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열렬히 하고 싶으니까
늦은 밤 마감을 마치고 동네 단골 가게에 들렀다. 건축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카페이자 바. 가장 좋아하는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잔잔한 재즈부터 과하지 않은 인테리어, 늘 반갑게 맞아 주시는 사장님, 커피와 술을 함께 파는 것 등 마치 내 맞춤형 공간 같아 자주 찾는다. 오늘은 진탕 취하고 싶은 날이다. 월간지 기자로서 마지막 마감을 마쳤으니까. 와인 한 잔을 해치우고, 추가로 두 잔을 한 번에 달라고 했더니 와인잔 가득 채워 주셨다. 맥주잔인 줄 알았다. 못살아.
나는 늘 적당히를 몰랐다. 사랑도, 일도 매사에 열정을 다했다. 뜨겁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굳이 내가 해야 할 이유를, 나여야 할 이유를 스스로 납득해야 했다. 적당히 할 거면 굳이 나여야 해? 누구나 대체할 수 있는 자리라면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불씨가 더 빨리 꺼지곤 했던 걸까. 하루는 사수가 내게 "늘 애쓰는 거 잘 알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듣곤 몰래 눈물을 훔쳤다. 서운함과 아쉬움을 표하는 그에게 미안하고, 아등바등 일했던 지난 날에 대한 서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목요일에 팀원들과 함께 송별회 겸 다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오늘 대표님과 퇴사 전 면담을 하며 너의 상황을 알기에 더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인턴 때부터 키워 주셔서 고맙다는 말로 답했다. 대기업 이직이 아니라면 다시 데려올 거란다. 그러면 나는 4번째 재입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음을 다했던 직장과 결별을 앞두고 있다. 선배는 최근 히피펌을 한 내게 (휴가 가는 느낌으로) 밀짚모자와 쪼리를 착용하고 출근하라며 우스갯말을 건넸다. 싫다고 예쁘게 입을 거라는 애교로 받아쳤다. 다들 웃었다. 퇴근길은 후배와 함께했다. 후배는 내게 마지막 마감을 마쳐서 후련하냐고 물었다. 시원섭섭하다고 답했다. 사실 섭섭한 마음이 더 크다고. 미련은 아니지만, 애정이 컸기 때문에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다고. 나는 '가늘고 길게'와 같은 것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내게도 행복과 안정감이란 게 어울리는 날이 올까? 그렇게 믿고 싶다.
창 안팎을 가르는 바람이 살결을 매만졌다. 아직 밤공기에 찬기운이 느껴진다. 와인으로 데운 몸과 조금 몽롱한 정신을 챙겨 텅 빈 번화가 중심을 누볐다. 낮이면 사람이 모여드는 이 도시의 여백을, 잠시 열기가 식은 이 거리의 여흥을 누리려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