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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Dec 18. 2019

프라하 카를대교(Charles Bridge)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카네린의 미소와 나의 강아지

오후 느즈막히 찾아간 카를교. 카를교는 블타바 강 위에 세워진 중세시대 보행자 전용 다리이다. 오랜 문화유산과 자연이 어우러진, 블타바 강이 너무도 여유롭게 흐르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카를교로 향했다.

카를교 위에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그림도 그리고 작품도 팔고, 연주도 하면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3월의 프라하, 낮과 밤의 중턱에는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다리가 만드는 지평선 너머로 펼쳐지는 빨간 지붕들. 세계대전 때 민간인의 집이라는 걸 나타내기 위해 빨갛게 칠했다고 들었다. 중세의 도시는 21세기에도 계속 되고 있지만 오랜 식민 역사가 침잠해 있는 도시 프라하는 여행 내내 이렇게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한 정취를 느끼게 했다.

카를교 위에는 30개의 석상들이 있다. 이 석상들은 저마다의 성인을 기리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위의 얀 네포무츠키 성상이다. 바츨라프 4세의 왕비가 신부인 이 성인에게 고해성사를 했는데, 바츨라프 4세가 그 내용을 물어서 대답을 거부했더니 죽였다고 한다. 그 후에 블타바강 위에 얀 네포무츠키 시신이 떠오르면서 5개의 별이 떴다고 하여 그의 시신을 성당에 안치했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 바로 성 비투스 성당이다.

이후에 여기 카를교에 성상을 세워서 그를 기리고 있다. 위 성상 밑의 그림 조각을 어루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오른쪽의 그림을 어루만지면 아녀자의 행복이, 내가 만지고 있는 저 그림의 개를 어루만지면 자신이 키우고 있는 개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30개의 석상 중에 이 성상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관광객의 손을 많이 타서 반질반질 황금빛이 났다.

반려동물의 소원을 비는 사람이 전세계적으로 많은가 보다.

이외에도 다양한 성상과 동상이 있었다. 각자 빌고 싶은 소원대로, 관심있는 주제와 성인(聖人)에 따라 성상 앞에 머물렀다. 사람들의 소원과 소망으로 반질반질해진 성상들.

이때는 그저 나의 안녕만을 바라고 장난식으로 열한 살 된 나의 반려견 '루비' 의 건강을 빌었다. 수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깊게 반려동물과 루비에 대해 생각하고 잘 해줄 걸, 후회가 된다.



카네린의 미소, 나의 반려동물



첫번째 신혼여행을 다녀온지 5년 여 만에 친정집에서 키우던 루비가 죽었다. 루비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우리집에 온 강아지다. 태어난 지는 50일째였다. 슈나우저인 루비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분수 같은 긴 꼬리를 미용상의 이유로 실로 묶여 잘려진 작은 꼬리로 우리 집에 왔다. 손바닥만 하던 루비는 당시에는 2~3kg에 불과했다. 아직 어린 강아지라서 수의사의 말대로 50알씩 세어서 물에 불려서 강아지 사료를 주었다. 그걸 의사와 상의도 없이 반 년 동안이나 지속해서 말 못하는 짐승인 루비는 말라만 갔다. 나중에 예방접종을 맞추러 들렀을 때 왜 이리 말랐느냐는 말에 50알씩 세어서 불려 주었다고 하니 간호사가 기겁을 했다. 그 뒤에는 밥을 불려 주지도 세어서 주지도 않았다. 강아지가 커 가는 속도와 시간을 인간의 사는 속도와 시간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루비와는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처음에는 멀미도 하고 그랬지만 성견이 되고 한참 뒤에는 멀미를 하지 않았다. 항상 근교든 먼 거리든 아빠 차에 태우고 다녔다. 루비는 눈이 내리는 논두렁 길을 마음껏 달리다가 다시 돌아 오고 바다에도 함께 갔다. 강아지가 보는 바다는 어떤 풍경일까? 물이 아주 많은 땅 같을까? 파도를 피해 마구 도망다니던 루비가 생각이 난다. 루비는 산책을 매우 좋아했다. 주기적으로 산책을 다녔고 또 보채기도 했다. 바깥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강아지였다.


여름에는 더위를 많이 탔다. 한 번은 계속 토해서 동물 병원까지 10kg의 루비를 안고 하루에 서너 번씩 오갔다. 단순히 더위를 타는 것이라는 말만 들은 채 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루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 왔다. 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구토와 설사를 방지하는 약을 물에 타서 먹이고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하다가 더위에 지쳐 나도 잠들고 루비도 잠들었다. 시간이 흘러 루비는 가끔 감기에 걸렸다. 간호사 언니가 어린이가 먹는 단맛 나는 물약을 먹이면 된다고 해서 또 신기하다고 여기며 사람 먹는 감기약을 먹이기도 했다. 루비는 늘 우리집에서 아기였지만 사실 서너 살 이후에는 인간으로 치면 성견이어서 중성화 수술도 받았다. 마킹이 줄고 오줌에 냄새가 없어지고 짖는 행위가 줄었다. 중성화 수술을 받으면 강아지가 더 오래 산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좋을대로 그렇게 믿었다.


