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문 좀 열어주세요
어떤 문이던 좋으니 문 좀 열어주세요 제발
사내 조직 이동 제도를 통한 이동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우선 신규원을 받겠다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아래 조건 중 하나에 놓이게 된다.
1. 기존 조직원의 이탈 : 부서가 바쁘거나, 분위기가 좋지 않거나 여러 이유로 기존 조직원이 나간 경우
2. 성장시킬 조직 : 성장 가능성을 보고 부서원을 받는 조직, 성과를 내야 하기에 바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조직이 더 힘들다면, 사내 조직 이동을 통한 탈출은 가장 안전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우선 별 기대 없이 공지글을 읽어갔다. 어떤 부서가 사람을 받나 정도는 관심 없어도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읽다 보니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부서가 하나 있었다.
보통 비인기 부서들의 모집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꽤 괜찮아 보이는 부서들도 모집글이 올라왔다.
해당 부서 옆에서 일하시는 분께 지원할 부서에 대해 문의드렸다.
근무 시간도 유연한 편이고, 야근도 많지 않은 편이지만
신생부서이기 때문에 아마 수년 안에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거라고 조언해 주셨다.
작은 조직이기 때문에 그룹장의 의사가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내용도 알려주셨다.
전반적으로 들어봤을 때 지금 있는 부서보다는 나을 것 같아 바로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만 11년이나 이 회사에서 구르고 구른 나를 누가 받아주겠냐 라며 큰 기대는 없었다.
그래도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더 커서 한 자 한 자 정성껏 작성했다.
그렇게 마감 시한 전 한 번 더 내용을 체크하고 추석 연휴 전 제출 버튼까지 눌렀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당분간 지원했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괜한 기대가 나의 일상에 불러올 파괴력을 3n년간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추석 연휴가 끝나고 새벽같이 난임 병원으로 향하던 지하철에서 사내 메신저 알림을 받았다.
서류 전형에 통과했으니 면접 일정을 잡자는 연락이었다.
사전에 만나 부서에 대해 설명도 해 줄 수 있다는 친절한 그분의 연락에 합격에 대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짧은 커피챗을 통해 그 부서가 목표로 하는 것, 하는 업무, 부서 분위기 등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며칠 후 면접을 진행했다.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내 연차가 높다는 점을 걸려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떨어져도 후회는 없었다.
서류 전형을 거치며 내 업무도 정리해 볼 수 있었고, 오랜만에 면접이라는 것도 보면서
'대학생 시절 어리바리하던 내가 이젠 이렇게 능구렁이가 되었구나 많이 컸네' 싶기도 했다.
그 후로 정확히 사흘 뒤, 면접 결과 발표가 났다. 결과는 불합격.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 기회에 해 놓은 업무 정리 작업본을 가지고 다른 기업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둘째가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는데 (안 올지도 모르겠는데...) 손 놓고 있기 싫었다.
그렇게 난임 병원을 다니며, 회사에서 월급 루팡을 하는 시간 동안 조용히 이력서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