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만 좋은 어른이 되지 않는 법
그거 아세요? 미운 일곱 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서른 살 먹은 아줌마도 여전히 미성숙하고 의지할 구석이 필요합니다. 외로움도 타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습니다. 언제 이렇게 훌쩍 커버렸는지 실감 나지 않는 요즘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 같은 서른, 6월, 그리고 여름입니다.
퇴로에 불 지르다
어영부영, 지지부진, 유야무야. 제가 싫어하는 유형의 상황입니다. 신중한 고민을 거치고 결단을 내렸으면 착수해야 합니다. 결정을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하는 게 가장 멋없습니다. 어렴풋이 존경하는 어른을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뾰족한 판단력과 유연한 사고방식, 거침없는 실행력과 추진력, 온화한 카리스마까지 갖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현실은 풋내기일 뿐이지만 언젠가 이 마음을 실천할 기회가 생기겠지요? 이달 공식적인 퇴사를 감행하고 새로운 여건과 환경에 몸을 내던졌습니다. 기회가 귀한 나이임을 알기에 스스로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곤궁함을 자처할 용기라도 있는 마냥 굴었습니다. 그렇다고 젊음을 팔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황에 이끌려 가는 게 아니라, 상황을 주도하고 싶었습니다. 그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건물주에게 역정내고 사과받다
좋은 동네에 둥지를 튼 지 3개월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건물주이자 집주인은 '다들 잘 돼서 나갔다'며 좋은 집임을 호언장담한 반면 현실은 형편없었습니다. 기본 옵션이라고 내놓은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가운데 멀쩡히 작동된 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나하나 고쳐 쓰고, 교체해야 했습니다. 정녕 사람이 거주했다고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집주인은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구두쇠였습니다. 스크루지 영감도 지독하다며 도망갔을 것입니다. 집에 방문한 수리 기사들마다 '자기 집 수리하는데 주차비를 받냐'라거나, '이걸 여자분이 혼자 어떻게 옮기냐'라거나, '나를 몸종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라는 식으로 건물주를 향해 혀를 내둘렀습니다. 게다가 집주인은 "나는 모른다"라고 책임을 회피하며 안 해도 될 핀잔을 늘어놓았습니다. 장난하나? 결국 폭발했습니다. 엄한 소리 말고 문제를 개선하라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제야 면밀히 상황을 살피더군요. 결정권자가 움직이니 문제는 놀라운 속도로 해결됐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를 주고받았지만, 그간 속앓이했던 걸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합니다. 인상 써서 생긴 주름의 골이 깊어진 느낌입니다. 문제를 바로잡는 데 이런 공수가 든다니, 놀랍군. 이래서 다들 나이 먹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포기하는 쉬운 길을 택하나 봅니다. 이 또한 경험이리라. 덕분에 값진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집주인과 한 건물에 같이 살면 피곤하다.
효년이 되다
이사한 동네에서 엄마와 첫 점심을 먹었습니다. 메뉴는 양식. 엄마는 좀처럼 가리는 음식이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습니다. 네가 사주는 건 뭐든 좋다는 말뿐입니다. 뭘 사다 주면 괜한 거 사지 말고 저축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우리 엄마. 오늘도 시동을 걸 줄 알았는데 대화의 결이 달리 흘러갔습니다. 모임에서 한 아주머니가 자식 자랑을 늘어놓더니 은근히 본인을 무시해 속상했다는 겁니다.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며 시큰둥하게 답했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맥락을 빼놓은 단편적인 얘기로 기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없다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 또 매번 얘기하는 그놈의 '엄마 친구 딸'은 매월 벌이가 꽤나 된다고 합니다. 나는 차분히 반문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부끄러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차차 성장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 엄마는 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우리 딸은 벌이가 좋진 않아도 전문직이라고 했지. 그래도 용돈 많이 받는 건 부럽지." 참나, 하면서 웃고 맙니다. 부끄러운 딸이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써야겠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날 잘 가르친 덕에 어디 가서 부모 칭찬은 들었지 욕 먹일 짓은 절대 안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엄마는 배부르다고 연신 말하며 내가 사준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식당을 나서는 길에 엄마 손을 꼭 잡았습니다. 평소에는 간지럽다며 거부하는 스킨십을 감행합니다. 올해는 꼭 가족 여행을 다녀오자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