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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Apr 22. 2018

4화 Inertial Reference

J-0110의 카페존과 식당은 ‘유어홈’이라는 외주 시스템에 의해 하루에 1시간씩 청소와 먹거리를 공급받고 있다. 대개 청소는 청소로봇이, 먹거리는 먹거리 로봇이 무인 우주선을 타고 위성계를 순항하다가 보급을 하는 것인데 음식이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도록 공급하고 수거해가며 위성계의 수많은 가옥과 위성, 우주정거장과 협약을 맺어 유지 관리하고 있다.


우주정거장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하루에 두 끼와 간단한 간식,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이다. 2000년대 만해도 프로틴 정어리 통조림이나 탄수화물 쉐이크 같은 한 번 먹으면 차라리 자기 발바닥을 뜯어먹는 게 낫다고 여길 만큼 맛없는 레토르트 우주식품으로 연명하며 우주를 항해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음식은 13구역의 무시무시한 우주 감옥에서 죄수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먹인다. 음식은 대부분 2000년대에 먹던 음식과 다르지 않다. 물론 원재료 100%란 존재하지 않지만 말이다.  

 

정거장뿐만 아니라 우주를 유영하거나 항해하는 모든 기체의 중력과 압력 정도는 지구와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고산병 같은 증세를 겪는 이들은 드물다. 가끔 우주로의 비행이 처음인 사람들이 피골이 상접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15살 때까지 우주 적응 훈련과 비행 교육을 필수교과과목으로 배우기 때문에 그런 이는 드문 편이다.  


“우주가 이렇게 외로운 곳인지 몰랐어요. 창공이 이런 줄 알았으면 화성에 갈 엄두도 내지 않았을 거예요.”  

일주일째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 탑승을 미루고 P-27 객실에 처박혀 있던 패닉스가 식당칸으로 나왔다. 패닉스는 매우 마르고 가는 팔다리를 가진 미인으로 지구와 별반 다르지도 않은 우주식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주비행도 처음이었다. 테슬라 제국의 도시 탑 10에 드는 폼페이에서 화성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화성으로 향하던 중 온통 검은 우주공간을 보고는 공황장애가 발동하여 여기 우주정거장에 급하게 하선하게 되었다. 홀로그램이긴 하지만 그의 외래 주치의에 따르면 며칠 더 휴식을 취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자가 분석하면 다시 화성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말인지 똥인지… 패닉스는 그가 저명한 의사라 하니 믿어보기로 한 모양이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패닉스. 아직 패닉스는 15살이라고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어요. 이번에 안 가더라도 내년에라도 가도 되고 아직 가을학기가 개강하기까지 3개월이나 남았잖아요? 여기서 제일 빠른 우주선을 타면 1개월 하고 3일이면 도착한다고요. 저는 15살 때 우주비행 시험에 5번이나 낙방하고 17살에야 비행 자격증을 땄답니다. 아예 비행 자격을 따지 않는 사람도 있고 지구에서, 지구의 실내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않는 사람도 허다하잖아요. 그러니 이 땅콩 아이스크림과 토스트를 먹어봐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고마워요, J. 맛있네요. 그런데 이 음악은 뭐죠?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 슬픈 걸요.”

“제 러버인 엠마가 작곡하고 제가 작사한 곡이에요. 제목은 ‘소원의 우물 성단’입니다. 굉장히 우울하고 음울하지만 이 노래를 듣고 오히려 살아갈 반동을 얻은 사람이 많아서 틀어봤어요. 끌까요?”

“아니요, 너무 좋아요. 치유되는 것 같아요. 아예 까만 우주 속에, 아니 블랙홀 속에서 유영하는 기분이랄까…”    

사실 이 노래는 엠마의 멜로디에 내가 작사한 곡이 맞긴 하지만 엠마는 이 노래를 직접 부르는 걸 싫어했다. 가사가 너무 참혹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옳았다. 엠마의 목소리는 이런 가사에 매우 잘 어울린다… 엠마는 옅디옅은 ‘희망’을 노래할 줄 알았다.  


