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장난 압력밥솥이 되었다

둘째 임신 or 조직 이동, 탈출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

by 그저미생

결국 장고 끝에 기존 조직에 남기로 결정했다.

파트장과 따라 타 그룹에 가는 것도, 기존 조직에 남는 것도 나에겐 모두 만족스러운 선택지는 아니었다.

타 그룹은 신규 조직이라 한동안 공황 상태일 것이 자명했고, 수 년간 타 조직으로의 이동이 불가능 했다.

기존 조직에 남으면 내가 그리 혐오하여 탈출의 동기가 되었던 기존 파트장 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룹 내 체류 연한이 꽤 오래된 나는 사내 제도를 통해 금방 타 부서로의 탈출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재택 근무 등 유연한 근무 환경은 보장되어 있어 바라던 둘째 임신 준비도 수월할 거고,

그렇게 되면 육아 휴직 후 복직 때 타 부서로 이동하면 될 것 같았다.

결국 차악을 고르는 게임에서 난 탈출의 기회를 택했다.


배신의 낙인이 찍혀 돌아온 나에게 기존 파트장은 업무를 전혀 주지 않았다.

업무에 대한 열의가 넘치는 나를 서서히 말려서 부서 밖으로 내쫓으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지금의 업무에 지루함을 느낀 지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쌓였고,

안정적인 조직 운영이라는 미명 하에 운영성 업무 외 신규 수익원에 대한 검토는 싹부터 잘라 없애는

이 파트장 밑에서는 성장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


파트장에게 업무를 더 할 의지가 있다고 어필해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룹장과 1:1 면담의 기회가 생겨 업무를 더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일을 주지 않는다면 나도 더 적극적으로 인생 플랜을 실행하겠다는 마음으로 둘째 준비를 시작했다.


둘째쯤 되면 마음 편히 임신 준비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결국 검사를 위해 찾았던 난임 병원에서 우리 부부는 "의학적인 도움 없이는 어렵겠다"는 소견을 받았다.

와이프가 건강하니 도움을 받으면 금방 될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회사도, 가족 계획도 뭐 하나 되는 것이 없는 상황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신이란 있는가.

내가 평생을 믿고 의지하던 신의 존재에 냉소적으로 변할 만큼 풀리지 않는 상황에 대한 원망과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갔다. 이 와중에 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는 의지로 시험관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오전 7시 반에 난임 병원 진료를 보고 출근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배 주사와 씨름하고, 시간 맞춰 챙겨먹어야 하는 약을 털어넣고 힘겹게 출근을 했건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8시간 내내 월급루팡 노릇을 하며 나의 쓰임새를 찾아야 하는 스트레스였다.

사내 자격시험 준비, 재테크와 아이 교육 서적을 섭렵하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사회적인 쓰임과 역할이 나의 자존감에 너무나 중요하기에 일을 하지 않으며 회사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이 계속되었고, 내 자신이 압력을 뺄 수 없는 고장난 밥솥이 된 것 같았다.


제발 아이와 회사 중 하나라도 해결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무더운 여름을 하루 하루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한 여름의 폭염이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9월

드디어 한 번 더 기회일까 싶은 동앗줄이 내려왔다. 사내 조직 이동 공모가 오픈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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