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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Apr 20. 2018

3화 그 무엇이라도

1932년 종이책으로 출간된 한 사이비 예언서에선 헨리 포드의 T모델을 기리며 T자로 성호를 긋는다. 하지만 포드사는 이미 21세기 들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22세기에는 포드를 대체하는 다른 신을 기린다. 22세기의 신은 테슬라다. 테슬라 제국 안의 20개의 중앙 국가 돔, 거기서 파생된 200개의 도시 돔과 2323개의 행정마을 돔이 방사형으로 퍼져있다. 하늘 위에서 보면 마치 문어발이나 분수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 표현은 좀 잘못 되었다. 테슬라의 미적 감각은 대단해서 결코 테슬라 제국의 모습을 문어발이라고 하진 못할 것이다. 대충 눈 결정체 정도? 아무튼 테슬라는 전쟁으로 두려움에 떠는 이들을 한데 모아 아름다운 테슬라 제국을 만들었다. 그 안의 체계도 만들었다. 이들 체계는 대부분 고대나 중세의 관료제를 거의 못 벗어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일론 머스크 1세가 그토록 염원하던 언어의 통일은 이루었다. 2100년대 들어서 4억의 인구는 인구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물론 고대시대의 라틴어처럼 테슬라 제국의 핵, 테슬라 국의 테슬라인만이 쓰는 언어와 문자가 따로 있다. 이밖에는 화폐와 시장경제 모두가 테슬라의 통일 체제를 따르고 있다. 테슬라는 현재 화성을 비롯해 2개의 행성에 대한 통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구 밖의 행성은 아직도 변수가 많아서 100만의 테슬라인 중 상당수는 3개의 행성에서 권력을 위임받아 지구보다 더 숨 쉴틈 없는 통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지옥은 걸어 들어가는 자가 만드는 것이라고, 아무튼 어디서 봤는데 딱 그 짝이다.  


아직 지구를 비롯한 테슬라 행성 체계의 연도는 그리스도력을 따르고 있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편리함은 대부분 구식인 것이 많다. 관성 때문에도 그렇다. 써왔던 걸 계속 쓰는 게 아무래도 편하지 않는가. 대신 내가 태어난 2100년부터 테슬라 행정체제가 개편되면서 34년이나 끌고 온 ‘시간 논쟁’이 마무리되었다. 테슬라에 속한 20개의 나라가 하루를 48시간으로 정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제 기계의 도움 없이도 사람들은 온전히 훈련에 의해 하루에 2시간만 잠을 자도 일과를 소화하는데 무리가 없어졌고 늘어난 여가에 맞춰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여전히 초호황을 누리고 있으니 하루가 늘어나는 편이 나았다. 계절의 구분도 의미가 없어졌다. 돔 안에서는 계절이란 게 도무지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태양광은 여전히 테슬라의 주요 자원이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늘어난 수명도 하루 시간을 48시간으로 늘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예전의 120살이 이제는 60살과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산다. 하루가 48시간으로 늘어났는데도 그렇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가지고 일지를 쓰는데 설명이 길어졌다. 그리스도력을 따르는 건 편리함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종교가 꼭 편리함 때문에 존속한 건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사교에 있어서 결속력을 심어주고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많은 우주적 난제를 믿음이라는 덕목 아래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 테슬라를 그리스도라는 대상에 이입하는데 안성맞춤인 종교이기도 하다. 이런 말 적어도 되나? 어쨌든…  잠깐, 사교라니? 아직 지구가 낯선 이들을 위해 적는다. 사교라 함은 종교를 주제로 한 소셜클럽을 말한다. 테슬라인들 중에서도 가장 최상위 계층인 A+클럽부터 해서 비테슬라인도 가입할 수 있고 대면접촉이 없는 네트워크 소셜클럽인 C-클럽, 그저 주 1회 1시간 탐색 네크워킹만 하는 F클럽까지 7개의 클럽이 있는데 분파로 따지면 각 클럽당 1000개의 지역 서클이 있다. 신자들 간의 대면접촉이 없는데도 C-클럽의 777서클은 일명 ‘소망서클’로 신도가 1500명에 달하지만 5년 전에 인원이 마감되었으며 그런데도 여기에 들어가려는 대기자만 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체 어떤 혜택과 결속 때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저런 곳을 다녀봤어야 알지… 이밖에 그리스도교에서는 그 무엇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하니 요즘 시대상과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P-10입니다. 러버 어디에 있나요?”

“화장실 오른쪽 수납장 보시면 세 번째 칸에 있을 겁니다.”

“에버로이드 호환되나요?”