확실히 루비는 강아지로서는 장수해서 열 여섯 해를 살았다. 이런저런 병으로 아팠고 대부분 건강한 시간을 보냈다. 목소리는 명랑하고 우렁찼고 나이가 들어서도 잘 짖었다. '솔트 앤 페퍼(Salt&Pepper)'라는 잿빛의 털과 하얀 털이 멋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용변 교육이 잘 되었고 단어를 많이 알아 들었다. 강아지 지능 검사에서 100마리 중 한 마리 정도 되는 똑똑한 강아지라고 했다. '밥', '손', '뒤집어', '짖지마', '간식' 등의 단어를 많이 알아 들었다. 그중 루비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산책'이었다. 산책, 이라고 말할 때 루비 꼬리가 앙증맞게 춤을 췄다. 두 발로 서서 가족에게 꼭 붙었고 귀는 연신 쫑긋대었다. 얼마나 나가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루비는 죽기 이년 전, 그러니까 루비 나이로는 열네 살 때부터 서서히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배에 종양이 잡혀서 한 차례 수술도 했다. 나는 그때 이미 결혼해 분가한 상태여서 루비가 아픈 줄도 모르고 있었다. 루비는 내가 명절 때나 두어 달에 한 번 친정집에 갔을 때도 나를 알아 봤다. 보통 강아지들은 일이 년만 지나면 출가한 사람에게는 짖는다고 하는데 루비는 남편에게는 짖어도 나한테는 짖지 않고 반겼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고 조금의 후각 밖에 없을 때에도 걷지 못할 때에도 나를 알아보고 몸을 기댔다. 5년 전 내가 더 이상 친정집에 살지 않을 때부터 나를 계속 기다려 왔을지도 모르겠다.

몇달 전 루비 장례식을 했다. 루비가 죽기 일주일 전에 온 가족이 탄 차가 강물에 빠진 꿈을 꿨다. 아빠만 병원으로 오지 않고 야영장에서 나머지 가족을 찾아 돌아다닌 꿈이었다. 다행히 모두 살았지만 루비는 생각도 못한 내가 지금와서 보면 너무 한스럽다.


2003년을 떠올려 보면 집안 분위기가 (내 기준으로) 많이 안 좋았다. 아빠가 잠시 지방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가장 없는 집에 50일 된 강아지가 왔는데 그 뒤로 이렇게 긴 세월, 내 학창시절을 함께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치루고 지지고 볶고 고생하며 사는 동안 묵묵히 지켜주며 완충 역할을 해준 루비가 새삼 존경스럽다. 성품이 그랬다. 생긴 것도 할아버지지만 하는 짓도 할아버지처럼 대쪽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장례식에 검은 정장을 입고 갔다. 열일곱이면 사람 나이로는 아흔이라고 한다. 제일 어르신이다. 마지막에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또 거동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얼마나 아팠을까. 말도 못하는 짐승이라 낑낑 거리기만 하고 또 가장 건장할 때는 짖는 것도 눈치보느라 못 짖고...죽은 루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몇 달 전 친정집에 가서 간이 울타리 안에 있는 아픈 루비를 꺼내서 만져준 일이 있었더랬다. 눈도 멀고 귀도 멀고 이젠 코도 예전 같지 않을텐데 일 년에 한두 번 오는 나를 기억하는 건지 골골골 기분 좋아하는 소리를 내더니 잠시 내려 놓고 다른 데 가려고 하니까 “왕!” 짖더랬다. 가지 말라고... 엄마도 깜짝 놀랐다. 저렇게 목소리 낸 게 엄청 오랜만이라나 뭐라나...


그렇게 ‘말을 못 해서’ 사람보다 더 믿음이 갔던 루비였다. 귀만 쫑긋 쫑긋 했던 루비다. 1시간 가량 화장을 하고 유골함을 받아 나오면서 깊은 침묵에 빠졌다. 할 말이 없었다. 다른 강아지 가족처럼 펑펑 울지도 않았다.


내 눈앞에는 여전히 나무둥치에 앉아 카네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류의 실패에 대해 생각하는 테레자가 있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이미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일은 1889년에 있었고, 니체도 이미 인간들로부터 멀어졌다. 달리 말해 그의 정신 질환이 발병한 것이 정확하게 그 순간 시작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바로 그 점이 그의 행동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즉 인류와의 결별)는 그가 말을 위해 울었던 그 순간 시작되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민음사, p.451
신성모독적인 생각이 테레자의 영혼 속에서 싹텄다. 카네린과 자신을 잇는 사랑은 자기와 토마시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보다 낫다. 더 크다는 것이 아니라 낫다는 것이다. 테레자는 자기 자신이나 토마시 그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이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적어도 여러 형태 중에서 최상의 경우라도) 본질적으로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 역사의 이러한 기형태는 아마도 조물주가 계획한 것은 아닐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민음사, p.461



그렇게 한 시절이 또 갔다. 가장 불안정하고 힘들었던 내 시절이 유골함에 담긴 느낌이었다. 잘 해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참 나를 좋아했다. 많은 아픔을 보고 듣고 또 그걸 말하지도 못한 채로 영원한 고독 속으로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가 사람보다 나은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뭐 그런 적힌 것처럼 개가 사람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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