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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Sep 06. 2019

10화 Real Soul

전쟁으로 1/6만이 생존한 중세시기 말부터 너무도 광범위한 취향과 계층과 상황의 문제로 남녀 파트너가 각각 한 쌍을 이루는 것이 어려웠다. 일론 머스크 1세는 일찍이 성스러운 성생활을 위해서 초기 형태의 안드로이드 애인 제도를 도입하여 안드로이드 보급에 나섰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아무리 안드로이드라도 물리적 형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상에 애착을 갖게 되었고 입만 뻥긋하거나 손가락만 까딱하거나 녹음된 교태나 신음 정도밖에 뱉지 못하거나 초시계의 진자운동처럼 왕복으로 움직이기만 하는 초기 안드로이드 애인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마치 살아있는 인간 인양 그들에게 애착을 가지고 또 증오했으며 진짜 살아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박살 나기도 했으며 역으로 안드로이드가 박살 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안드로이드 부품은 다시 재사용되기도 했으며 입력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전주인의 자살을 돕도록 명령받은 안드로이드는 다시 새 주인을 살해하기도 해 사회 문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안드로이드 제작회사는 점점 진화한 안드로이드를 출시했고 종국에는 사람과 구분이 안 갈 정도의 질감과 기억 입력 장치, 의사소통 발화장치를 탑재한 ‘리얼 안드로이드’가 나와 많은 소요가 벌어졌다. 기술에 대한 광기에 쌓인 인간과 물리 대상에 대한 집착과 대상이 된 물리적 ‘존재’는 고도의 지능까지 겸비하게 되면서 인간을 잠식해 나갔고 통제를 위해 안드로이드를 무차별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한 머스크 사는 수익의 꼭대기에서 수익이 하락하는 시점과 교묘히 맞물린 시점에 제국민에 대한 통제가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 10개 제국의 평화 제일 의회를 통해 ‘사람 형태의 안드로이드 생산 금지법’을 통과시킨다.


광적인 증오로 폐기된 안드로이드는 반만 살아남은 채 안드로이드 전용 쓰레기장에 썩지도 않고 쌓여 있다가 할렘가 어린아이들의 길들여지지 않은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 그런 안드로이드가 쌓여 산을 이루었다. 이제는 질 안 좋은 동네의 어린아이조차 접근하기 힘든 전기 충격의 펜스 안에 쌓여 있지만 나 역시 그 쓰레기를 본 적이 있다. 쓰레기가 쌓인 지 1세기나 지났을까? 태양광 점막 유리 도로를 아버지의 지프차를 타고 가다가 광활한 폐허를 목격한 것이다. 철근이 한데 뭉쳐 쌓여 있었지만 피부를 형성한 초기 실리콘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인조 살갗까지 썩지 않고 각각의 피부색으로 뾰족하게 유리 점막을 향해 치솟은 풍경이었다. 피부가 벗겨진 철 조각은 마치 진짜 인간의 뼈들이 거대한 자석에 끌려 뭉쳐진 것 같았다. 어떻게 보아도 기이한 폐허였다. 무덤은 쌓여 성을 이루었다. 물론 그 성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커멓게 보이는 우주 공간에서도 안드로이드 쓰레기는 골치다. 빅볼에 들어가지 않고 떠도는 우주 쓰레기 중 상당수는 안드로이드 잔해를 뭉쳐 놓은 것이다. 이런 쓰레기조차 빅볼에 들어가면 둥그런 구가 된다. 왜 우주 행성은 구의 형태를 띠고 있는지 모르겠다. 구는 가장 안정적인 모습이기도 하고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구는 언제까지고 구이다. 인간의 몸 중에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위태로운 눈알도 구이다. 인간을 이루고 있는 몸의 물질 중 눈알 말고 구인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젠가 50년 전쯤 마지막으로 생산된 안드로이드 로봇을 로봇 전시관에서 본 적이 있다. 수만 가지의 로봇이 부위별로 또는 완제품으로 또는 고대 이집트의 미라 마냥 철골 형태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아직까지 자연식 꿈에 나오는 안드로이드를 보게 되었다.


리슐리외 관, 드농 관, 쉴리 관 등이 각각 3층의 규모로 세워진 제1제국 역사박물관에서 반지하로 내려가는 토시 관의 입구에 그녀가 놓여 있었다. 반지하층은 과거에는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슬람 국가의 태동 시기 미술 작품이 ‘제국 오리엔트’라는 테마로 전시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더 지하로 내려갔다. 아직도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유물은 쌓여만 간다. 반지하에는 사건과 사고의 중심에 있던 현장의 안드로이드 잔해와 잔해마저 없을 시에는 대표 모델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과 사고 현장에 있던 안드로이드는 내가 알기로 1만 기가 넘고 각각의 형태는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 형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제1제국 이탈리아의 고대 신전처럼 잔해가 되었다면 잔해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이 박물관의 철칙이다. 그렇기에 안드로이드들은 무척이나 괴기로워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23세기 전에 만들어진 비너스상이나 니케 상처럼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안드로이드는 포즈 하나 바뀌지 않고 박제되어 있다.