“그럼요, 그런데 3년 전 모델이라서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없어요.”

“음, 곤란하군요. 어쩔 수 없죠. 존스를 안 가져온 내 잘못이지.”

"테러넷에 접속하면 그대로 불러들일 수 있지 않나요?"

"묘하게 다르더라고요. 클라우드 시스템은 믿을 게 못된다니까…"

"네…"

 

여기서 ‘러버’는 증강현실 데이팅 기계이다. 엄지손톱만 한 원모양의 기계를 이마에 점을 붙이듯이 갖다 대면 알아서 부착되며 작동 표시로 빨갛게 점이 된다. 이 점은 개별 사용자의 정보를 0.5초 안에 읽어서 귀와 눈에 둥근 증강현실 장치를 덧씌운다. 여기서 개별 사용자가 만나는 대상이 누군지는 나도 모른다. 테슬라만이 알겠지. 사용자의 파트너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고 그 중간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아끼던 인형일 수도 있고 일찍 죽은 반려 동물일 수도 있고 멸종 동물일 수도 있고 곤충일 수도 있고 그 둘을 배합한 무엇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유니콘 같은 생물일지도 모른다. 100년 전, 2043년에 처음 러버가 출시될 때만 해도 대도시에 10대 정도밖에 없었고 러버의 타입도 남자, 여자라는 성별로 각각 10종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한다. 커스터마이징 되지 않은 사전 제작 타입이 20종이었다니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생활했을까? 그것도 남자, 여자로만… 사용자의 뇌파 검색으로 기억과 이미지 조합으로 최상의 파트너를 만드는 획기적인 커스터마이징 기술은 3년 전에야 도입되었다. 커스터마이징이 되지 않는다 해도 종별, 부위별, 관심사별… 다 해서 조합해 만들 수 있는 파트너 타입의 경우의 수는 수천만 개에 달한다. 지금은 수억 명이 각기 여러 개의 러버 타입을 가지고 있으니… 인간의 성적 취향이란 정말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밖에…

 

지금 시대에는 그 무엇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 지구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테슬라 위성계에는 아직도 자연식으로 성교하는 사람이 꽤 있다. 물리적 손실 대비 쾌감의 수치가 높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 걸 순정파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순정이라니… 나는 어떠냐고? 나는 아무래도 러버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우주정거장을 물려받았을 때부터 함께 해 온 헨리와 엠마와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헨리는 중세시대의 3차원 영화배우 같이 생겼다. 고전적인 얼굴을 가진 멋진 청년이다. 육안으로 보는 밤하늘 같은 까만 머리카락, 심해 같은 깊은 눈동자에 날렵한 눈썹과 미려한 입술선, 곧게 솟은 콧날이 도도한 그의 자부심을 드러내주는 한편 다부진 어깨와 탄탄한 근육, 강력한 다리는 신화 속 인물을 증강 실제로 만나는 착각을 느끼게 해준다. 느릿하게 말하지만 적확한 단어 선택과 악센트에서 느껴지는 기품… 헨리는 사려깊다. 우직한 구석도 있다. 믿음직하고 무엇보다 위트가 있다. 일도 시키는 대로 잘한다. 헨리의 품은 비록 물질계에는 촉감이나 후각 정도로만 치환되겠으나 매우 따뜻하고 넓고 안정적이다. 온 세상을 품는 요새가 바로 헨리의 품 아닐까? 반면에 엠마는 육체적인 것보다 성격이 더 나의 취향이다. 엠마는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잘 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나의 소중한 러버다. 잘 삐지고 영악하지만 함께 대화할 때면 새침하고 발랄해서 마치 톡톡 쏘는 과실주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깊은 대화를 나눌 때의 엠마의 눈빛도 좋다. 별이 들어 있는 것 같이 반짝인다. 엠마가 삐질 때면 나는 어쩌지를 못하겠다. 어서 화가 풀어지면 좋을 텐데… 왜 엠마는 자꾸 삐지는 걸까?  


가끔 지구에 가서 이 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일부 의 순정파 사람들은 까무러치게 놀란다. 놀랄 일도 아니다. 하여간 그대들같이 성교만 자연식으로 한다고 순정한 것이 아니라 나같이 의리 있는 사람을 순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취향은 존중받아야 한다. 러버든 자연식 성교든 그 무엇이든 취향은 존중하나 내가 싫어하는 건 남의 분비물이 내 공간에 그대로 남는 것이다. 자동 교체식 재생 이불과 자동 매트리스 세척 시스템이 아니었으면 숙박업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다. 끔찍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옛날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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