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직했던 내가, 조르바의 거짓말에 무너진 이유

차가운 진실보다 뜨거운 거짓이 인간적일 때

by 정은세

이 글은

'고전으로 살아내다' 라는

연재의 여섯 번째 기록이다.


고전을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고전을 읽은 뒤,

내 안에 남은 감정을 기록하려고 한다.




나는 태생부터 거짓말을 혐오하는 아이였다.

물론, "정직이 우리 집 가훈이다"라고 말한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 무엇보다 거짓말 하기를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외출하며 극구 아빠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면,

"엄마가 아빠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라고 그대로 전해 집안의 분란을 만들었다.

또 체벌을 받을 때 "잘했냐, 잘못했냐? 다시 그럴 거냐?"를 물어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대답을 보류하고 벌을 자처했던 것 같다.


그러한 성정 때문에 나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늘 힘겨워했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특이하다"거나 "모가 났다"는 반응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여러 면에서 나와 정반대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한탕주의를 노리며, 여자들에게 추근거리는 조르바가 너무 싫었다. 내가 평생을 정직을 지키며 올곧게 살려고 노력했다면,

조르바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주인공의 돈을 탕진하기도 하며 순간순간의 일탈을 즐겼다.




조르바는 오르탕스 부인(부불리나)이라는 퇴물 카바레 가수의 집에 기거하며,

그녀의 지나간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한때 제독의 여인이자 사랑받던 젊은 시절으로 되돌려, 짧은 기간이나마 그녀를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둘만의 성대한 결혼을 위해 값비싼 물건을 준비한다는 말 역시 모두 거짓이었지만,

병색이 짙어 죽음을 앞둔 그녀에게는 큰 위안이 됐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부불리나와 사귀었지만, 사실 조르바가 사모하고 사랑했던 건, 미모의 젊은 과수댁이었다.

나이가 많고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주변을 배회하면서라도 주인공과 짝을 만들어주는 등

외로운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주고 싶어 했다.


과수댁이 그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미움을 받아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조르바는 그 누구보다 용감했다.

저항하다 상처를 입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한 그의 모습은 처절했다.




"두목! 이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같이 불의, 불의, 불의입니다!

나는 이놈의 세상에 끼지 않겠어요. 암, 나 조르바, 벌레 같은 놈,

굼벵이 같은 놈이지만 어림없고 말고!"



"오, 내 나이 스물이고 이 땅의 인류는 깡그리 절멸하고

저 여자와 나만 남아 저 여자에게 아이들을 낳게 해주었으면!

아니, 그건 아이들이 아니라, 진정한 신들이겠지...."



조르바를 보며 느꼈다.

우리가 편견을 갖고 막돼먹어 보인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도

그들만의 '선'이 존재하고,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조르바의 절규가 더 구슬프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글에서는 청자의 고결함을 닮은, ' 반 고흐'의 삶을 경유하여,

그가 나의 일상에 던진 질문들을 따라가 보려 한다.



고전은 과거에 멈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정은세 작가와 함께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삶의 무늬를 정돈하는 깊은 사유의 여정을 이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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