는 질문은 한결같다. "아이가 있으니 자유롭지 못해서 힘들죠?", "육아 어때요? 힘들죠?"라고 말이다. 결혼을 안 한 싱글을 만나면 "그때가 좋은 거야!! 누려!!!"라고 말하며 해시태그를 검색한다. #결혼은미친짓이야 으하하. #난그렇게 생각해 으하하. #이좋은세상을두고 #서로구속해안달이야 (ㅋㅋ)


엄마가 되니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 싶다. 아이의 옷을 고르기 위해 그날의 일교차를 검색하며 무엇을 입힐까 한참을 고민하지만, 정작 그날의 하늘은 구름이 많았는지 적었는지 볼 겨를이 없는 날들도 있다. '우리 아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작아진 양말을 보면 그날은 여가시간마다 '유아양말'을 키워드로 웹서핑을 시작한다. 떨어져 가는 수분크림을 새로 사야 하는데 결국 남은 로션을 두껍게 바르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말이다.


혼자가 편한 건 사실이다. 집에 있으면서 집에 가고 싶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고 누군가를 위해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시간을 쏟아낼 수 있다는 건. 편한 것 그 이상의 가치를 준다.


편하게만 사는 일은 나에게 그다지 흥미로운 일은 아니니까.






결국 사랑하는 존재로 인해 벗어날 수 있다


존경하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결국 부모로서의 가장 마지막 종착점은 아이를 잘 길러서 '독립시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난 그렇게 내 아이를 독립시키기 위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일. 내 아이와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결국 아이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느낀다. 난 그저 돕는 사람일 뿐. 그럼에도 무엇으로 인해 그렇게 불안해하며 무엇으로 인해 결핍 안에서 발버둥을 치는 건지. 혹 그런 발버둥과 외침들이 내 아이를 더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로 이끄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내가 엄마가 된다는 건 꽤나 두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을 그려갈 확률이 높다고들 하는데, 내가 경험한 엄마는 내 기준에서 100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혹 그런 모습이 나에게서 드러날까 두려웠다. 그럴 바엔 엄마가 되는 일이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일들을 해석하고 대처한다는 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엄마라는 자리는 그 이상의 자리인걸 느끼는 요즘이다. 들 수 없는 무게를 들어내고, 받아낼 수 없는 감정을 받아내기도 하며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진 많은 일들을 해낸다. 예를 들면 기저귀를 갈다가 굴러가는 응가를 손으로 잡는 일이라던가, 가장 아끼는 옷을 입고 있는데 아이가 토를 하려고 할 때 시원하게, 편하게, 엄마 품에서 하라며 내 품에 안고 등을 두들기는 일처럼 말이다. 하지만 엄마라는 자리는 들 수 없던걸 내려놓을 수 있게도 하고, 받아낼 수 없는 감정을 덜어내는 방법 또한 알게 한다.


짧은 인생을 살아보니 내가 겪지 못했던 일들이 무수하게 많더라. 그 일들 안에 나는 엄마일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내 아이의 엄마일 수 있어서. 많은 결핍을 같이 경험해가며 끝없는 사랑을 경험해가며. 저 어린아이로부터 내가 이렇게 커가는 일을 경험한다. 그 어떠한 두려움도 불안함도 걱정과 염려 그리고 어려운 과제들도 결국 사랑하는 너의 존재로 내가 벗어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렇게 같이 커가며 너는 너의 존재로 나는 나의 존재로 잘 서보자. 사랑해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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