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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Apr 18. 2018

1화 밤 손님, 낮 손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 해치를 직접 열고 정거장으로 들어왔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해치는 지금으로서는 매우 구식인 반자동이지만 적어도 하루치 근접거리의 비행물체는 레이더에 잡히기 마련인데 잡히지 않았다. 즉, 방금 들어온 사람은 불청객이다. 골치 아픈 손님이다. 손으로 열고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들어온 이의 능력을 가늠하면 그는 직접 해치를 열고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도 어느 정도 예감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일이다. 또한 귀찮은 일이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정거장 안을 훑어보았다. 역시나였다. 테슬라인이었다. 까만 로브 정장을 걸친 남자는 마치 허름한 동네 주점에라도 들른 듯한 심드렁한 표정으로 로비에 서 있었다. 예약도 하지 않고 온 이유가 있었다.  

 

“또 불법감청인가요? 여긴 이제 정치 무뢰배는 안 받아요.”

장기 숙박하던 우주 난민 한 명이 알고 보니 스파이여서 인터폴이 난리를 치고 간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정말 스파이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인상에도 잘 안 남는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옷도 세 벌쯤 이틀 간격으로만 바꿔 입고 다니는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신원확인을 자동 외피 측정부터 감마선 측정까지 3중에 걸쳐하는데도 무슨 수로 일개 우주정거장 체류자가 스파이를 알아내겠는가. 남자가 말했다.

“아니요, 이번엔 과세 위반입니다.”

남자는 예의 그 테슬라 시계에서 판을 꺼내 숙박시설로 분류되는 이 정거장에서 과세항목을 비과세로 결제한 목록을 뽑아서 주었다.  

“2143년 4월 17일, 이 건은 빼주셔야 해요. 교육목적이면 비과세 아닙니까? 지구 양반들이 K관을 하루 종일 잡아 놓고 집체 교육을 했다고요. 뭔 놈의 용서기관인지 뭔지.”

“용서기관 사람들이 왔습니까?”

“아, 예. 그 있잖습니까. 세계통일부였다가 해체되었다가 다시 바뀐 명칭이 용서라나 뭐라나. 용서를 왜 지들이 하는지…”

남자는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해당 날짜의 숙박인 목록을 확인하고는 판을 내렸다. 테슬라 시계는 앙증맞게도 그의 손목에서 뿅-하고 사라졌다. 사라지고 뽕-하고 나타나는 건 이 치들의 전문이다. 이어서 남자는 시설을 점검한다는 명분으로 우주정거장 안을 샅샅이 뒤졌다. 화장실까지 테슬라의 개발력 마크와 감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2100년대에 들어서는 지구뿐만 아니라 테슬라 행성 3개를 비롯해 숙박시설을 떠도는 난민까지 관리와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도 우주에 비하면 모래알 하나 되지 않는 공간 속에서 무수한 모래알로 복닥이는데도 모래알 하나 테슬라 체제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감시와 감청은 그냥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남자는 인사 한마디 없이 수치를 송부하고 또 마음대로 해치를 열고 나갔다. 우주선까지 새까맸다. 곧 밤처럼 우주 속에서 지워졌다. 시간을 보니 34시였다. 당장 오늘은 예약 건도 없고 아무리 빨리 와도 내일 22시까지 찾아올 근교의 비행 건도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다. 자연식으로 잠이나 좀 잘까 해서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옥탑방은 우주정거장의 초기 설계자인 할아버지가 만든 조형물이었다. 1970년대에 있었다는 집, 그 위의 지붕, 위에 세운 굴뚝을 연상하고 만든 조형물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뻥 뚫려 있었지만 내가 이 정거장을 맡고 나서는 굴뚝의 제일 위를 메우고 방탄 유리관을 반구형으로 씌워 1인용 공간을 만들었다. 내가 누우면 공간은 딱 지름이 되었고 위로는 별이 쏟아졌다. 천사 모양으로 휘저으면서 누웠다. 자연식으로 자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별의 위치는 여전히 그대로다. 나라는 인간이 천만번 죽고 살아도 이 곳에서 보는 별의 위치는 그대로일 것이다.

        

별이 머리 위에서 반짝거린다. 인사를 한다. 사라진 별은 아직은 하나도 없다. 눈이 감긴다. 조만간 꿈을 꾸었다. 역시 익숙한 꿈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 몰래 먼지가 자욱한 하늘 아래서 방독면을 쓰고 공놀이를 했다. 먼지투성이의 세상에서 물나무와 물풀은 실내에서만 났고 물도 실내에서 거대한 정화조 시스템으로 공급되고 조절되었다. 실외로 나오는 건 금기였다. 여전히 세상은 걸치고 있는 옷의 이음새 하나만 풀어져도 피부병으로 다음날 사망할 수 있을 만큼 독한 공기로 오염되어 있었다. 내 전전 세대, 그러니까 할아버지 세대에는 실외에서도 생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대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내부가 붕괴되고 외력에 저항할 수 없는 약한 나라부터 오염되기 시작했다. 공습으로 죽은 건 인간뿐만이 아니었다.

 

공놀이를 한참 동안 하고 있을 때 언제나 보는 그 사람이 나타났다. 남자는 주황색 우주복을 입고 유리관 같은 걸 쓰고 있었다. 태양의 힘은 여전히 강해서 주황색 먼지와 햇빛은 거대한 역광으로 그 사람을 비추었다. 어린 나는 그를 갸우뚱한 고개로 바라본다. 그는 몸을 숙여 땅에 손을 짚는다. 놀랍게도 장갑을 끼지 않았다. 땅은 메말라 헐떡이고 있었는데 그가 땅 아래로 뭔가를 뿌리니 땅이 까맣게 녹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면 녹는 것이 아니고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물인가? 그는 물로 젖어든 땅의 표본을 채취한다. 뭘 하려는 걸까? 나는 계속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먼지 속에서 공을 들고 서 있는 나를 그제야 본다. 그러고선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든다. 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아마 활짝 웃고 있을 것 같다. 방독면을 쓰고 있는 나나 유리관을 쓰고 있는 저 남자나… 그때 섬광 같은 게 스치면서 남자의 몸을 수직으로 가른다. 쓰러진다. 나도 쓰러진다. 죽은 걸까? 멀리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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