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의 핵전쟁과 내란, 자원의 고갈과 환경 파괴로 지구에 산다는 것은 아무리 그곳이 돔 안이라 할지라도 특권 계층이 아닌 이상 참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지구는 일론 머스크 1세부터 3세까지 제왕적 권력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이라 계층과 계급에 따라 받는 권리도 극명하다. 어떤 거대한 권력이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공간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면 그 어찌 갑갑하지가 않을까?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잠을 자는 시간까지도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적으로 관리되고 보고되는 세상이다. 그나마 인공위성계는 그 영향력이 적지만 평생을 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만 돔 밖이 어떤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나오는 지구의 모습은 10년 정도 전의 모습이었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 여러 번의 핵전쟁으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분진이 날리는 공기와 낙폭의 현장 그대로 재건되지 않은 폐허, 썩은 강물은 색이 검었고 점액질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 주위에서 자라난 돌연변이 생물들은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개구리가 알이 아닌 새끼를 낳고 돌고래가 알을 낳는 일그러진 지구의 모습은 지옥과 다름이 없었다. 그 지옥에서 돔이라는 지상 낙원을 만든 것은 일론 머스크 덕택이다. 수많은 희생이 따랐다. 영상은 차례로 백여 년 전부터의 망가진 지구의 모습을 몽타주 기법으로 담아냈다. 영화의 결론은 하나였다.
“지구는 고칠 수 없다. 지구는 스스로 일어날 힘을 잃었다.”
이런 영화는 흔히 교훈 영화로 분류되어 4살 때부터 주기적인 시청이 권장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영화의 결론을 보고 사람들은 또다시 두 가지 결론을 내야 했다. 1) 화성과 타 행성계, 인공위성계와 소행성계로 이주하여 개척하거나, 2) 지구의 돔에 남아 다소 갑갑하지만 안락한 삶을 살거나. 따라서 지구인은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 칠흑 같은 어둠에 몸을 실어 불확실성의 세계로 떠나거나 지구에 남아 평생 돔 밖을 나가지 못하고 일론 머스크의 서슬 퍼런 법과 제도와 정책과 강령과 감시와 통제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가끔 나는 유년시절의 기억이 자연식 꿈에 나온다. 누군가가 유령처럼 등장하는 꿈. 돔 밖의 사람이다. 주황색 우주복을 입은 그 분진의 땅에서 무엇을 하던 걸까?
그런데 정말 지구는 고칠 수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