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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우정 Jul 14. 2020

15화 아이스 에이지

지구는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해빙기다. 빙하는 녹을 만큼 녹아서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백 년 후에는 고도가 높은 테슬라 제국 몇 개를 제외하고 모두 바다에 잠겨 버릴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여기서 그 꼴을 구경할 수 있을 텐데... 아깝다. 인간의 수명이 백 살 정도밖에 안 되는 게 나는 매우 안타깝다. 48시간의 하루도 어떤 때는 참 긴데 나이는 나도 모르는 새 먹어간다. 내가 올해 몇 살이더라?


극점의 빙하가 녹고 히말라야 산맥, 알프스 산맥의 빙하가 다 녹자 빙하에 묻혀 있던 바이러스는 변종의 변종을 거듭해서 인간을 공격했다. NX-XN 발로 셀 수 없이 많은 공격을 퍼부었다. 극악한 기후변화와 오염, 그리고 바이러스의 최종 공격을 견디기 위해 테슬라는 돔을 만들었다. 바퀴벌레의 요새, 일론 머스크의 방주. 방주 하나는 수많은 실험과 희생을 거쳐 화성으로 떠났다. NASA의 화성 이주 계획과 테슬라의 기술력, 거품이 잔뜩 낀 주가와 함께 마침내 2030년, 화성에 ‘오디세이’ 팀이 발을 디뎠다. 오디세이라는 이름만치 지구로의 복귀는 발을 내디딘 순간 예정되어 있었다. 발만 내밀고 왕복으로 수년을 허비하는 여정에 전 세계인은 환호를 보냈다. 텔레비전으로 또 인터넷(광선으로 연결된 물질계 최후의 소통망)으로 생중계된 첫 발걸음이었다. 그 후 진정한 정착을 위해서는 20년이 더 필요했다.


화성 정착에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얼음이다. 지금에야 얼음은 비물질 T-세트를 활용하여 언제 어디서든 3초 이내로 컵 하나에 가득 채울 수 있지만 화성을 처음 갔을 때만 해도 물질로서의 얼음을 찾는 게 화성 이주의 가장 큰 관건이었다. 화성은 지금의 지구만큼이나 척박하여 고작 발걸음을 내딛는 정도가 아니라 진정한 이주를 위해서는 수많은 죽음을 또 생중계로 봐야만 했다. 열 번의 시도, 47명의 순직까지 갔을 때 지구인은 일론 머스크 2세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왜 화성이어야 하느냐고. 차라리 소행성계로 지구의 행정 시설과 기반 시설을 옮기는 게 낫지 않겠냐고. 이에 대해 일론 머스크 2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성은 상징적인 곳입니다. 아무런 자원이 없는, 또 자원이 없는 것이 명백한 암성 덩어리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은 오로지 불확실성과 싸우는 용기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르는 곳, 모르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곳,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가닿으려는 시도로 인류는 문명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리고 불확실성에 투신하여 문명은 진보하였습니다. 테슬라는 도피가 아니라 희망이 되고자 합니다. 그 희망, 그 불확실성을 위해 혁명의 전우가 되어주신 많은 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깊은 애도와 감사를 표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희망을 찾기 위해 싸울 것이며 희망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 2037년 12월 4일, 일론 머스크 2세의 연설


여러 평전에서 희망을 ‘빙하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시대의 결빙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40년 희망을 찾았다. 사람이 찾은 희망이었다. 극지점의 얼음이 헬라스 분지 저 아래에 광범위한 맥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음의 맥은 넓고 깊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용암동굴로까지 이어져 있어서 인간의 이주 환경으로는 최적합했다. 지하 7152m. 방사선과 단열을 해주는 아늑한 화성의 자궁에 화성의 최초 기지인 ‘아이스 에이지’가 만들어졌다. 그 후 여러 실험을 거쳐 H2O의 얼음의 질량을 최대 5배로 늘리고 줄이는 압축 용해술을 개발해 수자원을 확보했고 수자원을 자유자재로 이동시켰다.


지구의 밝혀지지 않은 무지는 대부분 바다에 있지만 화성의 무지는 지구 그 이상이다. 전 행성에 걸쳐 거의 98%에 가까운 무지로 지금도 화성인은 풍토병을 앓으며 생존하고 있다. 무지는 공포였다. 하지만 밝혀진 2%의 진실로도 화성인은 풍토병보다 더 큰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저 지구에서도 여기 인공위성계에서도 소행성계에서도 전 지역, 전범위의 사람들에게 도사리는 질병이다.


그건 바로 권태다. 그들이 화성에서 발견한 건 유의미한 공포가 아니라 삶이자 일상으로서의 고통이었다. 끝없는 불모. 그리고 그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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