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명과 암
3월 초순의 파리는 정말 황량했다. 햇볕도 겨우 나던 그 거리. 골목골목 두꺼운 옷을 입고 다니는 굳은 표정의 사람들. 샤를 공항에서 파리의 호텔까지 차로 30분 남짓한 거리. 벤츠를 몰고 온 픽업 기사님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렇게 호텔과 공항 왕복이 40만 원. 어서 와, 파리 물가는 처음이지? 봉쥬르. 메르씨. 단 두 마디밖에 못 했지만 잘생긴 파리지앵 청년 기사님의 운전으로 무사히 파리 시내에 도착했다. 어서 와, 기사가 기사를 만난 건 처음이지? 너의 미래. 그리하여 김기사는 첫 번째 신혼여행에서는 운전을 하지 않았고 두 번째 신혼여행에서는 하루에 평균 5시간씩 운전을 했다. 난 운전 잘하는 살암이 제일 좋더라~ 조강지처가 좋ㄷ
꿈에 그리던 파리. 거리에는 온갖 차들로 빼곡했고 도로는 사방으로 퍼져 있었고 건물은 고풍스럽고 또 현대적이었다. 가히 유럽의 허브, 심장, 거점 도시라 할 만했다. 하지만 거리의 나무는 아직 잎이 나지 않거나 바래 있었고 또 추웠다. 프라하 보다는 덜 추웠지만 거리 풍경은 아직 겨울 한복판이었다. 유럽에 온 지 벌써 사나흘이 지나서였을까. 파리로 넘어오니 아프던 몸도 나아졌고 물갈이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온갖 쇼핑센터와 고건물이 어우러진 도시를 서울 촌뜨기가 보고 있으니 또 설레었다.
프라하가 카프카와 쿤데라로 대변되는 마음의 전초 기지라면 파리는 로망의 도시, 그리고 이상향에 가까운 도시였다. 물론 온통 샹들리에나 에펠탑 조명처럼 반짝반짝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잿빛의 풍경과 앙상한 나무들, 탁한 색의 강물이 흐르는 '현실의 도시'였으나 그마저도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의 풍광처럼 느껴져서 우수에 젖었다. 흠뻑.
여장을 풀고 나오니 정오였다. 제일 가기 쉽고 무리가 가지 않을 명소를 골라 출발했다. 개선문이었다. 그리 높진 않지만 그래도 도심의 옥상이라 개선문 위에서 도시를 보면 한눈에 한 면 정도는 보일 터였다.
택시를 타고 개선문 앞에 내렸다. 이게 바로 개선문이구나! 개선문의 유래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인이나 국가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문 형태의 건축물. 아치형의 입구가 있는 네모 반듯한 직사각형의 안정적인 석조 문이다. 문 안과 밖 양쪽 어디에도 이어진 공간은 없지만 마치 그 문으로 들어서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듯하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과 개선장군이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승리를 자축하며 이런 개선문을 통과해 시민의 환영을 받았겠지? 개선문은 크기도 매우 컸지만 그 벽 하나하나에 정복과 승리, 성공과 환영, 기대와 염원이 아름다운 조각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다른 벽에는 나폴레옹 1세 시대의 128번의 전쟁과 참전 장군 558명의 이름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모두 승리와 승리를 염원하는 기록이다.
파리의 개선문은 나폴레옹 1세 때 만들어졌다. 프랑스의 정복 전쟁의 성과와 승리를 기리기 위해서 로마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그대로 본떠서 1806년부터 1836년까지 공사한 끝에 완성이 되었다.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만들어졌지만 정작 나폴레옹은 1821년에 죽어 완성된 개선문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승리한 공적을 치하한다"라는 본래의 건립 의도는 변치 않아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5년에는 파리 해방 전선의 선봉장인 샤를 드골 장군이 이 개선문을 통과했다.
나선형의 철제 계단을 올라 개선문의 옥상으로 간다.
고소공포증이 날 만큼 높진 않았다. 또 개선문이 워낙에 단순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뭔가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안전장치는 절대 페르시아 왕자 그거 아닙니다. 옜날 겜.. 그거 아니라고요..
프라하의 구시가지처럼 고딕의 건축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런 모양새와는 상반되게 개선문 위에서 본 파리는 동서남북으로 12개의 도로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고 일렬로 그리고 엄청난 밀도로 옛 건물, 현대 건물 할 거 없이 건물들도 기획적으로 구획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도시다. 가장 도시 같은 도시다. 도시의 상징이다. 이것이 파리. 12개의 도로가 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별처럼 펼쳐져 있어 개선문 광장을 에뚜알(별) 광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파리 개선문을 보고 떠오른 인문학 단상
미래도시, <4구역 우주정거장>, 카타콤, 도시의 명과 암
조금씩 천천히 게으르게 쓰고 있는 SF 소설, <4구역 우주정거장>에 나오는 도시는 파리를 모델로 했다. 방사형으로 펼쳐진 기획 도시. 이런 도시는 돔의 형태이나 방사형의 문어발 모습이다. 왜 파리여야 했을까? 그건 파리가 (아마도) 내가 본 가장 진화한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진화한, 미래 도시인 느낌. 전통적이나 현대적이고 세련되었으나 낙후되었다. 인구 밀집은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온갖 상징물과 랜드마크가 곳곳에 있다. 이런 도시의 상징과 랜드마크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한다. 욕망의 대상이다. 욕망의 결과물이다. 도시는 욕망이기에.
개선문은 지상에 있다. 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펼쳐진다. 별처럼 도시의 모습은 햇빛 아래 찬란하다. 하지만 이 개선문 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자의 무덤이 있다. 개선문 아래 지하뿐만 아니다. 사실 파리에는 고대 로마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건축물이 하나 더 있다. 개선문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을 나폴레옹 1세 때 본 따서 만든 것이지만 진짜로 고대 로마 시대 이전부터 있던 건축물이 개선문 아래 그보다 더 지나서 14구역 지하에 수백 킬로에 걸쳐 만들어져 있다. 카타콤 지하 묘지이다. 이곳에 묻힌 뼈가 600만 구에 달한다고 한다. 루이 16세 때 로마 시기 채석장으로 사용되던 이곳에 철거한 공동묘지의 뼈들을 실어 날랐고 시간이 지나 뼈들을 쌓아 장식까지 할 정도로 기괴한 장소가 되어 버린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뼈와 두개골, 누구인지 모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언제 죽었는지도 구분이 안 가는 뼈들의 집합소. 이 곳에서는 온갖 괴담과 전설이 피어났고 그 전설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죽음애. 네크로필리아. 파리가 뿌리내린 예술의 근원.
도시는 밝음과 어둠을 가지고 있다. 우린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언제나 살아 숨 쉴 것처럼 이 거대한 도시 속에서 작은 점처럼 누빈다. 도시는 지하에 예술의 뿌리를 내리고 지상으로 힘껏 에펠탑이니 개선문이니 하면서 장식적인 면모를 펼쳐 보인다. 예술의 도시. 도시의 예술. 600만 구의 뼈는 지하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9구역의 개선문 아래에도 14구역의 카타콤에도 그리고 어쩌면 4구역에도 쌓여 있을지 모른다. 이름 없는 뼈가 내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나는 태양 아래 12개의 별처럼 펼쳐진, 예수의 12제자처럼 찬란한 그 도로와 도시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지하에 더 눈길이 간다. 언젠가 나도 도시의 밑에 들어갈 날이 오겠지. 도시의 지하에 묻힐 수 있다면 그 또한 영광일 것이다.
뼈는 왜 썩지 않을까. 나는 왜 뼈를 좋아할까. 기괴한 취향은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타고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