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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Mar 12. 2019

8화 아바타 4D

엠마는 역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런 고로 추억의 방울방울이나 서술할까 한다.


지난번 일지 말미에 ‘유령 같은 것’을 쓰니 갑자기 17살 때 테슬라 4 제국 대학의 졸업시험으로 봤던 ‘아바타 4D’가 생각났다. 수십 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나 때만 해도 제국대학의 졸업시험은 가을학기에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 실내시험 : (1) 아바타 4D : 전쟁 대비력 시험, (2) 필기/구술 : 팍스 테슬라 역사 검정 시험

* 실외 시험 : (1) 항법 시험, (2) 7단 로켓 발사 시험, (3) 우주비행 탑승 종합시험

 

배점은 실내 30%, 실외 70%였다.


위의 제국 시험에서 ‘유령 같은 것’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빨간색으로 표시한 아바타 4D 시험이다. 별도의 기억력 증폭장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무의식 중에 살아나 기분을 더럽게 만든다. 이때는 무의식 제어 장치를 사용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기분조절 약을 1정 먹어야 한다.


내가 제국 시험을 보던 때는 지구인으로 하여금 지금보다 훨씬 화성에의 이주가 권장되었기 때문에 정신력이나 지식을 앉아서 또는 누워서 습득하고 이를 증명해야 하는 실내시험보다는 현장에서 항법을 계산하고 입력하고 실제 발사체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이해해서 발사하고, 우주비행을 할 수 있는 실외 능력이 더 중시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팍스 테슬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중요해서 제국대학에 진학한 지구인, 특히 3세계부터는 이런 통일역사 교육에 대한 학습은 필수였다. 당시 4D 시험은 이런 교육이 잘 이루어졌는지 지식과 실무 두 가지를 고루 검토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여겨졌다. 지금에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문제로 일부 세계에서는 이 방식의 시험을 폐기했지만 말이다.


아시다시피 팍스 테슬라는 팍스 아메리카나 이후에 도래한 시대이다. 거의 같다고 보면 되지만 공화정이 군주정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차이겠다. 어쨌든 내가 아바타 4D시험을 볼 때는 팍스 아메리카나 부분에서 출제되었고 나는 옛날 '피부 태움 기계' 같은 곳에 들어가서 기억력 증폭 장치 없이 베트남 전의 미국부대로 떨궈져야 했다. 상상이 가는가? 그 지독하게 생생한 4D말이다. 더군다나 미국부대나 미국 측의 시야로만 진행이 되는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에 (1) 베트남 부대에 포로가 되거나, (2) 베트남 편이 되면 자동 실격이 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었다. 시험은 늪지대를 비롯해 5개의 구간을 무사히 통과하고, 구간이 끝날 때마다 생으로 기억을 해서 내레이션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식이었다. 각 질문에 30초 안에 대답을 못하면 감점이 되었다. 지금 보면 왜 저런 고생을 했을까 싶을 텐데 그때는 정말 시험을 어렵게 봤다. 그만큼 팍스 아메리카나 체계에 대한 이입은 지구 식민지 개척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상상도 안 되는 이상하고 무거운 총을 들고 또 생긴 것도 이질적인 몇 백 년 전 사람들 뒤에 끼어서 좀비(라고 이야기하면 안되지만)처럼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베트남 사람을 한 명씩, 그것도 부위마다 다른 점수로 매겨지는 총살을 해야 했다. 베트남 군은 마치 고대시대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묘사한 4D 설계자의 저열한 의도에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도 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영영 지구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강박과 조부모 때부터 보통인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계급이 나의 저능으로 인해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섞여서 제법 진지하게 시험에 임했다. 조금이라도 내 눈앞에서 다른 색으로 움직이는 것들은 최대한 머리 부분에 맞춰서 쏴야만 했다. 30분씩 150분을 같이 이동하는 부대원은 당연히 물리적 실존인물이 아니었고 가상인물인데 하나같이 ‘조국의 미래’나 그때는 있지도 않은 ‘테슬라 애국가’를 부르며 나를 다독였다. 이 사람들은 당연히 튜링 테스트를 할 것도 없이 대화가 통화지 않았다. 딥 러닝 기능이 없는 A.I도 안 되는 NPC였다.


한편 5개의 지대를 하나씩 통과하면 또 지식검증이 시작된다. 갑자기 귓가에서 엄청난 데시벨로 질문 세례가 펼쳐진다.


-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위협했던 세 개의 국가를 대시오.

- 그중 한 국가가 결국 공산주의에 실패한 이유를 대시오.

- 생산성은 어떤 체제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나는지 대시오.


이런 질문이 한 구간마다 3개씩 쏟아지는데 가상이지만 부상을 입었다면 죽을 맛이다. 피가 철철 나고 있는 중에 매복해서 “... 쿠바!.... 베트남!.... 중... 국!!” 같은 걸 최대한 똑똑히 중얼거려야 한다. 내 생각에 구간마다 정리식의 구술시험을 도입한 건 혹여나 베트남 편으로 감화되는 수험자를 방지하기 위해서 인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생각하면 또 추억이다.


내가 의외로 고전했던 지대는 숲이었다. 지금은 박물관에만 전시되어 있는 ‘대나무’ 숲을 지나는데 그때는 합류한 부대원이 서너 명이 채 안 되었고 풀잎 같은 것으로 위장한 채 허리를 숙이고 발걸음 소리도 안 나게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십 분을 갔다. 아무것도 안 나왔다. 이게 얼마나 사람을 가슴 졸이게 하는지...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대나무 숲에 바람은 또 물결이 쳐서 소리를 낸다. 그런 소리 가운데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베트남 군을 대비해서 비록 가상이지만 턱 밑까지 땀을 흘리면서 긴장해야 되는 것이다. 1/3 정도 갔을까. 베트남 군이 시야에서 벗어난 뒤에서 기습했다. 그때 처음으로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칼 같은 걸로 맞아서 조금 베인 것 밖에는 없지만 너무 깜짝 놀라 아껴두던 기관총을 들고 부채꼴 모양으로 난사를 해 버렸다. 그렇게 사살한 군인이 십수 명이었는데 그중 머리를 맞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크게 감점되었다.


이후에 두 개의 지대를 거쳐 시험은 무사히 통과했다. 하지만 그 옛날 시대의 같은 말만 반복하는 부대원과 대화도 안 통하고 혼자 끼어 3시간가량을 가상으로 얻은 부상과 싸우며 사상검증을 받아야 했던 체험은 지금도 나를 가끔 괴롭힌다. 그때는 또 어찌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스스로를 위로하는 글까지 썼다. 아직도 생으로 기억하는 누추한 글.


먼지 숲의 소년


펄펄 먼지가 날릴 때

그가 떠나고 소년이 하나

동굴처럼 아늑하고

축축한 구덩이 안에

웅크리고 있었어요


펄펄 먼지가 날리는

대나무 언덕의 숲에서

동그랗게 웅크린 소년이

울고 있었어요


상자 속과 상자 안

상자는 동그랗게 네모나게


강이 얼지 않았다면

강이 깨지지 않았다면

부드러운 강의 흐름에 맞춰

저 멀리 띄워 보냈을 거예요


더 따뜻한 땅으로

더 안전한 강의 흐름을 따라

도착할 곳은 지구가 아니기를

지구가 아니라서 따뜻하기를

지구가 아니라서 안전하기를


기도밖에 할 수 없지만

기도라서 괜찮아요


아직 소년의 심장은

뜨겁게 뛰고 있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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