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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May 04. 2018

5화 당연히 아직 파는 중이야

-Traffic is driving me nuts. Am going to build a tunnel boring machine and just start digging.

-I am actually going to do this

(2120년, <일론 머스크 1세의 트윗> 중에서)


오늘은 정거장의 P-3방과 T-3방을 청소했다. 인포데스크와 카페존, 식당칸 및 로비를 제외하고 숙박을 위한 방이 P타입과 T타입으로 각각 30개씩 있는 60개의 방과 미로와 같이 뻗은 복도를 청소하기 위해 한 달과 하루를 알차게 쪼개어 목록화 해 놓았기 때문이다. 청소하기 위해 리스트업 한 항목은 무려 289개나 된다. 오늘은 여기서 7개쯤 지웠다. 방 두 개와 복도의 창틀을 쓸고 닦고 의자의 때를 제거하는 일이었는데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평소 세심하게 주위를 기울여도 틈새의 먼지가 잔뜩이다. 먼지가 나올 곳이 없는데… 아마 지구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서 그런 듯하다. 틀, 돌출된 벽면과 모서리의 자국…  


혼자 청소하는 건 아니다. 테슬라 건강보험관리공단에 청결을 유지해야 할 항목의 리스트를 제출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기 때문에 상당한 리소스를 투자하고 있다. 청소로봇과 유어홈의 외주 청소원이 매주 카페존을 관리해주고 있고 숙박시설도 일주일에 한 번씩 리스트의 50개 정도를 체크할 수 있을 만큼 도움을 준다. 이들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리소스도 상당 부분 청소에 할애하고 있다. 전망이 좋은 앞 번호의 방일수록 되도록 내가 체크하고 지울 수 있도록 비워두었다. 어차피 나란 사람은 청소든 요리든 일지를 쓰는 것이든 노는 것보다 일을 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고, 48시간이나 되는 하루를 놀지 않고 버티기란 참 어려운데 일거리를 오히려 만드는 별종 중에 별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에 떨어져 사는 거겠지.


어떤 일을 할 때 비록 그것이 청소와 같이 하찮아 보이는 잡일이라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 손에 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명령을 내리는 사무국의 일인가? 이 질문을 지구 사람들에게 한다면 아마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일과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할 것이다. 아직 위선이 희망으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달리 해 보자. 내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인가? 참나… 옳은 일은 무엇인가? 예술작품이나 테슬라의 발명품에 견줄만한 상품을 만들어 내는 일만이 옳은 일인가? 그런 작품과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한다면 그건 옳은 일인가?  


지구 역사서에 따르면 파시즘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20세기 초 파시스트를 위해 작고 큰 일에 복무하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대다수가 평범하고 성실했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은 마치 케비넷 속에 들은 쥐같이 눈앞의 공간과 조건에만 반응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듯이 챗바퀴를 돈 것이 아닐까? 자신들이 하는 그 작고 미약한 업무의 영향력을 모른 채 말이다. 사방이 뚫려있는 벽. 벽은 여전히 많이 있다. 차단막이 되어주어 고마운 이 벽면이 나를 미궁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일지도… 그럼에도 세상은 열려있다. 그건 안다. 나는 누구를 위해 복무하고 있는가? 온 우주는 손을 벌리고 있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


아직도 누군가는 한 시간에 최저 시급을 받고 누군가는 한 시간에 천만 뉴욕을 받는다. 능력과 영향력의 차이일 것이다. 한 시간에 천만 뉴욕짜리는 사회에서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능력의 차이를 만드는 건 뭘까? 노력인가? 능력의 불평등도 결국 운인가? 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운에서든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되고 싶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라면 챗바퀴를 열심히 돌아야지. 어쩔 수 없는 것…


지구를 떠난 건 스무 살 때였다. 지금이 2143년이니 꼬박 10년이 되었다. 한동안 벗어나면, 지구의 지긋지긋한 사람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그랬다. 지금도 그럴 때도 있지만 아직 지구의 중력에 의지해 돌고 있는 신세라 그러한지 그저 조금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을 뿐이다. 가끔은 지구 위에서 지구를 동물원처럼 본다. 동물과 생물이 있는 작은 공. 지구의 벽은 아직도 두터워서 저 많은 물이 쏟아지지도 않는다. 신기할 따름이다.


‘숨고 싶다. 세상에서 증발해 버릴 수는 없을까?’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내가 태어나기 한 세기쯤 전에 일론 머스크 1세는 땅굴을 팠다. 달팽이보다 느린 채굴 속도로 시작해서 기어이 66층짜리 지하 세계를 만들기까지 3세대의 시간이 필요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매번 돼지우리처럼 보이는 기다란 직사각형의 운송수단이 있다. 지하철이라고 한다. 그런 바보 같은 운송수단이 버젓이 있는데도 굳이 200km로 달리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만들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위험과 조롱을 감수했는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죽기는 했다. 싱크홀을 건드리거나 혹은 싱크홀을 유발하여 수많은 인명 사고가 난 사실은 역사서의 주석 부분에 아주 조그맣게 실려 있다. 어쨌든 그는 왜 저렇게 땅을 파려고 했을까?… 단지 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지구를 뚫어서 이편에서 저편으로 반대편에서 반대편으로 순간 이동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땅이나 행성을 무슨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XX일지도 모른다. 당시 역사 기록을 보면 1세씨가 얼마나 허무맹랑해 보였을지 짐작이 간다.  


[지하 고속철 터널 굴착의 생산성 증가 방향]

1. 터널 지름을 반으로 줄여 생산성을 4배 증가시킨다.

2. 땅을 판 후에 굴착기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파면서 설치하여 생산성을 2배 증가시킨다.

3. 굴착기의 성능을 최대 한계까지 몰아붙여 생산성을 5배 증가시킨다.


생산성을 미끼로 해서 달팽이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테슬라의 지하도가 차근차근 완성되었다. 지하세계가 만들어지는 동안 전쟁이 났고 전쟁과 함께 일본이라는 나라도 침몰했다. 나 같이 역사서나 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를 것이다. 아시아라는 구역의 제일 동쪽에 섬의 형태로 있던 나라다. 일본은 생산성과 기술력이 뛰어난 나라였다고 한다. 무려 150년 전에 해저터널이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기억하기로 일본의 서남쪽 바다 인근에는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터널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른다. 마치 아틀란티스 같은 전설이 아닐까? 해저터널. 당대의 수많은 지역민과 관광객이 터널 속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하는데 이제 전설 속 우물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보면 지구 전체가 소원의 우물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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