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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Apr 19. 2018

2화 아직도 구식인 것들

꿈에서 깼다. 그때 꿈에서 깼을 때는 북쪽 돔의 병원 침실이었다. 주황색 우주복의 남자는 어떻게 되었냐고? 나도 모른다. 다행히 그 사람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다든가 사지가 절단된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섬광 마취로 지방 인터폴에 연행된다든가 그런 풍경까지는 보지 못했다. 정찰선이 내게 마취총을 쏜 것은 분명하다. 하루종일 마비가 된채로 떠 먹여 주는 미음만 삼켰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사건으로 인해 부모님까지 일 년 동안 4급 감시대상이 되어야 했다.  

 

지구가 언제부터 나빠졌는지 잘 모르겠다. T역사서에 따르면 지구의 생물은 2050년대에 이르러 책 한 권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바닷물은 넘치고 땅은 좁아졌으며 메말라 갔다. 대기는 점점 뻥 뚫렸다. 그 하늘 아래로 몇 번의 전쟁이 일어났고 도시는 빠르게 사막화되어 갔다. 외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내력도 전혀 없는 사막의 아이들은 연일 하얗게 질린 얼굴로 피와 침을 뱉었다. 지구는 더 이상 희망의 땅이 아니었다. 모래 바람이 불고 도시의 구석구석 먼지가 쌓여 기계는 오작동 하기 일쑤였다. 덮을 필요가 있었다. 공기를 내부에서 순환하자, 차라리 땅을 안에서 새롭게 만들자, 다시 시작하자… 사람들은 죽어가면서도 미래를 열망했다. 개발! 개척! 이 땅보다는 나았으면, 이 땅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때 테슬라가 영웅처럼 등장했다. 테슬라는 각 도시의 실내를 설계했다. 외벽을 쌓았다. 큰 반원의 돔이 중앙에 세워지고 방사형으로 작은 반원의 위성의 돔이 차례로 세워졌다. 테슬라인은 따로 가장 거대하고 정교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곳은 실외에서도 뛰어놀 수 있을 만큼 낙원이라고 전해진다. 어쨌든 살아남은 사람은 개미굴 같은 돔으로 들어갔다. 몇몇 식물은 그 안에서도 자랐다. 실내의 모든 건 순환이었고 질서였다. 사람들은 테슬라라는 기업을 영웅으로 받드는 대신 질서의 일부가 되었다. 통제와 질서 속에서 자연은 철저히 계산되었고 오차 없이 생명을 연장시켰다.  

 

이런 이야기는 도서관 시스템의 40만 권 정도 되는 지구 역사물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일단 나는 2100년대에 태어났기에 어떻게 지구가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구는 사막이었다. 정거장 동남쪽 테라스에서 보이는 지구는 푸르고 하얗고 까맣고 땅의 모습도 갈색으로 드러나는 등 아직 다채로운 색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말이다. 대기도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안의 삶이 끔찍할 뿐.  


광선에 몸이 갈라졌을 남자는 아마도 ‘자생론’ 신봉자였을 것이다. 조금 더 자라서 T중간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음모론으로 자생론이 교과서에 실렸다. 자생론은 지구가 그토록 고초를 겪었음에도 나름의 자생을 하고 있으며 그 움직임을 포착하여 따른다면 적어도 2020년 정도의 지구환경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이비 종교와 같은 믿음으로 만들어진 학설이었다. 자생론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테슬라를 적대시했고 테슬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실외 시위를 벌이다가 사망하기 일쑤였다. 테슬라는 이들의 논리를 온 미디어를 통해 반박을 하며 “지구는 끊임없이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테슬라의 말을 믿었다. 테슬라는 적어도 먹고살게는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도 나 같은 2100년대생이나 일개 자영업자는 관심도 없다. 지구의 돔, 우주선, 비행선, 정거장, 지구의 상공을 떠도는 수십만 개의 둥근 공의 가옥과 관공시설, 그리고 아예 행성 전체를 인공의 도시로 설계한 테슬라의 제국에서 나 같은 변두리 비테슬라인은 60년 정도만 뿐이다. 백 년 전 지구 시간은 하루에 24시간이었으니 그 시절로 계산하면 백이십 살이겠지만 말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역사는 지독하고 느리게 흐른다. 정말 중요한 기술의 역사는 눈에 보이는 것만큼 빨리 발전하지 않는다. 왜 이런 철학적인 말을 왜 하냐고?


이 우주정거장, 이름은 J-0110이라고 하는 정거장의 똥통 때문에 그런다. 아직 이 시대는 구식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아마 백 년 전쯤에도 비슷했을 것이다. 지금도 우주를 떠도는 수많은 비행선과 정거장과 가옥들의 화장실의 대부분은 여전히 자체 정화시스템이 아니라 똥을 퍼 나르는 똥-셔틀에 의해 테슬라 메탄 구에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메탄 구는 지름이 1,780km 정도 되는 안에가 똥밖에 안 들은 금속 구체이다. 똥이 들어갈 때만 열리고 안에 있는 똥은 거대한 플라스틱 포장재에 덮여 눈금선을 따라 올라간다. 중세시대의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딱 그런 용도로 아직도 썩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덮는 용도로 말이다. 이 역시 테슬라의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지구 위에 떠 있는 배설물까지 처리하려면 골치가 아프다는 논리로 만들어진 이 원형의 금속체가 웃기게도 이제는 수천 개에 달하며 소행성계와 같이 무리를 지어 태양을 공전한다는 게 믿어지는가? 아마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똥 행성 수천 개가 아름답게 태양을 돌다니… 그럼 가스는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가스는 가스대로 호스로 빨아들인다. 이건 따로 국가에서 관리한다. 비행선이 추진할 때의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 가스를 배합해 원료로 다시 되판다. 웃기는 일이다. 내 몸에서 나온 똥을 다시 팔아? 아무튼 이 시대는 여전히 구식인 게 많다. 미래 사람들이 보면 고대의 우스운 문명으로 여길까?


우주 위에 떠 있는 건 이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안녕하세요? 여기 4구역 J-0110입니다. 음… 푸러 오세요. 5톤은 되는 것 같아요.”

“네, 10분 뒤에 도착합니다. 5톤 하고도 13.5kg이네요. 10 뉴욕입니다.”

“10 뉴욕이라고요? 저번엔 5톤에 9 뉴욕이었던 것 같은데…”

“한 달 전, 2143년 3월 23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때 10 뉴욕 15시베리아 내셨어요.”

“아, 그런가요? 음. 그렇다면… 일단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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