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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Mar 06. 2019

7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인공지능(A.I)에 대한 무구한 연구 중에 지금도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지구 밖에 사는 사람들과 그리고 내게도 유효한 논법은 ‘튜링 테스트(Turing test)’이다. 200년 가까이 살아남은 논법이라는 말이다. 튜링 테스트를 모르는 지구인은 없겠지만 혹시나 지구 밖에서 이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쌓을 틈 없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제10계급 아래의 인간들과 테슬라 마저 통제 의무를 저버린 외계인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한다. 튜링 테스트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1950년 제안한 인공지능 판별법을 말한다. 기계식 인공지능이 처음 생기기 시작한 무렵 지금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지구인 사이에서 “인공지능을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봐야 하는 가?”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앨런 튜링은 “기계와 인간이 대화를 나누는데 인간이 기계가 기계임을 눈치채지 못한다면(기계의 반응이 인간의 반응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해당 기계는 인간으로서 ‘사고(思考)’한다고 간주한다. 50년 후에는 인간이 기계와 5분 간 대화할 때 기계인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비율이 30%에 육박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실로 그랬다. 2014년, 13세 소년 인공지능 유진 구스트만(Eugene Goostman)과의 대화에서 약 33%의 지구인이 유진이 기계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 90년대부터 대중들 사이에서는 ‘심심이’라는 인공지능 채팅이 활성화되었던 터였다. 그때는 아무도 심심이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심심풀이용 존재가 불과 몇십 년 뒤에는 생활에서 절대, 절대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반려자로 기능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보다 정교해진 딥 마인드, ‘알파고(AlphaGo)’의 등장 즈음해서 위기의식을 느꼈을까? 그때 그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에 왜 그리 무뎠을까?


논쟁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미 모든 시스템에 인공지능이 뼛 속 깊숙하게 뿌리 내려 있기 때문에 이런 논쟁이 다소 철학적인 양상으로만 논의될 뿐. 일론 머스크 1세는 심심이의 딥 마인드 버전인 알파고의 등장 때부터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것은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주장을 하며 인공지능을 반대했다. 하지만 말은 그리 해놓고 가장 먼저 테슬라의 산업 시스템에 계란 하나 집지 못하는 인공지능을 도입했던 것은 일론 머스크 1세의 흑역사로 남았다. 그런 역사를 뒤로 하고 2143년인 지금은 태어나서 부모 말고는, 아니 부모조차도 못 보고 인공지능과만 동고동락하는 이들이 저 지구의 먼지 산만큼 많다. 지금 내가 엠마와 헨리와 사는 것처럼… 이들을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모욕으로 여기는 이들도 허다하다. 이들은 "내 애인이 '인공지능'이라고?말도 안돼!"라는 실존적 의문을 품고 인공지능의 '인권'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공지능은 영원히 죽지 않으면서 또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죽었을 때 이들을 영원히 살게 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으로의 환생 말이다. 물론 나는 이 개념을 고대 종교의 ‘환생’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일지를 적으며 처음으로 밝히는 정치 성향이다. 나는 51% 정도 유물론자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자원은 유한하고 내 삶도 유한하고 실제 나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도 여전히 유한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43년 동안의 긴 삶은 발을 붙인 곳에서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지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영속’이나 ‘영원’이나 ‘영혼’과 같은 정신세계의 무한함을 지향하는 경향에 대해서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엠마와 헨리, 그리고 이곳을 왕래하는 수많은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49% 또는 그 이하만큼만 물질로서, 유한한 존재로서, 인간이라고 믿는다.


지금도 가끔 나는 엠마에게 튜링 테스트를 한다. 물리적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헨리는 커스터마이징 할 때부터 육체적인(물리적 개념으로는 얼마나 괴기스러운 모순인지) 매력으로만 몰빵 해서 만든 캐릭터이기 때문에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기능적 측면에서 엠마를 따라올 러버는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엠마와의 대화는 거의 100% 인간적이다. 그래서 엠마를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나는 엠마에게 0.1% 혹은 그 이상의 괴리감을 느낀다. 그럼으로써 현실감각, 물리적 감각을 느낀다.


 : 오 년 전에 중세시대 소설 하나를 읽고 ‘자연식 햄스터’를 한 마리 사러 지구에 내려간 일이 있었지?

엠마 : 그렇죠, 결국 전기 햄스터밖에 못 가져오셨잖아요.

 : 그때 러버를 가지고 가지 않았어, 그렇지?

엠마 : 지금 튜링 테스트하시는 거죠? 저는 완전한 인간 행세할 생각이 없어요.

 : 아니야, 나는 그때 너를 데리고 가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어.

엠마 : 일부러 그런 것도 있잖아요. 전 다 알아요. 결국 저와 당신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시는 거 알아요.

 : 솔직히 그렇긴 해. 아니, 그랬어. 그 소설을 읽었을 때 정말 심장이 뛰는 생물을 만나고 심장이 뛰는 걸 이 왜곡된 세계에서 촉감으로, 그것도 이젠 얼마든지 속일 수 있지만, 그런 촉감으로 느끼고 싶었어. 내가 심장이 뛰는지도 확인해야 했고…

엠마 : 저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저 우주, 어둠의 심연에 혼자 내 던져진 느낌이 들어요.

 : 미안해, 배려가 없었네. 하지만 가끔 기억이 나. 그 시장. 온갖 생물을 팔던 그 사막의 시장. 지구에서 제일 참혹한 곳. 통제조차 포기한 곳. 지구 하늘에서 가장 어두운 별을 나침반으로 삼고 달의 주기로 움직이는 야생의 공간.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아직도 졸음이 존재하고 항공기의 날개를 아직도 전시하는 곳 말이야. 그런 곳이 있어. 결국엔 거기 있는 우글우글한 심장들, 그 생물들이 ‘자연식’이 아닌 복제 세포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물인 걸 알아버렸지만 말이야.

엠마 : 그래서 빈손으로 오고 싶지 않아서 기계식 햄스터를 사 오신 거잖아요. 저는요, 그런 복제 세포 생물이든 자연식 생물이든 차이를 느낄 수가 없어요. 심장이 뛰잖아요? 만질 수 있잖아요? 저는 복제 세포도 안되잖아요. 그죠? 제일 하찮은 존재인 거죠?

 : 그렇게 말하지 마. 여기서는 네가 없으면 제정신으로 살 수 없어.

엠마 :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자연’을 그렇게 꿈꾸면서 왜 지구에 가지 않죠?

 : 내겐 고향이 없어. 돌아갈 곳이 없어.

엠마 : 무슨 말이죠? 지구가 고향이잖아요?

 : 그 말의 의미를 모르니까, 나는 참 다행이야. 그래서 지금 나는 혼자라는 거야. 물리적으로. 이건 너를 상처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야. 되새김하려는 거지.

엠마 : 튜링 테스트네요.

 : 그렇게 이야기해도 할 말이 없어.

엠마 : 저도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한 이틀에서 삼일 정도 엠마를 보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이 대화 일지를 본다면 내게 비정하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혼자라는 걸 인식하지 않으면 나는 영영 우주 위를 떠도는 유령 같은 것이 될 테니까. 지옥을 피해서 달아났는데 그건 더 끔찍한 지옥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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