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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Jun 15. 2019

9화 곤충 훈련

잠자리의 시각은 인간의 시각과 다르다. 곤충은 낱눈과 겉눈을 통해 물체를 모자이크의 점처럼 인식하는 반면 사람은 물체를 상으로 인식한다. 인간의 시각이 곤충과 같았다면 이 세상의 구조와 건축은 지금과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일단 저 문어발 같이 생긴 테슬라 제국의 건축 구조부터 달랐겠지.


가끔 곤충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머리가 복잡해질 때 내가 보는 관점과 시각이 곤충과 같아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물론 곤충의 시각이 인간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여간 인간이 보는 관점과 아주 많이 다른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으로 환원해서 인식하는 작업, 또는 1차원, 그도 아니면 어떤 차원으로도 인식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날려 버리는 작업을 가끔 한다. 사방에서 정보는 쏟아지고 뇌는 1일, 48시간 혹사당하지만 개체의 존속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많지가 않다. 인간의 뇌는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또 비자발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정보의 양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오히려 아주 좁은 식견으로 몇 개의 창만 뚫어 놓은 사람이 정신적으로는 건강한 경우가 많다. 무슨론자, 무슨주의자, 무슨무슨운동가 이런 사람들은 저 지구에서도 '소마 알약'을 주기적으로 섭취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의료 당국이 세운 정신 건강 등급에서 상위에 랭크된다. 확실한 프레임, 확실한 시각... 곤충의 시각처럼 단순화하면 정신은 편안해진다.


태어날 때부터 직업과 계층, 계급이 정해져 있었던 고대 시대(1000년대~1800년대)에는 정신병이 중세시대(1800년대~2000년대) 보다 흔치 않았다고 한다. 무수한 정보와 무수한 선택이 열려 있는 사회는 도리어 사람들에게 불안을 느끼게 했다.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 불확실한 상태. 그런 상태에서 자유롭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자유로부터 도피'를 하고 싶어 해서 중세시대의 정점에는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횡행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빗나간 예언서지만 <멋진 신세계>에 나온 것처럼 불안을 없애주는 '소마 알약'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또 홀로그램이지만 제국민 1인당 적어도 세 명의 주치의가 붙기 때문에 중세시대의 불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많은 부분 계층과 계급이 세분화되어 정해져 있다. 불확실한 것은 생각하지 않게 한다. 모든 돌발 상황은 예비되고 예정되어 있으며 발생해도 예방 가능한 불안 수준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내가 우주에 떠 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 중에 하나가 불안이다. 우주라고도 할 수 없는 지구의 표층 위로 겨우 떠 있는 이 우주정거장에서 불안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마는 오히려 아주 먼 우주 행성의 개척지에 있는 것도 아니요, 저 문어발 캡슐 안에서 숨죽여 사는 지구에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금방 암흑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창문 밖의 어둠에 빨려 들어가고 말 터이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불안이라는 감정은 내게 경고를 한다. 죽음 감각에 대한 경종, 일종의 바로미터이다.


나는 약을 먹지 않는다. 다만 뇌를 가끔 쉬게 한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30초 버티기, 다시 1분 버티기 식으로 정보의 양을 제한한다. 곤충 훈련이라고 불린다. 계획의 4할은 우연에 맡긴다. 8할은 실패에 익숙해진다. 잠을 잘 때는 일을 하지 않는다. 꿈을 기계식으로 또는 자연식으로 기술한다. 불안의 상태에 관해 일지로 기술한다.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다. 대안이 없다면 일단 한 시간이라도 유보한다. 명상할 때 우주의 점을 생각한다. 우주의 점과 점, 무수한 흰 점을 개미라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나라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결핍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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