삘간머리 앤은 왜 갖지않아도 행복했을까
이 글은
'고전으로 살아내다' 라는
연재의 세 번째 기록이다.
고전을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고전을 읽은 뒤,
내 안에 남은 감정을 기록하려고 한다.
어릴때 우리집은 아빠가 사업을 하신 이유로 유복한 편에 속했다.
지방에서 내려온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는 까닭에 부모님의 절약이 과한 편이었고,
간신히 학용품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용돈만이 주어져 툴툴댔던 기억이다.
그런 이유로 주변 친구들이 아빠가 외국 출장 다녀오면서 사왔다며 보여주는,
미국산 인형, 가방, 샤프 등 진귀한 물건들은 늘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멋진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은 보면 질투가 나다 못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아니면 이후에도 공부를 잘하거나 예쁜 물건을 가진 친구들..
그리고 나보다 하나라도 더 가진듯한 사람들에게 과한 질투와 심술 부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유(물건)에 대한 질투는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던것 같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이 모아지고, 한참후에 공부에 대한 열의가 돋아나면서
그런 소유욕들은 서서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인들이 보낸 선물, 친구가 준 생일 선물들은 쉽게 살 수 없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팽개쳐져 잊혀지기도,
유통기한이 지나 결국 버려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 마음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약 12년 전, 독서지도사를 공부 중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원본)"을 다시 읽으며,
나는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가진게 많지 않았던 앤은, 친구 다이애나 베리의 손님방을 구경하며 이렇게 말한다.
“벨벳 카펫이라니,”
앤이 감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크 커튼까지 있잖아! 이런 것들을 늘 꿈꿔왔어, 다이애나.
그런데 이렇게 다 갖춰진 방 안에 있으니,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아.
이 방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있고, 모두 화려해서 상상할 여지가 없거든.
하지만 우리가 가난할 때는 한 가지 위안이 있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이 문장을 보며 생각했다.
진귀한 물건을 소유하기보다는 상상할 때
더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가졌을 때는 이미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이미 소유했기에 애쓸 필요가 없고,
당연하고 무가치 하다는 것.
가진게 많은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이미 자신이 가진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모르고,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해 아둥바둥 하면서
그 무언가의 실체도 정확히 모른채 소유하기 위해
또 달린다.
어쩌면 현대인의 우울증이 그토록 많아지는건,
그 소유를 위한 노력과 집착들이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서야
허탈감, 실망, 후회로 밀려오는 까닭이 아닐까?
인간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초고령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빨간머리 앤'의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알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적, 외적인 건강을 유지하며 편안해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다음 글에서는 또 다른 고전(이방인)이 던진
질문들을 따라 가보려 한다.
고전은 과거에 멈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정은세 작가와 함께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삶의 무늬를 정돈하는 깊은 사유의 여정을 이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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