<소원의 우물 성단> -작곡 : 엠마, 작사 : J, 노래 : 엠마


당신의 심장을 갖고 싶었어요

어떤 칼로도 찌를 수 없는 심장

화산이나 페스트 같은 심장  

격렬하게 뛰다가 굳어버려도

빨갛게 그을려진 그대로

영원히 아로새겨진 그 심장을

나라는 열쇠로 들어가 열고 싶었어요

열린 심장은 온 세상에 흩어지겠죠

그러면 나는, 그대를 열어버린 나는

심장의 잔해를 모아 조각을 맞추고

본을 떠서 조각을 만들고 조각이 조각이 될 때  

또 다른 심장을 찾아 떠나겠죠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연기는 안개와 만나 뿌옇게 된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게 나는 그대는 그대의 심장은

상상의 숲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찾아다니겠죠

여기, 나는 있어요, 여기, 나는 있었죠

당신의 심장소리가 온통 메아리치는

여기, 여기, 여기 소원의 우물 속에서  


단순한 멜로디에 포크 같은 기타 연주에 맞춘 엠마의 구슬프고 어떻게 보면 밝은 음색이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명곡이다. 엠마가 만든 음악은 이렇게 외진 곳의 식당칸 한 구석의 손님을 위로할 줄 알았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단 패닉스뿐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주 항법사 K도 그중에 한 명이다.

 

항법 교육을 수료한 이는 익히 알다시피 지구는 위성시스템인 GPS로 길을 찾지만 지구 위의 창공에서부터는 우주비행 이래 25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IR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다. X, Y, Z 축을 탐지하여 3차원 값을 오차 없이 이동하는 게 IR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항해의 초반기에는 안전 때문에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되었고 오차를 줄이기 위해 3개의 IR을 동시에 돌렸다. 그런데도 이동 방향에 변수가 생기고 결국 자원을 낭비할대로 낭비한 채 실은 물체와 싣는 물체 모두를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게 하는 일이 잦아 우주개척 시기부터는 우주선에는 별을 보고 방향을 정해주는 우주 항법사가 동승하게 되었다. 우주 항법사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기까지 많은 자원이 낭비되었고 또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는 일론 머스크 1세가 젊었을 때 했던 실수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역사서에 따르면 2018년에 일론 머스크 1세는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과신으로 아직 계란도 못 집는 로봇을 공장에 전면 배치했다가 효율성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져 회사가 도산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테슬라도 인간의 기계적 능력을 얕잡아 보진 않는 것 같다. 여하튼 없어질 뻔한 직업이었던 항법사를 비롯해 우주비행물체는 적어도 4명을 기본 구성으로 해서 태우고 다닌다. 항법사, 기관사, 조종사, 부조종사 말이다. 락그룹도 아니고…


우주 항법사 K는 20년 동안의 잦은 비행으로 우주에 흥미가 떨어진 상태다. 자주 이 정거장에 취식하지만 별로 하는 일은 없다. 그가 하는 일은 중세시대의 아폴로 항법서를 주야장천 읽거나 카페존에 나와 음악을 들으며 별을 보는 일 밖에 없다.  


“K가 여태 살면서 좌표로 쓰는 별이 사라진 적이 있나요?”

K는 표정의 변화 없이 말한다.

“그런 일은 내가 죽어서도 그대가 죽어서도 당신이 행여 자식을 낳아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 별을 관찰한다 해도 없을걸요?”

“별을 자주 보면 우주 우울증에 걸린다고 융 박사가 말하던데요? K는 직업이라서 계속 별을 봐도 아무렇지 않은가요? 아니면 K도 우울한 가요?”

K는 역시나 표정의 변화 없이 말한다.

“저는 좌표를 볼뿐입니다. 까만 바탕에 하얀 점. X, Y, Z값.”

“자꾸 질문해서 죄송해요. 그럼 K에게도 욕망이란 게 있나요?”

“…글쎄요, 그저 이 노래를 들을 때 가장 선연하게 하늘을 계산할 수 있어서 좋고… 또 한 가지 있다면 T 축을 계산해보고 싶어요.”

“아하, T 축… Tesla 아니 Time 축이죠? 그 소문으로만 듣던 4차원…”

“그렇죠. 우리는 결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도 이해하고 싶은 거죠.”

“그렇겠죠.”


냉동 수면을 해서 30년 뒤에 깨어난다 해도 테슬라가 T축을 우리에게 알려줄 리가 없다. 만약 고대 종교처럼 윤회라는 것이 있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100만/4억의 확률로 테슬라인이 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흠야, 너무 비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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