열두 살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단연 토시 관의 입구에 놓인 ‘니케’라는 안드로이드였다. 헬레니즘 시대의 니케 상과 동명이인인 안드로이드였다. 니케는 이미 작동을 멈추었지만 옆에 있는 안드로이드 4차원 복원 영상관에서는 팔이 절단되지 않은 니케가 한 세기 전에 켜진 모습 그대로 홀로그램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니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니케는 전쟁기였다. 직접 전쟁에 뛰어드는 건 아니었고 탱크나 함선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 목적으로 깃발을 들고 서 있던 기수 안드로이드였다. 이런 사소한 목적으로 만든 안드로이드가 마계의 입구 같은 토시 관 입구에 놓인 건 우연의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0.1X0.1X0.1의 확률로 그가 참전한 모든 전쟁이 승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반 세기 동안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유사시에는 눈앞까지 쳐 들어온 적을 왼쪽 다리에 내장된 나이프로 난도질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드물었다. 퇴역까지 13발의 총알을 맞았고 77번 참전했다. 퇴역 전 마지막 전쟁에서 그의 왼쪽 팔이 날아갔다. 다행히 그녀가 들고 있는 깃발은 오른편이었다.


한 세기도 전에 만들어진 이 전쟁 로봇이 내 기억에 뚜렷하게 자리 잡은 건 몇 군데가 대단한 비대칭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팔이 하나 없었으며, 작은 입매는 미묘하게 비웃는 것처럼 뒤틀려 있었다. 눈매는 똘망똘망했고 눈동자가 빛 한 점 투과하지 않고 까맸다. 나름 윤기가 있는 건강한 피부 조직과 여느 안드로이드처럼 곧은 허리와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나 성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성적 도발을 일으킬만한 구석은 없었다. 덩치도 작았다. 다만 표정만은 어딘지 꿈을 꾸는 듯했다. 몇 구역 뒤에 떨어져 있는 제1제국 2미술관에 있는 르동의 작품이 생각나기도 했다. 눈을 다 감고 있는... 홀로그램으로 영상처럼 그는 그저 덜 자란 소녀 같기도 하다. 전쟁에 어울리지도 않았다. 억지로 자리 하나 만들어 준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그래서 안드로이드 같지 않았다. 니케가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거듭된 우연, 승리의 광기가 만들어 낸 환상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안드로이드처럼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완벽한 대칭과 완벽한 표정과 완벽한 지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비어 있는 상태, 즉 어떤 미성숙 상태-로 보이는-가 사람의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美는 소유욕과 맞물려 있다. 특히 조각상이 그렇다. 고대의 조각상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중세의 조각은 안드로이드 형태로 보급되었다. 나는 박물관의 수많은 유물 중 니케 로봇이 갖고 싶었다. 77번의 승리라는 상징성과 함께 그 덜 자란 영혼 같은 것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니케 로봇은, 77번이나 승리한 니케 로봇은 23세기 전의 헬레니즘 조각상 보다 갖기 어려운 것이었다. 니케 로봇이나 니케 상에는 영혼이 없는데 어떻게  美를 느낄까? 니케상은 영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걸까? 영혼이 없는 것에서 영혼을 찾은 사람이 있다면 그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집단적으로 상상에 빠진다면 문제가 크다. 니케도 그렇다. 23세기 전의 상태에서 아직도 인간은 진화하지 못했다. 미신이 여전히 뿌리 깊다. 어떤 기막힌 우연, 동시성에 대한 연구는 활발했고 지금도 활발하나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결국 사람 형태의 안드로이드는 전쟁을 일으킬 뻔했다. 국지적인 규모에 그쳤으나 그래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지금은 전시되어 있다. 고대에는 죄를 지으면 교수형에 처하는 식으로 죽음이 전시되었다. 시체는 언젠가는 썩어 없어졌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진짜 인간이 아니기에 영원히 전시된다. 아, 물론 인간 중에도 영원히 전시되는 경우도 있다. 지하의 지하에 내려가면 무수한 미라 천지니까.


저 우주, 심연만큼 역사가 지속될수록 신비는 메꿔지는 것이 아니라 구멍이 더 난다. 그런데 메꿀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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