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만에 다시 나를 세일즈 할 준비를 하다.
부서 이동이 수포로 돌아간 후, 회사 생활에 대한 불안함은 가끔씩 나를 괴롭혔다.
의욕 있고 깔끔하게 일하면 좋은 상사가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겠지.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하면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만족하며 지낼 수 있겠지.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내가 회사에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10여 년 간 성과의 도파민에 젖어있던 나의 회사생활은 늦은 사춘기를 맞은 듯했다.
이미 커리어의 정점을 지나가고 있는 걸까. 씁쓸해졌다.
거기에 급속도로 무너져가는 대외적인 회사의 상황과, 꺾여가는 직원들의 사기는
나의 눈을 자꾸 밖으로 돌게 했다.
비자발적 월급 루팡은 시간을 잘 써야 그나마 마음이 편했다.
이 기회에 부서 이동을 위해 간략히 썼던 경력 기술서를 다듬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링크드인과 인스타, 블로그에서 헤드헌터들이 조언하는 내용들을 종합하여
내 나름대로 차분히 진행했던 프로젝트와 성과를 정리해 보았다.
뒤돌아보니 숨 가쁘게 달려온 그 시간 동안 꽤나 많은 프로젝트가 내 손을 거쳐갔다.
KPI, 매출 성과 등 숫자를 추가해 보니 나의 성과가 꽤 그럴듯한 것 같다.
회사에 갇혀, 회사 밖에선 그저 동네 아저씨일 뿐인 평가자들에게 받은 성적표를 보며
열등생인 것 같아 울고 속상하던 내가 가여워졌다.
한편으로는 그 세월 동안 내가 발전 없이 지냈던 건 아니구나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경력 기술서를 써놓고 보니, 진짜 바깥세상으로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나는 회사 밖에선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정말 이제는 나이 많은, 애 딸린 아줌마라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으려나?
이 정도 성과면 그래도 나와 일해보고 싶은 곳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궁금증은 좋은 회사가 있다면 도전해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번졌고,
여러 굵직한 회사의 채용 사이트, LinkedIn을 돌며 경력직 채용 공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업무 소개, 제공 복지 등을 꼼꼼히 읽다 보니 대학생 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한 두 달을 뒤졌을까, 매월 경력직을 뽑는 한 회사에서 나의 직무/직급의 경력 채용 공고가 떴다.
업계가 다르긴 하지만 일단 쓰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지금도 괴로운 인생, 둘째가 먼저 생길지, 이직이 먼저 될지 이젠 모른다.
현실적으로 애 딸린 내가 어떻게.. 그렇게 포기했던 것들에 도전이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이직 준비의 시작인 이력서 작성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