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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May 12. 2018

6화 깨어지지 않는 꿈

“방이 하나가 있어요. 굴뚝, 이라고 저 기둥 보이시죠? 거기 옆에 있는 방이에요. 그 방은 제가 죽을 때까지는 아무도 들어올 일이 없을 거예요. 청소만 하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해요. 죽은 방이에요. 그냥.”


K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자연식으로 자는 걸까? K의 옆에서 계속 떠들었다. 가수면실의 안락의자에 누운 K는 그저 존재 자체로 믿음을 주었다. K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자지 않는다 해도 K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K는 나만큼 생각이 많다. 내가 맡은 우주정거장의 연식이 10년이다. K는 10년을 꼬박 채웠다. 밤은 암흑 속에서 별빛만큼만 빛난다.  

 

“그런데 자꾸 꿈을 꿔요. 자연식으로 꾸는 꿈이요. 그 방에 사람이 들락날락해요. 온통 어지럽혀요. 카펫과 침대와 벽면이 모조리 뜯겨요. 정면의 거울도 깨지고 선반에는 깨진 파편이 나뒹굴어요. 그러면 저는 맨 손으로 그걸 긁어모으죠. 그러다가 베이죠. 피가 나죠. 그리고 깨어요.”


그러자 K가 무미건조하게 대답한다. 역시 자고 있지 않았다.

 

“그대 머릿속에 있는 것들, 그것이 무엇이라도 아무도 훔쳐갈 수 없을 거예요. 열쇠는 그대가 지니고 있잖아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 그대가 주인이에요. 그러니 걱정 말아요.”


밤은 암흑 속에서 별빛만큼만 빛난다. 열쇠는 물질이 아니다. 나를 감식하는 그 무엇. 나를 나이게 하는 그 무엇. K를 등지고 기계식으로 잠을 잤을 때 꿈을 또 꿨다. 메모리 저장이 가능한 꿈. 한 남자는 서류를 작성했다. 온통 이름을 적는 란에 마지막으로 나를 적으려 하다가 망설였다. 왜요? 나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 손을 꼭 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왜요? 남자는 내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 란은 비워둔 채였다. 남자는 내가 없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왜요? 저 아세요? 모르는 남자는 계속 울었다. 왜 울어요? 모르는 남자가 울면서 문으로 나갔다. 떠났다. 내 손에는 열쇠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물질이 아니었다. 눈앞에 빛의 도로가 펼쳐졌다. 도로를 따라가다가 어두운 굴을 하나 찾았다. 토끼굴인가? 굴은 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다행히 열쇠는 석재로 만든 문 한가운데 구멍에 꼭 맞았고 문은 세로로 갈라져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내가 주인인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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